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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진료실에서 최근에 많은 환자들이 약을 지을 때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살찌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부탁이다.
이 말씀은 특히 처녀들이나 젊은 부인들에게서는 거의 대부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멘트(!)이다. 그때마다 우리 사회도 이젠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뭔가 환자들이 한약에 대해 잘못 알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이 느껴지곤 한다.
최근 많은 청소년들과 여대생들이 비만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초중고생 3명중 1명꼴로 아침을 거른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15%는 저체중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거식증(拒食症)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한약(보약)을 먹으면 정말 살이 찌게 될까? 그렇지 않다.
기운이 없고 피곤하며 밥맛이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약을 먹으면 소화기능이 개선되고 밥맛이 좋아진다. 그 결과 음식섭취에 대해 절제하지 못하면 체중의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는 본인이 식사량만 조절하면 살로 연결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소화력이 떨어져서 배출기능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살이 찌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분들은 한약을 통해 배출능력을 활성화시키면 오히려 살이 빠지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한약에 많이 들어가는 감초(甘草)에 글리시레트산이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어서 한약을 먹으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살찌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연상태의 감초에 들어있는 글리시레트산은 양적으로 미미하며 한약 속에 감초는 1일분에 2-8g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으므로 이 정도로 스테로이드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또한 비만이 단지 음식섭취의 문제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최근 서양의학에서도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한의학에서는 이를 체질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기(氣)가 부족하고 습담(濕痰)이 많은 이들은 얼굴색이 희고 살이 찐다고 하였고, 혈(血)이 부족하고 화(火)의 기운이 강한 이들은 얼굴색이 검고 마른다고 하였다.
사상의학에서도 태음인(太陰人)은 흡수능력은 강하나 배출능력이 약한 경우가 많아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와는 달리 너무 말라서 살찌는 약을 지어 달라고 주문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
식사는 많이 하고 소화도 잘 되는데 살이 붙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필자도 당혹스럽다.
한의학에서는 주로 혈액이나 진액을 보충하는 약들, 예컨대 숙지황, 당귀, 맥문동 등등이 살을 찌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으나, 이런 약들은 대체로 기미가 무겁기 때문에 과도하게 목용하면 소화에 부담을 주고 설사를 유발할 우려가 많아서 적정량을 투약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이렇게 볼때 한약(보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논리는 터무니없다.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본인의 체질과 식사, 운동, 생활습관의 문제일 뿐이다. 한약은 소화기관을 활성화시키고, 몸의 진액을 조절함으로써 마른 이들의 살을 찌우고, 비만한 분들의 살을 빼는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