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VS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
19대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3월 29일 시작됐다.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정치권력을 누가 쥐느냐의 갈림길이다. 특히 여야가 전력을 기울여 사수하고자 하는 격전지들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전장(戰場)이다. 뉴스핌은 4·11 총선 격전지 중 특히 한국정치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후보들이 맞붙은 수도권과 지방 각 10곳씩을 찾아 생생한 현장르포를 시작한다.<편집자주>
[광주=뉴스핌 함지현 기자] "광주의, 서구의 주민들은 의식이 높습니다."
광주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과 야권연대(통합진보당) 양측 후보 모두에게 들은 거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나봐도 "모른다"거나 "관심 없다"라고 대답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으며 높은 식견과 깊이 있는 정치관을 느낄 수 있었다.
<광주을의 한 사거리> |
이러한 현상은 광주의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5·18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광주시민들의 의식은 스스로 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정치 참여에 대한 열정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있는 듯했다.
다만 그 높은 정치의식이 이번 4·11총선에 나선 두 후보에겐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하다.
한 후보는 그것을 구태의연한 고인 물을 흘려보낼 의지로 해석하고 있고, 다른 후보는 과거를 잊지 않는 굳은 결의로 풀이했다.
투표 전 마지막 일요일인 8일 광주 서구을을 찾았다. 두 후보는 각각 풍암 호수와 그 옆 장미공원에서 마지막 힘을 다 쥐어 짜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다 쉬어서 울부짖는 듯 했다.
◆이정현 "정책 경쟁이 돼야 합니다"
<유세 후 악수를 청하는 이정현 후보> |
장미공원 옆 사거리. 후보자들의 플래카드가 펄럭거리는 그 거리의 옆에서 여당의 불모지 광주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만났다.
유세를 마치고 내려오는 이 후보를 불러 세워 한마디를 부탁했다.
"반드시 정책 경쟁을 도입하겠습니다."
그는 이 말만을 남기고 얼마 남지 않은 선거운동 기간을 1초라도 아끼려는 듯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게릴라식 유세를 주로 한다는 그는 이 자리에 잠시 들른 뒤 또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걸까.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이 후보는 고향의 예산을 지키는 '예산지키미'"라며 "흑색선전과 정치적 모략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들이 그동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이룬 업적들로 이 후보를 평가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측근은 "사업에 얼마가 들어가고 어떤 법 개정이 필요한지 등을 이미 객관적으로 열람이 가능케 돼 있다"며 "이것은 시민들이 검증하고 판단하는 데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후원자들이 가득 모여있는 사무실에서 이 후보를 다시 만나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부탁한다는 문구와 이 후보를 다룬 신문기사가 벽에 가득 붙어 있었다.
이정현 후보는 이제는 구태의연한 정당정치에서 벗어나 정말 이 지역을 위해 일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발전과 정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정책 경쟁을 도입하겠다"며 "광주가 27년간 특정정당 일색었으므로 경쟁을 해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작을 물꼬를 틀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시대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고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며 "책임감을 갖고 반드시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그 일에 한걸음 내딛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뒤 다시 홀연히 유권자를 만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 오병윤 "잊어선 안 됩니다 5·18"
"손 좀 잡아 주세요, 야권 연대 살려 주십시오!"
<시민에게 악수를 청하는 오병윤 후보> |
풍암호수 옆 공터에서 만난 야권연대 단일후보인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수지 옆 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그의 후원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를 아우르려는 듯 그의 번호인 4번을 의미하는 네 손가락을 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 후보 역시 적극적이었다.
그는 야권연대 통합후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의 보라색이 아닌 민주통합당의 노란색 잠바를 입고 뛰고 있었다.
오 후보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악수를 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따라가면 "손 좀 잡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선뜻 손을 잡아주는 시민에게는 흡사 하소연을 하듯 "야권연대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의 옆 측근도 "아들 같은 후보입니다 어머님, 전남대 학생회 출신입니다"라며 지역에 연고가 있음을 강조했다.
오병윤 후보가 유세하는 주제는 간단명료했다. 바로 이곳은 '광주'라는 것.
그는 "광주는 어느 때나 시대와 역사를 선도해왔다"며 "그것이 광주시민이고 서구의 주민이다. 서구주민의 영리하고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다시 악수를 하러 떠난 오 후보를 대신해 그의 측근을 통해 캠프의 입장을 들어봤다.
오병윤 후보의 캠프는 정책적인 대결보다는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부의 심판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캠프 관계자는 "5월 정신을 계승해 왔던 자와 광주를 탄압했던 자의 대결"이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 정부에 몸담고 있던 사람과의 대결"이라고 이번 선거의 의미를 설명했다.
캠프 정책팀장은 대선과 같은 해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이번 선거의 승리는 대선과 직결된다"라며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큰 파급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광주지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경우 그것이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통령 행보에 도움이 될 거란 의미로 들렸다.
◆ "광주도 변했다. 그래도 투표장에서는…"
광주의 유권자 사이에서 인물론의 바람은 이전보다 다소 강하게 부는 듯 했다.
택시기사인 김모씨(60대, 남)는 "옛날에는 민주당을 보고 많이 찍었는디 광주사람들은 그게 좀 없어졌어"라며 "사람보고 찍어야제, 서구을은 이정현씨가 일도 많이 했다 하고 여론이 좋제"라고 말했다.
이어 "(야권) 사람들이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그런 마음만 있어"라며 "다른 데는 몰라도 서구을은 무조건 2번이라고 찍는 게 아니라고 봐"라고 광주의 변화를 설명했다.
마실을 나간다던 한 60대 남성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세상이 좀 바껴야제, 너무 민주당 쪽에서 많이 했어"라며 "경상도에서도 민주당이 나와야 허고 광주에서도 좀 (새누리당이 나와)…섞어질 필요가 있제"라고 주장했다. 최근 부산에서도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선전하는 등의 상황을 염두에 둔 듯했다.
많은 서구을 시민들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일을 잘 했다는 데는 공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이 투표장에서 어떤 결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카페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은 "인물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 지역은 광주"라며 "민주당 쪽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잘 모르겠어,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라며 "아무래도 과거에 해오던 대로 할 것 같은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인물은 좋은데 여당인 것과,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야권 후보라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는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결과는 모르제, 양쪽 다 지지자가 많아서가 아니고 둘 다 찝찝해서…"
한 남성이 고민 섞인 푸념을 털어 놨다.
그는 "바닥 민심도 모르고 공천만 하면 무조건 될거라는 생각에 중량감 떨어지는 후보를 낸 야권에 자존심이 상한다"라며 "광주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고 새누리당 후보를 뽑자니 대권 1등후보 (박근혜 위원장 지칭) 입 노릇 하던 사람이라 별로"라며 "대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이라 새누리 당이 당선 되면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돼서 싫다"고 덧붙였다.
광주의 딜레마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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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