[뉴스핌=한기진 기자] 지점장(상업은행) 시절 이순우(사진) 우리은행장의 ‘무용담’ 하나. 갑자기 명동 지점으로 발령받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으로 적당히 영업해도 실적 1위를 할 수 있어 “운이 좋다”라고 생각하면 오산. 그가 발령받은 곳은 명동 외곽 지점으로 실적이 바닥을 면치 못한 곳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 지역 VIP 고객은 미용 관련 업종 회장님들. 명동은 예전부터 미용실과 미용 학원들이 많았던 곳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명동 출신’이냐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로 유명하다. 오랜 역사만큼 주거래은행과의 관계도 끈끈해 거래 은행을 바꾸는 일이 드물었다.
“정공법 대신 돌아가자.” 이 행장은 회장들에게 직접 영업해봤자 상업은행으로 거래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서 이들과 친분이 두터운 지역 사금융인 등 유력인사들과 심지어 힘깨나 쓴다는 ‘어깨’들과도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는 일은 예사였다.
“이 친구 믿을만 하오, 통장 하나 만들어주소.” 얼마 안 가 효과는 나타났다. 이 행장과 친분을 나눈 사람들이 미용실 회장들을 만날 때면 이 행장 이야기를 꼭 해줬다. 그러더니 이 행장을 찾는 발길이 늘었고 자연스레 영업점 실적은 바닥에서 최상위권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이 행장은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한다.
골치 아픈 일도 많이 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홍보실장을 맡았고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 출범 직후 초대 인사부장, 2002년 기업금융단장으로 LG카드 구조조정 실무도 총괄했다.
우리은행은 공적자금을 받아 이 행장은 ‘정부’의 눈치를 더 봐야 하는 처지다. 정부의 고졸채용 확대나 기업구조조정 등의 정책에도 화답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소통을 늘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온라인 자유발언대인 '우리 아고라', 필명으로 건의할 수 있는 '우리 늘품터'를 만든 게 소통을 위한 장치다.
그래서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금융그룹 특성상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발언권이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강하다는 점이 역으로는 이 행장이 감수해야 하는 책임도 크다는 의미이다.
4.11 국회의원 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MB정권 말기에 우리금융 민영화의 동력이 다시 살아났다. 산은금융이나 KB금융의 합병설이 나오고 있고 직원들의 바람과 차이도 있다. 민영화 성공이 찬사가 될 수도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중간에서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이순우 행장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 이순우 우리은행장
<출생>
- 경북 경주
- 1950년 12월 5일
<학력>
- 대구고, 성균관대학교 법학
<주요 경력>
- 1977년 상업은행 입행
- 1998년 홍보실장
- 1999년 인사부장
- 2002년 기업금융단장
- 2004년 경영지원본부 집행부행장
- 2004년 개인고객부 집행부행장
- 2008년 수석부행장
▶ 주식투자로 돈좀 벌고 계십니까?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