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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3장 초기전투 ㉜ 옹진전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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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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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상문은 6·25전쟁 희생자를 기리며 '화랑담배' 배경을 전했다.
  • 제17연대는 부포항에서 LST 801함에 올라 해상 철수했다.
  • 제2대대도 사곶리·연평도 거쳐 각지로 흩어져 생존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해상 철수

옹진반도의 전선은 이미 여러 갈래로 끊어지고 있었다.

제17연대장은 더 이상의 공격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각 부대를 중기동으로 철수시키는 한편, 강령 남동쪽 약 4km 지점의 조촌교를 확보하라고 명령했다. 공병대장에게는 북한군 전차가 우회할 수 없도록 조촌교를 폭파하라는 임무가 내려졌다.

6월 25일 20:00. 육군본부에서 회신이 왔다. 해군 함정이 곧 지원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느 함정이, 얼마나 많은 병력을 태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북한군이 언제 추격해 올지도 몰랐다.

제17연대장은 부포항에 집결한 차량 80여 대를 바라보았다. 차량을 모두 배에 실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세워두면 부포항에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드러내는 꼴이었다.

그는 차량을 행군제대 대형으로 편성했다. 차량 3∼4대씩을 한 조로 묶어 부포항에서 중기동까지 왕복하게 했다. 전조등도 환하게 켰다. 멀리서 보면 국군 증원부대가 부포항으로 계속 들어오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아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위장 작전이었다.

23:30. 해군 LST 801함이 부포항에 들어왔다. 제17연대장은 함장에게 요청했다. "26일 오전 5시까지는 병력을 모두 승선시켜 주시오."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대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죽교리와 중기동 일대에 병력을 배치했다. 그들이 북한군을 막고 있는 사이, 부포항에 모인 병력과 장비를 은밀히 배에 실어야 했다.

[AI이미지=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자정이 지나면서 차량들이 하나둘 부포항으로 들어왔다. 전조등은 꺼져 있었다. 운전병들은 엔진 소리마저 줄이려 했다.

05:00. 제11중대와 제12중대 병력, 공병과 57밀리미터 대전차포중대 등 연대의 주력이 부포항에 집결했다. 그제야 북한군이 국군의 철수를 알아차렸다. 포탄이 부포항 일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11중대가 도보로 먼저 중기동을 통과했다. 차량부대는 뒤에 남아 사격을 계속했다. 밤새 위장행군을 벌였던 차량들은 이번에는 실제 철수병력을 엄호하는 방패가 되었다.

부포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전투는 3시간 30분가량 계속되었다. 북한군은 폭파된 조촌교 옆으로 우회로를 만들었다. 전차가 중기동으로 접근했다. 궤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제17연대장은 제7야전포병대대장 박정호 중위에게 보병부대와 협조해 중기동을 지키도록 했다. 연대 57mm 대전차포중대장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57mm 대전차포 1개 소대를 갈림길에 배치하라. 전차를 막아야 한다."

북한군의 선두 T-34 전차가 갈림길로 들어섰다. 거리는 약 200m.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이 선두 전차의 측면을 때렸다. 전차가 멈춰 섰다. 뒤따르던 전차들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한 발이 부포항의 시간을 붙들었다.

부포항의 마지막 방어선

08:00. LST 801함은 조수 관계로 부포항에서 약 5km 떨어진 앞바다로 이동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큰 배가 항구 가까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력은 VP정 4척과 민간 어선을 이용해 LST로 옮겨 타야 했다. 그러나 제17연대가 보유한 병력과 장비를 모두 실을 수는 없었다. 100여 명의 병력이 여전히 육지에 남아 있었다. 차량과 중화기도 대부분 포기해야 했다.

병사들은 장비를 적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파괴했다. 105mm 곡사포 1문은 분해해 바다에 던졌다. 철제 부품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함께 싸워온 무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10:30. 북한군이 부포항 부두 가까이 접근했다.

제17연대장과 제7야전포병대장은 파괴하지 않고 남겨둔 105mm 곡사포 1문을 향해 달려갔다. 포탄을 장전하고 접근하는 북한군을 향해 요란사격을 가했다. 포성이 부포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연대장은 곧 출항을 결정해야 했다. 더 늦으면 LST 801함마저 북한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때 제7야전포병대대 예비대 중위와 동 중대 전포대장 박승옥 소위가 연대장에게 건의했다. "아직 승선하지 못한 병력이 남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포사격으로 철수를 엄호하던 병사들을 남겨둔 채 출항할 수 없다고 했다.

제17연대장은 출항을 늦췄다. 마지막 엄호병력까지 승선한 뒤에야 LST 801함은 부포항을 떠났다. 6월 26일 11:00였다.

바다로 나왔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짙은 해무가 시야를 가렸다. LST 801함은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바다를 헤맸다.

마침 인근을 지나던 어선이 함정을 발견했다. 어선의 안내를 받은 LST 801함은 그날 19:00경 연평도에 도착했다.

연평도에는 제17연대 병력 40여 명과 연평면 향토방위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섬을 지키기 위해 임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해군본부는 제17연대 병력을 철수시키기 위해 해군함정 2척, JMS 302함과 JMS 307함을 연평도로 보냈다.
6월 27일 08:00. 제17연대 주력은 연평도를 떠나 수원으로 이동했다. 이후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6월 28일 다시 대전으로 향했다.

연대는 대전 선화동의 국민학교에서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고 부대를 재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병력이 부포항에서 철수한 것은 아니었다. 옹진반도의 다른 한쪽에서는 제2대대가 사곶리로 향하고 있었다.

무기 점검 중인 전차소대원들. 광복~1950년대 / 1950.7.22.[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곶리 철수

제2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역습을 중지한 뒤 불당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병력 400여 명이 있었다. 지친 얼굴들이었고, 탄약은 얼마 남지 않았다.

수색대를 내보내 적정을 확인한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양원과 강령은 이미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옹진에는 북한군 제38경비 제3여단의 선발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부포항으로 가려면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을 돌파해야 했다.
송호림은 지도 위에 놓인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부포로 갈 수 없다면 바다로 나갈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철수 목적지를 사곶리로 정했다.

대대는 행군제대를 편성했다. 보병이 앞에 섰고, 그 뒤로 차량제대가 따랐다. 차량제대는 2.5톤 트럭 7대로 구성되었다. 중간 집결지는 옹진 남쪽 약 3km 지점의 연곤산이었다.

제7중대장 조경학 중위가 도보제대를 지휘했다. 그는 옹진 남쪽으로 우회해 연곤산으로 향했다. 공병대는 철수로를 확보하고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살폈다.

차량제대는 제1대대 부대대장 박주용 대위가 지휘했다. 차량들은 옹진 시내로 들어갔다. 병사들은 차량 위에서 사방을 경계했다. 기관총 사수들은 골목과 지붕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옹진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북한군과 여러 차례 교전이 벌어졌다. 차량에 거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차량제대는 멈추지 않고 19:30경 연곤산 동쪽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옹진에는 북한군 제14연대와 제38경비 제3여단 선발대가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제2대대 차량제대의 기습적인 사격과 빠른 행군에 당황한 듯, 북한군은 차량제대가 옹진을 빠져나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옹진 남쪽 어귀에서 연대 연락장교가 송호림을 찾아왔다. 그는 연대장의 명령서를 전달했다. "제2대대장은 제1대대와 제2대대를 통합 지휘하여 사곶리로 철수하라."

연곤산에는 제4중대와 제10중대, 까치산의 제9중대 일부, 제7중대 오병진 중위가 이끄는 병력, 그리고 흩어졌다가 길을 찾아온 낙오병들이 모여들었다. 병력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송호림은 북한군의 추격에 대비해 제7중대를 후위로 배치했다. 20:00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대대는 사곶리에 도착했다.

배를 찾아라.

사곶리는 작은 어항이었다.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들어올 수 없었다. 옹진반도 남서쪽의 섬들과 가까워 어선과 군용선이 자주 드나들었지만,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군부대가 과천대까지 주둔하고 있었고,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배가 나타날 때마다 부두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날은 각 기관원과 그 가족, 피란민들이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작은 어선 한 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송호림은 부두로 나가 연평도를 향해 공중전화 다섯 차례를 걸었다. 전화선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마침내 연평면 김두익 경사와 연결되었다.

송호림은 사곶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병력과 피란민이 항구에 집결해 있습니다. 배가 필요합니다." 김두익은 용호도에 정박 중인 대성호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잠시 뒤 대성호가 사곶리에 도착했다. 20톤급 기선이었다. 국군 병력을 포함해 경찰, 민간인 등 약 2천여 명이 항구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대성호의 승선 정원은 90명에 불과했다.

사곶리와 용호도 사이의 거리는 약 1km였다. 대성호가 두 곳을 왕복하는 데는 약 30분이 걸렸다.

송호림은 승선 순서를 정했다. 국군이 먼저였다. 그다음은 경찰, 마지막은 일반 민간인이었다.

대성호는 사곶리와 용호도 사이를 오갔다. 한 번, 두 번, 열 번.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스무 번째 운항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북한군 포탄이 사곶리 부근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송호림은 수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3대대의 잔여 병력 100여 명이 범선 2척을 타고 용호도에 도착했다. 이로써 용호도에 철수한 국군 병력은 1천 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송호림은 용호도에서 부대를 다시 편성했다.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대대 보급관 박건근 중위에게 피란민과 장병들의 식량을 확보하도록 했다. 그러나 섬에는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식량이 없었다.

그때 연대 선박단장이 대성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약 네 시간이 지난 13:00 그는 20톤급 기선에 대형 화물운반선을 예인해 돌아왔다.

제2대대는 대성호와 새로 확보한 기선에 화물선을 연결했다. 선박 승무원과 그 가족들도 함께 태웠다. 용호도를 떠난 선단은 영종도를 향했다.

항해 도중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뱃길이 끊길 듯 보였다. 영종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경이었다.

세 선단의 항해

영종도에서 제2대대는 기선 한 척을 더 확보했다. 송호림은 선박을 세 선단으로 편성했다.

제1선단은 송호림 자신이 지휘했다. 제2선단은 제2대대 부대대장 이동호 대위가, 제3선단은 제1대대 부대대장 박주용 대위가 지휘했다.

각 선단은 서로 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출항하기로 했다. 한꺼번에 움직이다 적에게 발견되면 모든 병력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장병들에게 잠시 쉴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고지와 도로에서 싸웠고, 철수로를 찾아 밤길을 걸었으며, 배 한 척을 구하기 위해 항구에서 기다렸다.

6월 27일 18:00. 제1선단이 연평도를 출발했다. 북한군 함정과 마주칠 경우에 대비해 선단 사이의 거리는 한 시간으로 유지했다.

6월 28일 06:00. 제1선단이 인천항에 들어왔다. 그러나 인천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또 다른 절망이었다.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송호림은 장기간의 이동에 대비해 식량부터 확보하려 했다. 인천 시내의 행정기관들을 찾아다녔지만, 혼란에 빠진 도시에서 식량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제1선단의 장병 가운데 절반 이상은 대대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수원 방향으로 이동했다.

나머지 병력은 남쪽으로 향하는 선박을 구했다. 송호림은 인천에 혼자 남아 제2선단을 기다렸다. 제2선단이 입항하자 그는 그들과 함께 인천항을 떠났다.

피란선은 군산을 향했다. 6월 29일 07:00. 제2대대 병력은 군산에 상륙했다.

박주용 대위가 지휘한 제3선단은 같은 날 11:00 인천항에 도착했다. 병력은 수원을 거쳐 대전으로 이동했다.

옹진반도에서 싸운 장병들은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서로 다른 항구에 도착했다. 누군가는 수원으로 갔고, 누군가는 군산으로 향했으며, 또 다른 병력은 대전으로 내려갔다.

부대는 흩어졌지만 살아남았다.

그들이 버리고 온 옹진반도에는 파괴된 포와 차량, 무너진 참호, 미처 수습하지 못한 전우들이 남아 있었다.
1950년 6월의 바다는 그 모든 것을 말없이 품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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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도 없네"…청계천 자율주행버스로 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버스가 스스로 달리는 것도 신기한데, 창밖으로 야경까지 볼 수 있네요."(서울시민 박모(53)씨) 지난 22일 저녁 청계광장 '청계 A01' 정류장. 은색 자율주행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하나둘씩 버스에 올라탔다. 운행 시작까지 20분가량 남은 시점에 이미 정원 8석이 모두 찼다. 길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버스 사진을 찍었다. 버스 내부에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앞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운전대와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름없이 도로 위를 달렸다. 옆차선에서 갑작스레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정류장에 '청계 A01'이 정차돼 있다. 2026.10.22 blue99@newspim.com 서울시는 이날부터 청계천 자율주행버스 '청계 A01'의 야간 운행에 돌입했다. 청계 A01은 '청계광장~청계3가(세운상가)~청계5가(광장시장)' 4.8km를 왕복으로 오간다. 지난해 9월 운행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운영됐다. 앞으로는 주간 운행을 중단하고 첫차가 오후 7시, 막차가 밤 11시에 청계광장에서 출발한다. 해당 노선에는 차량 2대가 투입돼 순환 운행한다. 양방향 총 11개의 정류소에 정차한다. 청계광장 기준 30분 간격으로 하루 9회 운영한다. 운영은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맡는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에서 '청계 A01'을 검색하면 정류소 위치와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버스를 야간 시간대에 정기 운행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서울시는 청계천이 광화문·종로·을지로 일대의 관광명소와 상권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퇴근 이후에도 산책, 식사, 관광 등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 심야 교통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계 A01 노선 인근에는 광화문광장, 보신각 등 명소와 종각·관철동의 음식점 거리, 을지로 상권, 광장시장 등이 위치한다. 서울시는 이번 야간 운행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명소와 상권을 하나의 교통축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청계 A01' 내부 좌석. 2026.10.22 blue99@newspim.com 이날 현장에서는 야간 시간대 운영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계광장에서 버스에 올라 광장시장에서 하차한 김모(29)씨는 "직장인들은 밤에 버스를 운영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야간 운영 방식이 반갑다"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서도 자율주행버스를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향후에도 또 탈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율주행버스로 서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집트에서 여행을 왔다는 30대 마리얌씨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율주행버스가 운행 준비 중인 것을 보고 궁금해서 타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며 "서울의 밤거리를 구경하면서 새로운 기술까지 경험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해당 기간 452명이 버스에 탑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일대는 밤 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아 자율주행버스 야간 운행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실제 서울시민과 내국인·외국인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계 A01은 자율주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조이스틱으로 수동운전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운행 시간대를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한 만큼 안전성 확보에 더욱 주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시간대 시범운행을 실시하면서 외부 전문가와 함께 안전성을 미리 검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버스의 정규 대중교통수단 정착을 위해 단계적인 유료화를 추진한다. 서울 순환버스 요금(1400원) 수준을 고려 중이다. 우선 야간운행 초기에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 요금은 부과되지 않지만 탑승 시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밤을 체류와 소비의 시간으로 만드는 '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번 청계 A01 야간 운행이 시민들의 야간 이동 편의를 높이고 지역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blue99@newspim.com 2026-10-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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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佛 시위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세종=뉴스핌] 김범주 기자 = 프랑스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시위에 이어 폭력사태로 혼란에 빠졌다. 열악한 교육 환경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가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긴축 기조에 대한 반발까지 겹쳤다. 그 배경에는 누적된 재정적자가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약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 방안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 '저항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5% 안팎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추산이다. 한국 경제는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월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 1200억달러를 넘어섰고,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63조원 넘게 더 걷힐 전망이다. 하지만 연초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제외한 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비와 유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복면을 쓴 한 시위자가 불타는 자전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실적 따라 출렁이는 법인세…의무지출은 계속 불어나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수출 확정치는 1211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7% 늘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605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도체 호황에 나라 곳간도 두둑해졌다. 올해 국세수입은 추가경정예산 대비 63조200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세입 전망은 더 낙관적이다.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000억원 늘었다. 특히 법인세는 216조7000억원으로 올해 추경 기준보다 115조4000억원 많다. 문제는 법인세가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한 세목이라는 점이다. 실제 법인세 수입은 2022년 103조6000억원에서 2023년 80조4000억원,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2년 만에 41조1000억원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업 실적 악화와 세제 변화 등이 맞물리며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밖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동력도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제시한 IT 부문 제외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반도체 기업들이 수출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감소했다. 수출과 세수는 호황인데 일자리와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양극화가 이어지고 있다. 세수는 경기 흐름에 따라 급변할 수 있지만, 한번 늘린 지출은 다시 줄이기 어렵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입을 토대로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사업을 확대하면, 경기 하강기에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GDP 대비 의무지출 비율은 2025년 13.9%에서 2072년 21.6%로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의무지출에는 연금과 복지급여, 지방이전재원,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전체 정부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54.4%에서 64.3%로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 100원 가운데 64원 이상을 법률과 기존 제도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35년 71.5%에서 2055년 126.3%까지 오를 것으로 추계됐다. 현행 제도와 일정한 경제·인구 가정을 전제로 한 전망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한국과 프랑스의 국가채무비율은 통계 범위가 다르다. 한국의 장기전망은 국가채무(D1)를, 프랑스는 일반정부부채(D2)에 해당하는 범위를 쓴다. 숫자만 단순 비교해 한국의 재정 상황이 프랑스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위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위기 때 늘린 지출, 끝내 되돌리지 못한 프랑스 재정 측면에서 프랑스 위기를 들여다보면, 경기침체기에 늘린 지출을 이후 충분히 줄이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프랑스와 유로존은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을 비슷한 폭으로 늘렸다. 하지만 2019년까지 유로존이 증가분의 약 4분의 3을 되돌린 반면, 프랑스는 절반가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 결과 2019년 프랑스의 GDP 대비 기초재정지출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2.1%포인트(p)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증가와 코로나19·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부담이 더해졌다. 올해 2분기 말 프랑스 정부부채는 3조5955억유로로 GDP의 119%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은 커졌지만 교육·복지·생활비 지원 등 공공서비스 확대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배경이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프랑스 사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생활비 부담,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다만 장기간 누적된 재정적자가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이 열린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E(7세대)를 관람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반도체가 벌어준 '골든타임' 고령화는 한국에 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OECD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2024년 한국이 29.3명으로 프랑스(40.2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2054년에는 한국 84.5명, 프랑스 53.4명으로 역전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5~2030년 한국의 GDP 대비 연금 지출이 0.7%p 늘어 프랑스(0.1%p)의 7배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프랑스의 재정 여건과 사회·정치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번 늘린 지출의 지속 가능성과 향후 구조조정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번 늘린 지출을 앞으로 들어올 세수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논의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구상 중인 미래대응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일반회계에서 100조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그만큼을 기금에 넣는 게 바람직한지는 정부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장기적인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택했다기보다는 새로 생긴 세원을 두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되돌릴 수 없는 지출에 세수를 모두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 시간을 미래에 쓸 돈을 마련하는 데 쓸지, 미래에도 계속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ideopen@newspim.com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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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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