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12.12 증시 부양책, 1999년 코스닥 광풍, 2007년 코스피 2000포인트 등이 한국증시 40년의 10대 뉴스로 꼽혔다.
대우증권은 15일 창립 40주년을 맞아 '40년 경험에서 미래 10년을 말한다'라는 주제의 특집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서 대우증권은 한국증시 40년의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했다.
첫번째 뉴스로는 1972년의 기업공개 촉진법 제정이 뽑혔다. 이 법 제정 이후 상장 붐이 일어 72년말 66개에 불과하던 상장 종목 수가 78년말 356개로 급증했다. 이로써 증시의 주역들이 자리를 잡게된 것이다.
두번째는 1978년 건설주 파동. 중동 건설 붐을 타고 급등세를 나타냈던 건설주가 78년 8월부터 갑자기 △ 급등에 따른 가격 부담과 높은 밸류에이션 △ 거시경제 지표의 악화 △ 상장사 급증에 따른수급 불균형 등으로 급락했다.
건설주는 74년 말부터 78년 6월까지 3709%나 급등한 후 74%의 급락세로 돌아섰다. 건설주 파동은 70년대 강세장의 종결을 확인시켜줬다.
코스피지수가 1989년 사상 처음으로 1000포인트에 도달한 것이 세번째 뉴스로 꼽혔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의 영향으로 코스피지수는 네자리 지수대를 열었지만 결국 3일 천하로 끝났다. 코스피가 1000대에 안착한 것은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5년부터였다. 1000선은 89년부터 2004년까지 장기 박스권의 강한 저항선이었다.
한국 증시에서 가장 웃지 못할 사건으로 기록되는 12.12 증시 부양책(1989년)이 네번째 뉴스 자리를 차지했다. 이 부양책은 당시 노태우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주가를 부양하도록 한 것이다. 여전히 한국 증시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증시 부양책으로 꼽힌다.
대한투신, 한국투신, 국민투신 등 3 투신과 증권사들은 정부의 지시대로 무조건 사야만했다. 이 무리한 부양책은 결국 부작용만 남겼다.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를 믿고 신용으로 순매수했던 개인 투자가들은 90년 10.10 반대 매매시 깡통 계좌가 속출하는 피해를 입었다.
다섯번째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이 선정됐다. 당시 KOSPI는 280포인트까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시련은 한국 기업을 강하게 단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 증시는 1992년부터 외국인에게 개방하기 시작해 1998년 5월 26일 외국인 투자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이때 단행한 투자 자유화 조치는 다른 이머징 국가에 비해 대단히 급진적이었지만 이로인해 외국 자본의 유입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적 관행이 한국 증시에 이식됐다. 또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확대 등 주주 친화적인 정책이 자리 잡게 됐다.
90년대말 국제적인 IT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는 급등했다. 무료 인터넷전화 사업을 시작했던 새롬기술은 6개월 사이 70배 가까이 치솟았다. 결국 코스닥 열풍은 투기적인 버블로 이어졌고, 2000년 3월 고점 형성 이후 장기 약세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대우증권은 코스닥 폭락과 건설주 파동, 증권주 급락을 한국의 개인투자가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주가 급락 사례로 꼽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주식형펀드 열풍, 2007년의 코스피 2000포인트 도달 역시 10대 뉴스로 꼽혔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저금리 구조가 정착되면서 시중 자금이 속속 주식형펀드로 몰려들었다. 당시 4년간 주식형펀드로 유입된 자금의 규모는 105조원에 달했다.
이같은 주식형펀드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007년 2000포인트를 넘어섰다. 그해 11월 1일 장중에 기록한 2085.45는 역사상 최고치로 남겨있다.
외국인의 매수에만 의존해 '천수답형 증시'로 불리던 한국 증시가 내부 유동성에 의한 균형잡힌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이 당시 '묻지마식 펀드투자'에 나섰던 자금은 올해까지도 매물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위기와 주가 급락이 마지막 10대 뉴스에 올랐다. 그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증시가 폭락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펀더멘털이나 금융 시스템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훨씬 양호했지만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작년 이후 한국 경제와 증시는 V자형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OECD국가 중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기록됐다. 코스피지수도 최근 1800선을 회복하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넘어섰다.
대우증권은 15일 창립 40주년을 맞아 '40년 경험에서 미래 10년을 말한다'라는 주제의 특집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서 대우증권은 한국증시 40년의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했다.
첫번째 뉴스로는 1972년의 기업공개 촉진법 제정이 뽑혔다. 이 법 제정 이후 상장 붐이 일어 72년말 66개에 불과하던 상장 종목 수가 78년말 356개로 급증했다. 이로써 증시의 주역들이 자리를 잡게된 것이다.
두번째는 1978년 건설주 파동. 중동 건설 붐을 타고 급등세를 나타냈던 건설주가 78년 8월부터 갑자기 △ 급등에 따른 가격 부담과 높은 밸류에이션 △ 거시경제 지표의 악화 △ 상장사 급증에 따른수급 불균형 등으로 급락했다.
건설주는 74년 말부터 78년 6월까지 3709%나 급등한 후 74%의 급락세로 돌아섰다. 건설주 파동은 70년대 강세장의 종결을 확인시켜줬다.
코스피지수가 1989년 사상 처음으로 1000포인트에 도달한 것이 세번째 뉴스로 꼽혔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의 영향으로 코스피지수는 네자리 지수대를 열었지만 결국 3일 천하로 끝났다. 코스피가 1000대에 안착한 것은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5년부터였다. 1000선은 89년부터 2004년까지 장기 박스권의 강한 저항선이었다.
한국 증시에서 가장 웃지 못할 사건으로 기록되는 12.12 증시 부양책(1989년)이 네번째 뉴스 자리를 차지했다. 이 부양책은 당시 노태우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 주가를 부양하도록 한 것이다. 여전히 한국 증시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증시 부양책으로 꼽힌다.
대한투신, 한국투신, 국민투신 등 3 투신과 증권사들은 정부의 지시대로 무조건 사야만했다. 이 무리한 부양책은 결국 부작용만 남겼다.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를 믿고 신용으로 순매수했던 개인 투자가들은 90년 10.10 반대 매매시 깡통 계좌가 속출하는 피해를 입었다.
다섯번째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이 선정됐다. 당시 KOSPI는 280포인트까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의 시련은 한국 기업을 강하게 단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 증시는 1992년부터 외국인에게 개방하기 시작해 1998년 5월 26일 외국인 투자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이때 단행한 투자 자유화 조치는 다른 이머징 국가에 비해 대단히 급진적이었지만 이로인해 외국 자본의 유입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적 관행이 한국 증시에 이식됐다. 또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 확대 등 주주 친화적인 정책이 자리 잡게 됐다.
90년대말 국제적인 IT 붐을 타고 코스닥지수는 급등했다. 무료 인터넷전화 사업을 시작했던 새롬기술은 6개월 사이 70배 가까이 치솟았다. 결국 코스닥 열풍은 투기적인 버블로 이어졌고, 2000년 3월 고점 형성 이후 장기 약세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대우증권은 코스닥 폭락과 건설주 파동, 증권주 급락을 한국의 개인투자가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주가 급락 사례로 꼽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주식형펀드 열풍, 2007년의 코스피 2000포인트 도달 역시 10대 뉴스로 꼽혔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저금리 구조가 정착되면서 시중 자금이 속속 주식형펀드로 몰려들었다. 당시 4년간 주식형펀드로 유입된 자금의 규모는 105조원에 달했다.
이같은 주식형펀드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007년 2000포인트를 넘어섰다. 그해 11월 1일 장중에 기록한 2085.45는 역사상 최고치로 남겨있다.
외국인의 매수에만 의존해 '천수답형 증시'로 불리던 한국 증시가 내부 유동성에 의한 균형잡힌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이 당시 '묻지마식 펀드투자'에 나섰던 자금은 올해까지도 매물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위기와 주가 급락이 마지막 10대 뉴스에 올랐다. 그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증시가 폭락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펀더멘털이나 금융 시스템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훨씬 양호했지만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작년 이후 한국 경제와 증시는 V자형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OECD국가 중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로 기록됐다. 코스피지수도 최근 1800선을 회복하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