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환시장에 변수가 늘어났다. 지난 주말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내각 총사퇴 및 사표 반려 등 환율을 둘러싼 방정식 풀이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진 것. 투입된 변수와 환율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정은 당분간 정리될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도 복잡해지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그 명확한 방향성에 대해 자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달러/원 환율 하락을 압박하는 대내외 요인은 증가했으나 국내 정국에 파란이 일면서 섣불리 예측하고 움직이기 힘든 장세가 됐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에 따라 좀더 신중한 거래가 예상되며 환율도 살얼음판 거닐 듯 조심스런 행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1.30원 내린 1,147.30원에 마감, 종가기준으로 지난 2000년 11월 17일 1,141.80원이후 최저 수준을 가리켰다. 앞선 주(1,150.00원)보다는 2.70원이 하락, 더딘 하락이 전개됐음을 보여줬다. 이날 장중 고점은 1,149.80원으로 이달들어 장중 1,150원대를 경험하지 못한 날은 처음이었으며 저점은 1,147.00원으로 2000년 11월 20일 1,143.70원까지 내려선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3일 기준 환율은 1,148.40원. 이 기간 달러/엔 환율은 뉴욕장 기준으로 110.80엔에서 108.74엔으로 2엔 가량이 떨어져 달러/원의 하락 속도가 크게 뒤쳐졌다. 엔/원 환율은 이에 따라 100엔당 1,030원대에서 1,050원대로 크게 올랐다. 전반적으로 경제 요인만 놓고 보자면 환율은 이번주(10.13 ~ 10.17)에도 하락 기조가 이어질 여지가 크다. 지난주말 달러/엔 환율은 108엔대로 밀리며 하락 기조를 연장했다. 이달들어 10일까지 수출은 앞선 5일까지 감소에서 증가로 반전했으며 업체 매물 공급 의사는 충만하다. 증시의 외국인은 지난주까지 6일째 주식순매수를 기록하며 이 기간 1조7,076억원을 사들였다. 그러나 외환당국의 개입의지는 여전히 강건하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펀더멘털 차로 원화와 엔화가 동조화할 이유가 없다며 달러/원의 하락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지난주 비록 ‘1,150원’은 내줬지만 추가 급락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현 당국의 입장이다. 달러/엔 환율은 이같은 방어벽으로 인해 현해탄을 건너면서 달러/원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해졌다. 이같은 요인을 놓고 봤을 때 시장 구도는 지난주와 비슷하다. 수급이나 대외요인은 환율 하락을 요구하는 반면 당국의 개입 경계감이 하락을 제한하는 양상. 시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환율의 점진적인 하락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국의 의지를 감안하면 1,140원대는 지켜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 기술적으로는 1,142원이 걸리는 레벨이다. 또 위로는 앞서 강하게 지지되던 1,150원이 저항선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여기에 정치적인 변수가 가미될 여지가 있다. 국정혼란 등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림이 다소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가 현 시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외국인의 투자 형태가 어떻게 나올 지에 따라 시장은 흔들릴 수 있다. ◆ 시장예상환율 1,141.00~1,151.59원 뉴스핌(Newspim)이 은행권 외환딜러 17명을 대상으로 환율전망 폴(Poll)을 실시한 결과, 예상 환율의 저점은 단순평균으로 1,141.00원, 고점은 1,151.59원으로 집계됐다. 주중 예상 저점과 고점 가운데 최고치와 최저치를 뺀 나머지 전망치의 평균은 각각 1,140.75원, 1,151.59원으로 나타났다([환율전망표] 주간 환율 전망치) 이는 지난주 장중 저점(1,147.00원)보다 낙폭은 커지고 고점(1,154.00원)은 낮아져 박스권이 소폭 하향조정 됐음을 의미한다. 저점 예상치는 지난 2000년 11월 17일 장중 1,139.10원까지 내려선 이후 2년 11개월 최저 수준. 그러나 당국이 원화강세의 속도를 계속 조절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라 1,140원대에서 적극적으로 하락하기는 힘들 가능성이 크다. 조사결과, 아래쪽으로 '1,145원'을 하락의 한계로 점치는 견해가 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4명이 ‘1,140원’, 3명이 ‘1,142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지목했다. 나머지 3명은 ‘1,148~1,149원’을 하락의 한계로 지목, ‘1,150원’을 뚫고 내리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위쪽으로는 11명의 딜러가 '1,155원'을, 이어 3명이 ‘1,154원'을 상승의 한계로 지목해 반등도 여의치 않음을 시사했다. 나머지 2명은 ‘1,158~1,160원’을 고점으로 예상해 아래가 막힌 흐름이 위쪽으로 향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 달러 약세 기조의 지속 미 달러화는 약세를 잇고 있다. 기조 자체를 바꿀만한 변수가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주말 뉴욕에서 달러화는 미 8월 무역적자가 예상보다 적었음에도 하락했다. 달러/엔 환율은 한때 108.23엔까지 밀린 뒤 108.74엔으로 마감, 전날(109.07엔)보다 하락했다. 미 8월 무역적자폭는 전달보다 8억달러가 감소한 392억달러로 예상(415억달러)를 밑돌았다. 특히 이번주 미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순방에 나선다. 오는 17일 일본을 시작으로 필리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 아시아정상들과 직접대면한다. 이에 따라 이번주는 아시아통화 절상압력이 가중될 것이란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 일본 외환당국도 이같은 정치적 부담으로 지난 9일이후 개입 강도가 현격하게 약화됐다. 일각에서는 일 당국의 자세가 필사적인 레벨 방어에서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으로 변경돼 달러/엔 급락만을 막는 정도로 약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달러/엔 환율의 박스권이 지난달 하순 선진7개국(G7)회담 직후 110~115엔에서 105~110엔으로 하향조정됐다는 전망이 다수다. 달러/엔이 당분간 110엔을 회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있다. 다만 일 당국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엔 강세가 일본 경제의 회복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면 외환시장을 계속 예의주시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BOJ가 통화정책을 완화했지만 이는 엔화 강세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계속 작용하겠지만 그 강도는 이전만 못하리란 예상이 강하다. 정인우 도쿄미쯔비시 딜러는 “부시 방문전후로 일 당국의 개입이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며 “또 개입을 위해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하는 데 이도 여의치 않아 개입 여력이 소진된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어 달러/엔의 급락을 방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같다”고 전했다. 윤종원 ABN암로 딜러도 “지난 금요일에도 미국이 휴일을 앞두고 있어 일 당국이 개입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개입 강도가 약했다”며 “달러/엔이 심할 정도로 하락하고 있어 심각하게 봐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매물 부담도 상당 이와 함께 국내 수급상으로도 매물 압박이 상당하다. 기업들은 당국의 강한 지지선이던 ‘1,150원’이 무너지면서 매물 출회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1년 이상의 선물환매도를 통해 미리 달러를 팔고 있는 형편으로 알려졌다. 외화예금에 넣어둔 달러도 나오고 있다. 환율 하락기를 맞아 업체들은 수출대금의 경우 빨리 환전하고 수입할 것은 뒤로 늦추고 있다. 하종수 외환은행 딜러는 “전형적인 ‘리드앤래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매물 부담만으로 상당히 감당하기 힘든 장세”라고 전했다. 김장욱 조흥은행 딜러는 “물량이 엄청나게 풍성하며 달러를 사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업체들도 1,130원까지는 일단 보고 조금만 오르면 보유 물량을 던진다”고 말했다. 외국인 주식매매동향도 계속 환율 하락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증시의 외국인은 지난주까지 6일째 주식순매수를 기록, 이 기간 1조7,076억원을 사들였다. 이번주초에도 지난주 금요일 3,288억원의 순매수분이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이 계속 대규모의 주식순매수를 보일 경우, 외환당국의 매물 흡수도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 외환당국의 ‘홀로 아리랑’ 이같은 대내외적인 하락 압력 속에 국내 외환당국도 궁지에 몰리고 있다. 시장의 유일한 달러매수 주체로서 ‘환율 하락 추세’라는 대세에 맞서고 있으나 약간씩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1,150원’을 결국 내주면서 하락 속도조절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빨리 시장과 타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단 이번주에도 당국은 쉽게 개입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달러/엔의 동향을 살피면서 조금씩 방어 레벨을 낮출 가능성이 큰 것. 달러/엔이 하락하러라도 달러/원의 하락 속도는 이에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준근 BNP파리바 딜러는 “당국도 달러/엔보다 덜 떨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달러/엔이 많이 떨어져도 달러/원은 큰 폭으로 하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현욱 도이치은행 딜러는 “달러/엔이 더 밀린다면 당국도 속도조절을 통해 단계적으로 조금씩 하락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단 1,145원이 1차로 지지된 뒤 1원 단위로 지지선이 낮춰지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일부에서는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예상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앞서 1,170원의 경우도 그렇고 유연하게 대응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위로는 ‘1,150원’이 강한 저항선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서 1,150원을 워낙 강하게 막았다보니 업체들도 1,150원 언저리만 가면 무조건 팔려는 성향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 현 정국 상황의 변수화 다만 외환시장을 둘러싼 이같은 재료나 수급외에 정치적인 변수가 새롭게 부상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둘러싼 정국의 불투명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 경기회복을 위한 전방위의 노력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나 외국인의 투자전선에 일단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금요일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표에도 불구, 증시에서 순매수 기조는 이어졌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주말경 내각의 총사퇴와 반려가 있었던 가운데 정국혼선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도 일련의 불안감 앞에서 희석될 여지가 있다. 일단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매동향을 살피는 한편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파생되는 악재가 어느 순간 돌출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내포하고 있다. 외환정책의 경우도 두 갈래 길을 생각할 수 있다. 엔화와의 ‘디커플링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책일선의 담당자들이 국정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손을 놓게 되는 경우와 전세계적인 달러 약세의 흐름과 달리 국내 정국의 혼란이 원화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놓고 시장은 판단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현 정국과 관련, 이같은 의견을 내놨다. “지난 금요일에 표면적으로 외환시장에 영향은 없었지만 분명 한국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다. 김영삼정권 때도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통치력이 느슨해지면서 외환위기가 오게된 한 요인이 됐다. 일단 시장에 잠재적인 요인으로 있는 가운데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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