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변상문은 6·25전쟁 희생자를 기리며 화랑담배를 소개했다.
- 6월 25일 북한군이 개성·연안 전선을 기습했다.
- 제12연대는 통신 두절 속 강과 갯벌을 건너 철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끊어진 경계선
개성 북방에서 포성이 울리던 시각, 청단·연안·백천지구의 38도선에서도 전투가 시작됐다.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 제3대대는 청단 서쪽 10km 지점의 읍천리 강변부터 예성강 철교 동쪽 전포리까지, 약 54km의 방어정면을 맡고 있었다. 대대본부와 3개 중대는 이 긴 전선에 흩어져 있었다. 장병들은 산간 소로의 주요 길목 다섯 곳에 소대 거점과 경찰초소를 설치하고 경계했다.
거점 사이의 거리는 짧게는 1km, 멀게는 7km에 달했다. 한 곳이 공격받아도 이웃 부대가 곧바로 달려가 지원하기 어려웠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공격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경계초소와 소대거점에 직접사격을 집중하며 접근했다. 새벽 어둠과 가랑비 속에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장병들은 북한군이 어디까지 왔는지, 어느 초소가 아직 버티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때 확성기 소리가 전선에 울려 퍼졌다.
"개성과 연안은 인민군이 이미 점령하였다. 예성강 철교도 파괴되었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항복하라."
총성 사이로 들려오는 북한군의 방송이었다.
장병들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통신선은 곳곳에서 끊겼고, 후방으로 통하는 도로에서도 총성이 들렸다. 개성과 연안이 함락됐다는 방송은 고립된 거점마다 불안을 퍼뜨렸다.
06:00경. 제11중대의 세 개 소대가 철수를 시작했다.
중대장의 철수명령은 내려왔지만 소대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함께 대열을 갖출 수 없었다. 각 소대는 북한군과의 접촉을 유지하며 산악지대의 소로를 따라 물러났다.
제11중대장 한보석 대위는 정면의 북한군만 피해서는 퇴로를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흩어진 병력을 수습했다. 인근에서 철수한 타 부대 장병 63명도 합류했다. 한보석 대위가 이끄는 병력은 모두 160여 명이었다.
장병들은 청룡반도 구정리로 향했다.
철수 도중 북한군 약 1개 소대가 뒤를 따라붙었다. 제11중대는 일부 병력으로 대응사격을 가하며 추격을 막았다. 나머지 병력은 구정리 쪽으로 이동했다.
짧은 교전 끝에 북한군의 추격이 멈췄다.
다음 날 제11중대는 어선 한 척을 구했다. 그러나 160여 명이 모두 탈 수는 없었다. 한보석 대위는 병력의 절반을 먼저 승선시켰다. 남은 병력은 제3소대장의 지휘 아래 간조 때 드러나는 갯벌과 수로를 이용했다.
물이 빠지자 장병들이 갯벌로 들어섰다.
군화가 진흙에 빠져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소총과 탄약, 젖은 군장을 멘 장병들은 서로 팔을 붙잡고 이동했다. 물길이 남은 곳에서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건넜다. 뒤로는 북한군의 추격을 경계하고, 앞으로는 물이 다시 들어오기 전에 갯벌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 무렵 연안의 제3대대 본부도 각 중대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제3대대장 이무중 소령에게는 소대거점과 경찰계통을 통해 전투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전면적인 남침경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전방에서 총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국지적인 충돌인지 전면전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사이 연락망이 빠르게 끊겼다.
연안 북방의 제10중대 두 개 소대는 분산철수 중이었다. 백천지구의 제9중대도 예성강 철교를 경계하던 제1소대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한 채 흩어지고 있었다.
제10중대는 대대본부와 같은 연안 영내에 주둔하고 있었다. 조기백 중위가 지휘하는 한 개 소대는 제1소대 대전으로 전진해 있었다. 이 소대는 109고지로 이동하던 중 습지대에서 북한군의 사격을 받았다.
북한군은 이미 전방 소대거점을 점령한 상태였다.
소대는 기습사격을 받고 흩어졌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제10중대는 상황을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낙오병을 수습하며 연안으로 철수했다.
대대 우측방의 고랑포 일대에서도 북한군이 남하했다. 연안의 측방까지 위협받자 제10중대장 박형수 중위는 반정리 남쪽 59고지로 물러나 급편방어진지를 만들었다.
안개가 짙고 가랑비가 내렸다.
먼 곳의 북한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북한군 일부 병력은 그 틈에 제10중대 소대거점 사이로 침투했다. 진지를 하나씩 공격하지 않고 거점 사이의 빈 공간을 지나 임진강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차량과 배를 구할 수 있는 역구룡을 점령하고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06:00경 안개가 잠시 걷혔다.
59고지의 제10중대 장병들은 북쪽 1.7km 지점인 53고지에서 북한군이 붉은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북한군 본대에 보내는 신호였다.
박형수 중위가 60mm 박격포 사격을 명령했다.
포탄이 53고지로 날아갔다. 북한군도 61mm 박격포로 응사했다. 두 고지 사이로 박격포탄이 오갔다.
얼마 뒤 126고지에 배치됐던 제3소대 일부 병력이 59고지에 도착했다. 박형수 중위는 소대가 전해온 상황을 듣고 철수를 결정했다. 더 늦으면 퇴로가 끊길 수 있었다.
제10중대는 석도리를 거쳐 임진나루터로 이동했다.
그러나 나루터에는 배가 없었다.
장병들은 강변에서 건널 방법을 찾았다. 강 건너에는 문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지만, 당장 병력을 옮길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제10중대는 임진강을 건너지 못한 채 남쪽의 금천리 방향으로 이동했다.
연안의 대대본부도 철수를 결정했다.
북한군은 경계진지를 돌파해 시가지로 접근하고 있었다. 통신이 끊긴 각 중대는 서로 다른 길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무중 소령은 연안에 더 머물면 대대 병력이 포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0:00. 제3대대가 연안을 떠났다.
장병들은 백천포에서 어선 두 척을 구했다. 먼저 탈 수 있는 병력부터 승선했다. 나머지는 해안과 갯벌을 따라 이동하며 배를 기다렸다.
어선은 강화도로 향했다.
좁은 배 안에서 장병들은 젖은 군복을 입은 채 몸을 맞대고 앉았다. 부상자를 배 바닥에 눕히고, 소총은 바닷물에 젖지 않도록 가슴에 끌어안았다. 멀어지는 연안 쪽에서는 총성과 포성이 계속 들렸다.
제3대대 병력은 강화도를 거쳐 문산리 방향으로 철수했다. 제9중대와 제10중대의 일부 병력도 뒤이어 백천포를 통해 빠져나왔다.
6월 25일 하루 동안 제12연대의 연대본부와 제1대대, 제2대대, 제3대대는 문산리·김포반도·강화도 일대로 흩어졌다. 대대별 대열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지휘관들은 도착한 병력을 수습했다. 장병들은 자신의 중대와 소대를 찾아다녔다. 개성·청단·연안·백천의 경계부대는 수십km의 전선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이 철수는 계획된 기동이 아니었다. 통신이 끊기고 퇴로가 위협받는 가운데, 포위를 피해 병력을 보존하기 위한 이탈이었다.
제12연대 장병들이 강과 바다를 건너는 동안 장단 일대의 국군 제13연대는 북한군의 접근에 대비하고 있었다. 대덕산과 고랑포, 임진나루터를 잇는 곳에서 전투가 이어질 참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