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두드러지게 반기업 정서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고위 관계자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반기업 정서'라고 털어놨다. 사적인 모임에 나가도 자기가 먼저 어느 기업에 몸담고 있다고 밝히기가 꺼려질 정도로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모그룹의 회장이 취임 30년을 맞았다. 이 회장은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회장을 맡은 후 그룹을 보란 듯이 성장시켰다. 하지만 이 그룹은 대내외적인 행사 없이 조용히 넘어갔고, 홍보실 직원들은 기자들에게 관련 기사를 쓰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는 '역홍보'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즉, '반기업 정서'가 높아져 내놓고 축하하기 어렵다는 것.
삼성그룹은 MRO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고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아이마켓코리아 지분을 모두 매각키로 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중소기업과의 동반 성장 및 상생협력에 부응하기 위해 연매출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알짜기업을 포기한 것. 다른 대기업들도 삼성과 같은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의 이같은 결정 배후에는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정부가 웅크리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 4월 "MRO가 중소기업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며 규제 의사를 밝힌 후 여러 정부 관료들이 잇따라 MRO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을 악마로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 장관은 자신이 회계사 출신이라며 정유사들의 기름값 원가를 직접 계산하겠다, 주유소 장부까지 뒤지겠다고 했고 최근엔 "대기업이 경영진에 월급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있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에서도 반기업 정서는 확인됐다. 대한상의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20세 이상 남녀 2024명을 상대로 조사한 올해 상반기 기업호감지수(CFI:Corporate Favorite Index)는 100점 만점에 50.8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54.0로 가장 높았던 호감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51.5로 떨어지더니 올해 상반기엔 50.8로 2분기 연속 하락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상생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재계는 이같은 반기업 정서 확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나아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같은 '재계 때리기'가 더 심해질 것까지도 예상돼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이 국민들 기대 수준에 못미치는 일들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골목길 상권까지 넘보고, 외국 유명 브랜드를 가져와 손쉽게 장사하고,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늘려 일감 몰아주고, 오너 2세 3세들에게 편법으로 세습하고...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 훼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에게 기술과 품질 경쟁에게 치이고 후발 개발도상국에게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너트크래커(Nut cracker) 신세다.
한 대기업 임원은 "애플은 지고지선인 것처럼 떠받들고 국내 기업은 마녀로 만들면 안된다"며 "애플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에게도 힘을 실어줘야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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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