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3장 초기전투 ㉚ 옹진전투1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AI 핵심 요약

beta
분석 중...
  • 1950년 6월 25일 김희태 소령이 지휘하던 제1대대가 북한군 기습으로 무너졌다.
  • 제2·3중대는 통신 두절 속에 붕괴했고 김 소령도 06시 전사했다.
  • 제2대대가 역습해 일부를 구했지만 전선은 이미 무너져 해상철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맥없이 무너진 제1대대의 주저항선

1950년 6월 25일 04:00.

옹진반도는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산과 계곡에는 새벽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병사들은 또 하나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각, 제1대대장 김희태 소령은 제3중대로부터 긴급한 상황을 보고받았다. 북한군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토끼고지와 189고지 사이의 무명고지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김 소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동안 옹진반도에서는 북한군의 국지적인 도발이 자주 일어났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도발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1/4톤 차량에 올라 제3중대 본부가 있는 자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자동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다.

제1대대가 지켜야 할 주저항선은 이미 허물어지고 있었다. 제2중대는 두락산과 412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 오른쪽 자동과 충무고지에는 제3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자 모든 통신이 끊겼다.

[AI이미지=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전화선은 불통이 되었고, 중대본부와 대대본부 사이의 연락도 두절되었다. 포성과 총성이 새벽안개를 뒤흔들었다. 병사들은 적이 어디까지 다가왔는지, 어느 부대가 아직 진지를 지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휘관이 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사이, 전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자동으로 향하던 대대장 김희태 소령 차량 앞에 제3중대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충무고지 쪽에서 황급히 철수하고 있었다. 차량을 세운 대대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병사들의 얼굴은 흙과 화약 연기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들의 보고는 다급했다. 제3중대 제2소대의 거점인 토끼고지에서 소대장 김호경 소위를 비롯한 여러 명이 전사했고, 방어진지가 북한군에게 돌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대대장은 깨달았다. 이것은 평소의 국지적인 도발이 아니었다. 북한군은 이미 전면적인 남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대대본부가 있는 곳까지 약 2km를 단숨에 달렸다. 그가 타고 온 1/4톤 차량은 포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김희태 대대장은 대대본부에 도착하자 두락산과 412고지에 배치된 제2중대의 상황부터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통신은 완전히 끊겨 있었다. 그는 대대 예비대인 제1중대에 즉시 명령을 내렸다. "두락산과 412고지로 투입한다. 제2중대의 상황을 확인하고 진지를 보강하라."

대대본부에 남아 있던 병력에는 철수 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대대장 자신은 제3중대 방어지역으로 향했다. 흩어져 물러나는 병력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제1대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그가 제1중대의 출동 준비 상태를 확인하려 대대 영문을 나서는 순간,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포탄의 파열음이 터졌다.

쾅―!

대대장 김희태 소령이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온 육신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시계는 06:00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대장의 전사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대대장이 전사했다는 소문은 두려움이 되었고, 두려움은 명령보다 빠르게 전선을 휩쓸었다. 연대 예비대였던 제1대대가 제때 전투지역으로 투입되지 못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북한군 제3여단은 38도선을 돌파한 지 약 1시간 30분 만에 제1대대의 저항력을 급속히 무너뜨렸다. 주저항선 위의 제2중대와 제3중대는 소대 또는 분대 단위로 흩어졌다.

제1대대의 최전방에 있던 두락산과 412고지에서는 05:30경부터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제2중대 병사들은 고지를 지키기 위해 참호와 능선에서 맞섰다.

총검이 부딪쳤다. 수류탄이 터졌다. 비명과 고함이 포연 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방어선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제2중대 병력은 주저항선에서 흩어져 철수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자동과 충무고지를 방어하던 제3중대 역시 06:00경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대장 대리인 제1소대장과 제2소대장이 전사했다. 지휘체계가 와해되면서 병사들은 어디로 물러나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제3중대 병사들 대부분은 옹진 지구에서 오랫동안 복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병사들은 제각기 육로나 배를 이용해 부포와 옹진 쪽으로 철수했다. 06:00 이후였다.

북한군이 충무고지 능선을 따라 남하해 제1대대 본부지역을 점령했다. 제1중대는 어느새 북한군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그들을 살렸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안개가 깔려 있어 북한군은 제1중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제1중대는 자동으로 진출했다.

30분쯤 지나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가 트이는 순간, 좌우 양쪽에서 북한군의 집중사격이 쏟아졌다. 제1중대는 그대로 진퇴유곡에 빠졌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두 시간 남짓 혈전을 벌였지만, 중대가 보유한 탄약은 바닥을 드러냈다. 소대장과 분대장들의 목소리도 하나둘 포성과 총성 속에 묻혔다.

그때였다. 뜻밖에도 북한군의 사격이 멎었다. 잠시 뒤 남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제5중대 병사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그 함성은 포위망 속에서 죽음을 각오했던 제1중대 병사들에게 살아나갈 길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제2대대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2대대의 역습

06:20 제2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주저항선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연대장으로부터 받았다.
송호림 대대장은 즉시 역습계획을 세웠다. 대대는 은동리와 자동 일대의 북한군을 격퇴하고 제1대대의 주저항선을 되찾아야 했다.

제7중대는 제8중대 제2소대의 배속을 받아 목표 1인 사토를 탈취한 뒤, 목표 3인 운동·동쪽 무명고지로 진출하도록 했다. 제5중대는 제8중대 제1소대의 배속을 받아 목표 2인 자동을 탈취한 뒤, 목표 4인 토끼고지로 진출해야 했다. 제6중대는 대대 예비대였다.

폐허가 된 공터 / 광복~1950년대 / 1952-53.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격개시 시각은 07:00. 공격 방향은 말재를 지나 북쪽으로 뻗은 능선이었다. 그러나 제2대대가 차량행군을 마치고 말재 정상에 도착했을 때, 고개 아래 1.5km 지점에서 붉은 깃발을 앞세운 북한군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전투종대로 남진하고 있었다.

제2대대는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제5중대와 제7중대를 공격개시선에 배치하고, 대대의 화력을 집중했다.
제8중대가 운용하는 81mm 박격포 4문은 말재 남쪽 기슭의 방열 진지에 자리 잡았다. 제8중대의 81mm 박격포

8문은 대대 지휘소 주변 진지 부근에 전개했다. 말재 정상 부근에는 연대 57mm 대전차포 2문과 중곡동의 81mm 박격포 진지 남쪽 1km 지점에 배치된 제7야전포병대대 제3중대의 105mm 곡사포 5문 가운데 1문의 화력이 추가되었다. 대체로 1개 연대의 지원 화력에 가까운 규모였다.

07:00가 조금 지났을 때, 북한군은 고개 아래 와지선 부근까지 접근했다. 대대장 송호림 소령이 약정된 공격개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신호탄이 새벽하늘을 가르자 박격포와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무런 경계조치도 없이 행진하던 북한군의 대열 한복판에 포탄이 떨어졌다.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비명과 고함이 터졌고, 북한군 병사들은 몸을 피할 곳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좌우익선의 제5중대와 제7중대가 공격개시선을 넘어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자동 부근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던 제1중대는 그 함성과 포성을 들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병사들에게 제2대대의 공격은 구원의 손길이었다.

제2대대의 역습이 순조롭게 추진되던 09:00, 제17연대장은 말재에 대대 관측소를 설치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전방 상황을 살폈다.

제3대대의 상황이 다급했다. 연대장은 제2대대장에게 제3대대를 지원할 병력 1개 중대를 차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난감했다. "지금은 공격 중입니다. 병력을 빼낼 수 없습니다." 공격의 한가운데에서 중대 하나를 떼어내면 역습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연대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제8중대 제3소대와 81mm 박격포 8문, 제7야전포병대대 제3중대를 강령으로 이동시켜 제3대대를 지원하도록 했다. 제5중대와 제7중대는 좌우 익선에서 각각 목표 1과 목표 3을 점령했다. 송호림은 대대 관측소를 자동 남쪽의 무명고지에서 제1대대 본부 주변의 동두봉으로 옮겼다.

14:00. 제2대대의 공세는 무르익고 있었다. 제1대대가 잃었던 주저항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제2대대장에게 연대장 철수명령이 전달되었다. 송호림은 명령을 믿을 수 없었다.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그런데 철수하라니요?" 그는 연대 연락장교를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잠시 뒤, 옹진으로 떠났던 탄약보급 차량이 네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수색대를 급파해 확인한 결과, 연대본부는 정오 무렵 이미 강령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연대본부의 위치와 철수 방향을 알려줄 통신도 끊겨 있었다.

송호림은 그제야 전황의 실체를 깨달았다. 눈앞의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었지만, 옹진반도 전체의 전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제2대대는 은동과 자동 정면의 상황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제1대대의 주저항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연대의 다른 전선에서는 철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송호림 소령은 마침내 공격 중지를 명령했다. 제5중대는 휘하 제7중대를 후위로 삼아 철수했다. 그러나 제2대대가 부포를 목표로 철수하던 중, 북한군의 추격을 받았다.

양면에서 공격이 쏟아졌다. 선두의 제5중대에서는 중대장 김교섭 중위를 비롯한 많은 장병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살아남은 병력도 뿔뿔이 흩어졌다.

치열했던 역습은 그렇게 끝났다. 제2대대는 북한군의 진격을 한때 저지하고 제1대대를 구원했지만, 전선 전체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제1대대와 연대 직할대 병력은 부포에 모였다. 병력은 밤이 되어서야 약 4km 떨어진 창린도에 집결할 수 있었다.
제17연대 본부에서도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취야에서 양원과 강령 축선으로 진출한 북한군 제14연대가 양원을 점령하기 전에 각 부대는 연대본부와 직할대, 지원부대를 강령으로 철수시켰다.

이로써 제17연대는 동·서로 양단된 옹진반도에서 부포와 사곶리 두 지점으로 나뉘어 해상철수를 해야 했다.

옹진반도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고지와 참호를 뒤로한 채 바다로 향했다. 승리할 수 있었던 전투도 있었고, 끝까지 지키지 못한 진지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전쟁이 이토록 빠르게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은 1950년 6월 25일이었다. 대한민국의 가장 긴 전쟁이 시작된 날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사진
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