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연순 기자] 금융감독원이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와 관련해 재검토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분쟁조정국 결정에 대해 실망감을 내비치면서 현장에 직접 가서 카드사의 카드론 대출 과정에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현재까지 분쟁조정국의 결정은 카드사의 본인확인 부분에 있어 책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책임소재에 대해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카드사에 지도한 본인확인절차 이행여부에 대해 우선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향후 카드사들의 책임범위를 둘러싼 공방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 금감원 "임의 카드론 한도 증액만 문제"
# 대학생 이모씨의 경우 지난 8월4일 카드론피싱에 속아 자신도 모르는 새 KB카드에 1500만원의 카드론이 신청됐다. KB카드는 곧바로 카드론 신청을 승인했고, 1500만원이 고스란히 범인의 계좌로 넘어갔다. KB카드가 정한 이씨의 카드론 신청가능 금액은 지난 6월 800만원에서 7월 1490만원으로 늘었고, 8월엔 1500만원이 됐다. 결국 신청가능 금액이 모두 승인된 셈이다. 신청가능 금액이 크게 늘어난 사실을 이씨는 모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씨가 금감원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분쟁조정국은 카드사 약관과 과거 판례 등에 비춰 구제할 수 있는 금액은 10만원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카드론 신청가능 금액이 149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늘어난 점만 고지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관계자는 "카드사가 본인 확인을 안한 것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하는 지는 좀 더 검토할 문제지만 임의로 카드론 한도를 증액한 것은 명백하게 카드사에 책임이 있다"며 조정 이유를 밝혔다.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는 KB카드 뿐 아니라 대부분의 카드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9월 말에 개설된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등록한 피해자 회원이 6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카페에서 추산한 피해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 권혁세 금감원장 "책임소재 면밀히 따져봐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분쟁조정국 결정과 관련해 간부회의에서 "금융사고 문제는 피해자(소비자)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데 당국의 관행이나 업계의 입장 중심으로 결정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카드사는 전혀 책임이 없고 1500만원 중 10만원만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리면 피해자 입장에서 수긍을 하겠는가"라며 책임소재에 대해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론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카드사에서 본인확인 등 절차상의 문제가 없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이에 일단 금감원은 지난 5월 카드사들에게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라고 지도한 사항을 잘 준수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카드사들로 하여금 국제전화 또는 인터넷전화번호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본인에게 재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지도공문을 보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지난 5월 카드사에 지도한 내용과 관련해 혹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다"며 "직접 나가서 확인한다기 보다는 일단 자료를 받아서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자모임' 회원 40여 명은 지난 15일 금융감독원을 항의 방문해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카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피해자모임 측은 "카드사들이 카드론의 한도 등에 대해 사전에 고객에게 안내를 하지 않고 대출 당시 본인확인 절차를 소홀히 해 피해를 키웠다"며 소송 제기 이유를 설명했다.
◆ 카드론 보이스피싱, '카드사 책임론' 부상하나
피해자들은 카드사들이 카드론 이용 가능 금액을 확대하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카드 대출을 늘리려고 본인 동의도 없이 신청 가능 금액을 늘렸다는 주장이다.
또 현재 카드론은 카드번호, 비밀번호, CVC(유효성 코드)를 알면 누구나 전화나 인터넷으로 손쉽게 신청할 수 있다. 카드대출 편리성을 위해 지금까지 약관상 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져 왔는데 본인확인 과정이 느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금감원이 지난달 카드사로 하여금 카드론 대출 신청시 본인이 등록된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하거나 휴대폰에 인증메시지를 보내는 본인확인시스템을 이달 말까지 구축하도록 지도했지만 일부 카드사는 아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권혁세 원장은 최근 "심지어 본인이 대출받은 것도 모르는 피해자가 있는데 고스란히 피해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 문제가 없겠느냐"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실무진에서는 현재까지 책임소재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적으로 강한 조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또 법률적인 해석 여하에 따라 금융당국의 조정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이번 카드사 조사는 책임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 앞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내용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다만 이행상황을 보면서 더 강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관계자는 "본인확인을 해야된다는 판결이 나오면 추가적으로 조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한도증액 문제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송결과가 나오면 추가적으로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카드사들은 "본인 부주의로 카드정보를 범인에게 알려줘 피해를 자초한 만큼 정상적인 신청인 줄 알고 돈을 빌려준 카드사에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일차적으로 고객들이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한 것"이라며 "절차나 약관상 유효한 계약이라 카드사가 손실을 보전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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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연순 기자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