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거의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해 온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국가 평의회 의장 겸 군 최고사령관이 공식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19일 쿠바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Granma) 인터넷판에는 사전 예고 없이 카스트로의 찬필 사인이 포함된 "최고사령관으로부터의 메시지"가 게재됐다. 카스트로는 18일자로 작성된 이 메시지에서 "나는 국가 평의회 의장 및 최고사령관직을 원하지도 또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반복해서 이 같은 의사를 전한다(I am saying that I will neither aspire to nor accept, I repeat, I will neither aspire to nor accept the positions of President of the State Council and Commander in Chief)"고 밝혔다.
올해 81세인 카스트로의 49년간 통치가 종료되고,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방장관이 영구적으로 그 자리를 넘겨받게 된다.
피델 카스트로는 이미 2006년 7월 31일 장출혈 수술을 받으면서 라울에게 일시적으로 권력을 넘겨준 상태다. 그 이후로는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간헐적을 공식 사진이나 비디오 화면을 통해 자신의 현재 회복상태를 전하거나 국제적인 쟁점에 대한 단상을 전하곤 했을 뿐이다.
올해 1월 선출된 쿠바 새 인민의회는 오는 일요일 첫 회의를 열어 국가 평의회 의장을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 원수직을 고사한 만큼, 라울이 새 국가 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는 1959년에 집권하고 쿠바를 미국의 지척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침략 및 쿠데타 시도, 암살 기도 및 미사일 위기 등 파란만장한 역경 속에서도 세계에서 꿋꿋하게 3세계의 지도자로, 세계 최장 집권자로 존재해왔다.
미국은 그가 집권한 이후부터 줄기차게 정권 전복 기도를 진행해왔으나 번번히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가장 악명 높은 재앙은 1961년 피스그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으로 케네디 정부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이후 1962년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소비에트연방의 핵 미사일이 배치되어있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쿠바에 대한 적대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긴박한 외교 협상 끝에 소비에트의 니키타 후르시초프 당서기는 미사일을 철수했다.
1990년 초 세계 냉전체제가 종료되면서 카스트로는 적대시했던 국가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결국 1998년 1월에는 교황이 처음으로 쿠바에 방문하기도 했다. 소비에트의 지원이 끊어져 금융 위기를 경험하기도 한 쿠바 경제는, 1990년대 후반 관광산업의 호황을 통해 부활하게 된다.
한편 미국은 2005년에 카스트로 사후에 쿠바를 민주국가로 이행하도록 지원한다는 세부 계획을 세웠지만, 쿠바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카스트로의 지지자들은 그가 제공한 높은 수준의 건강보험 및 국민들에 대한 공공교육 혜택과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한 능력을 높게 샀다. 물론 반대자들은 개인 자유와 시민의 의사표현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독재자라고 불렀다.
전문가들은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난 카스트로가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여전히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성명서에서 "이건 작별 인사가 아니다. 나는 아이디어의 전장에 병사로 싸우고 싶다(This is not my farewell to you. My only wish is to fight as a soldier in the battle of ideas)"고 강조했다.
19일 쿠바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Granma) 인터넷판에는 사전 예고 없이 카스트로의 찬필 사인이 포함된 "최고사령관으로부터의 메시지"가 게재됐다. 카스트로는 18일자로 작성된 이 메시지에서 "나는 국가 평의회 의장 및 최고사령관직을 원하지도 또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반복해서 이 같은 의사를 전한다(I am saying that I will neither aspire to nor accept, I repeat, I will neither aspire to nor accept the positions of President of the State Council and Commander in Chief)"고 밝혔다.
올해 81세인 카스트로의 49년간 통치가 종료되고,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방장관이 영구적으로 그 자리를 넘겨받게 된다.
피델 카스트로는 이미 2006년 7월 31일 장출혈 수술을 받으면서 라울에게 일시적으로 권력을 넘겨준 상태다. 그 이후로는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간헐적을 공식 사진이나 비디오 화면을 통해 자신의 현재 회복상태를 전하거나 국제적인 쟁점에 대한 단상을 전하곤 했을 뿐이다.
올해 1월 선출된 쿠바 새 인민의회는 오는 일요일 첫 회의를 열어 국가 평의회 의장을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 원수직을 고사한 만큼, 라울이 새 국가 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는 1959년에 집권하고 쿠바를 미국의 지척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침략 및 쿠데타 시도, 암살 기도 및 미사일 위기 등 파란만장한 역경 속에서도 세계에서 꿋꿋하게 3세계의 지도자로, 세계 최장 집권자로 존재해왔다.
미국은 그가 집권한 이후부터 줄기차게 정권 전복 기도를 진행해왔으나 번번히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가장 악명 높은 재앙은 1961년 피스그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으로 케네디 정부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이후 1962년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소비에트연방의 핵 미사일이 배치되어있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쿠바에 대한 적대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긴박한 외교 협상 끝에 소비에트의 니키타 후르시초프 당서기는 미사일을 철수했다.
1990년 초 세계 냉전체제가 종료되면서 카스트로는 적대시했던 국가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결국 1998년 1월에는 교황이 처음으로 쿠바에 방문하기도 했다. 소비에트의 지원이 끊어져 금융 위기를 경험하기도 한 쿠바 경제는, 1990년대 후반 관광산업의 호황을 통해 부활하게 된다.
한편 미국은 2005년에 카스트로 사후에 쿠바를 민주국가로 이행하도록 지원한다는 세부 계획을 세웠지만, 쿠바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카스트로의 지지자들은 그가 제공한 높은 수준의 건강보험 및 국민들에 대한 공공교육 혜택과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한 능력을 높게 샀다. 물론 반대자들은 개인 자유와 시민의 의사표현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독재자라고 불렀다.
전문가들은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난 카스트로가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여전히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카스트로는 성명서에서 "이건 작별 인사가 아니다. 나는 아이디어의 전장에 병사로 싸우고 싶다(This is not my farewell to you. My only wish is to fight as a soldier in the battle of ideas)"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