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현대건설 인수전 본입찰을 코앞에 두고 막판 변수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의 변화에 이목이 쏠린다. 최근 M&A(인수합병) 시장 최대 대어인데다, 범현대가 집안경쟁 구도를 형성한 탓에 역대 어느 인수전보다 국민적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적통성을 앞세운 현대그룹. 경제논리로 맞불을 놓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우세를 높게 점치고 있지만 막판 변수와 함께 본입찰 이후에도 적잖은 잡음이 예상된다.
12일 재계와 채권단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 인수전은 오는 15일 본입찰 마감에 이어 이르면 16일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내년 1분기에는 주식매매계약 체결 등 본건 매각이 종결되면서 새출발하게 된다.
◆ 현대차그룹 '우세'..현대그룹 '걱정 없다'
이번 인수전 본입찰은 입찰가격과 함께 비가격 요소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문제를 막아 보겠다는 의도다.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지난 11일 "국민경제적 중요도 및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를 감안해 큰 틀에서는 과거 채권단 매각 사례와 유사하게 가져가되, 비가격 요소의 항목이 충실하게 마련되고 투명하게 평가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금조달 계획과 능력, 경영계획, 약속사항 이행, 사회·경제적 책임 등 비가격 부문 항목이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떠올랐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차그룹은 자금력과 비전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 그룹이 투자자를 끌어들이지 않고 단독으로 입찰하겠다고 밝힌 것도 자금력에 그만큼 자신감이 높다는 표현이다.
현대차그룹은 실제 그룹 계열사만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컨소시엄 참여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 주력 계열사 3사의 현금동원력은 5조원 가량으로 풍부하다.
단적으로, 현대차는 1조3000억원 상당의 현금성 자산과 함께 금융상품 등으로 3조원 가량을 소화할 수 있다. 또 기아차는 8000억원, 현대모비스는 1조5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비전 측면에서도 일찌감치 승부수를 띄운 상태다. 그룹 미래 성장축으로 자동차-철강-건설의 3대 축을 설정했고,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2020년까지 수주 120조원, 매출 55조원 달성의 청사진도 내놨다.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 총 투자액 10조원, 고용창출 32만명을 약속한 상태다.
현대그룹은 이 같은 현대차그룹의 우세 속에서도 여전히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에 무조건 선정된다'는 게 그룹 내부의 절대적인 분위기다. 반드시 현대건설을 품에 안겠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복안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표현이다.
막판 변수로 등장한 전략적 투자자의 참여 불확실성이 높지만 현대그룹도 자금력에서 오랜 기간 준비를 해왔다. 현대그룹은 현재 기존 현금성 자산 1조 5000여억원과 주력 계열사 현대상선 유상증자 등의 차입을 통해 3조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4조~4조 5000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는 입찰가격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자금 문제에 "걱정 없다"며 복선을 깔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그룹은 비밀유지협약 등의 이유로 공식적인 비전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적통성과 50조~6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대북 사업 시너지 효과만으로도 경영 비전은 뒤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 카운터 펀치 맞은 현대그룹, 시장의 시나리오는?
그러나 이번 인수전에서 현대그룹 전략적 투자자로 컨소시엄에 참여한다던 독일 M+W그룹이 사실상 참여 철회를 결정한 것은 '카운터 펀치'라고 시장은 보고 있다.
D-데이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다소 부족해 보였던 현대그룹의 자금력을 메워줄 투자자의 참여 철회는 시장의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비가격 요소 평가에 상당한 리스크를 안게 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배경에서 갖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현대그룹이 본입찰 당일 불참하면서 입찰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다고 보는 가하면, 이번 주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간 현대건설 보유의 현대상선 지분 매각 약속 등 극적인 빅딜이 성사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이 같은 막판 변수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것"이라며 여전한 의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현대그룹의 분위기는 본입찰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여러 변수들이 남아 있다는 이유가 한 몫한다. 사실 현대그룹이 이례적으로 이번 인수전에서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TV광고를 내보내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범현대가의 틀 안에서 누구보다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TV광고를 통한 여론 몰이와 함께, 이 광고가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어떤 논란을 불러올지를 염두해둔 포석이다.
일례로, 현대차그룹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경영권 승계 문제를 부각시킨 것은 시장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모으는 부분이다.
현대건설 인수에 따른 현대건설+현대엠코+글로비스의 합병, 그리고 다시 글로비스의 분할 등을 거치면 순환출자 구조의 틀안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 경영승계는 최소한의 자금으로 어렵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관심이 없다거나, 고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연 문제 등도 추가적인 복선을 깔아둔 내용들이다. 최근 현대그룹이 요청한 우선매수청구권 등과 함께 각종 소송 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때문에 본건 체결이 지연될 가능성도 일각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다.
누가 얼마를 써내는지의 가격 요소가 가장 큰 평가 기준이던 다른 인수합병 진행과는 달리 비가격 요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유독 강화된 것도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활용할 가치가 높은 변수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흐름은 현대차그룹으로 기우는 분위기"라면서 "하지만 코너에 몰린 현대그룹이 여전한 자신감을 보이는 속내에 어떤 비장의 카드가 담겨져 있을지는 본건 매각 종결까지 이어질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