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강신철이 18일 국방장관에 취임했다.
- 청문회는 야당 반발 속 논란을 남겼다.
- 전작권 전환과 위기대응이 첫 과제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전작권·사관학교·대북 억제, 임기 중 반드시 매듭지을 과제
"조용한 리더십" vs "각론에 약하다"… 곁에서 본 강신철의 '두 얼굴'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군 경력만 보면 이만한 국방장관은 드물다. 18일 취임하는 강신철 장관은 육사 46기로 청와대 행정관, 국방장관 군사보좌관,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주사우디대사를 거쳤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 정부에서 모두 중용됐다. 국민이 그를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강 장관이 국방부 청사에 들어서기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16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밤 11시를 넘겨서야 끝났고, 이튿날 국회 국방위원회는 국민의힘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여당은 전작권 전환과 사관학교 통합 등 개혁 의지가 강하고,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만큼 한미동맹 관리에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청문회 직후 전원이 '부적격'으로 의견을 모았고, 사관학교 통합 등 현안에 대해 소신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여당이 주도한 보고서에도 '철거민 특공'과 자녀 상가 재산신고 누락에 대한 소명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담겼다.
야당의 동의 없이 출범하는 국방장관은 취임 첫날부터 청문회가 남긴 '빈칸'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결국 국방장관의 자질은 이력의 화려함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 무엇을 기준으로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청문회가 보여준 국방 철학, 선명함과 모호함 사이 = 청문회에서 강 장관의 정책 답변은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해서는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이고 한국군 3축 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고, 잇따른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에는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전작권 전환은 무조건적인 조기 전환이 아니라 한미가 합의해 온 '조건에 기초한 전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에는 짧게나마 중동에서 공관장을 지낸 경험을 들며 "국민 안전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핵심 쟁점에서는 모호함이 남았다. 사관학교 통합이 대표적이다. 청문회 오전에는 여당 의원 질의에 "개혁 의지가 있다"면서도 "정부 기본안이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고, 오후에는 "확실하게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야당 질의에는 무조건 반대도, 무조건 찬성도 아니라고 했다. 청문회 준비단 첫 출근 때도 통합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확답을 피하고, 과거 형태나 위치와 상관없이 미래에도 대한민국의 사관학교일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이 말을 두고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침투에 대한 인식도 논란거리다. 그는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다. 강 장관은 청문회에서 "작전 실패는 아니었다"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격추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군은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고, 그는 서면경고를 받았다. 실패를 실패라고 인정하는 데서 교훈이 시작된다. 장관이 과거 작전의 결함을 어떻게 복기하느냐는 향후 합참의 위기관리 문화를 좌우한다.
신상 문제에서의 태도도 아쉬웠다. 장남의 복무 특혜 여부를 따지는 질의에 "부대에 가서 우리 아들이 어떻게 근무했는지 확인하십시오"라고 답했다가 국방위원장의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 순발력은 있었지만 절제는 부족했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데 짜임새가 있었다"… 곁에서 본 강신철 = 강 장관과 국방부 장관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전직 인사 A씨는 그를 '조용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기억한다.
전임 군사보좌관이 개인 사정으로 조기 교체되면서 강 장관은 장군 진급자 교육과 해외 시찰도 건너뛴 채 급히 투입됐다. A씨는 "전임자 때는 어수선했는데, 강 장군이 온 뒤 가보면 직원들 표정이 밝으면서도 짜임새가 있었다"며 "밑에 사람들을 몰아붙이지 않는데도 알아서 움직였다. 지장이자 덕장"이라고 했다. 정책 현안을 물으면 "늘 막힘이 없었다"고도 했다.
A씨가 목격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017년 7월 장관 이·취임 날이었다. 새 장관이 오면서 동기생이 군사보좌관으로 부임했고, 강 장관은 새 보직도 받지 못한 채 직위만 해제됐다. A씨는 "할머니가 써준 한문 경계(警戒)의 글귀 액자와 가방 몇 개를 들고 비좁은 사무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더라"고 회고했다. 엄청난 모멸이었지만 그는 이후 선후배의 신망과 실력으로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 A씨의 평가다.
그러나 같은 사람을 두고도 시선은 엇갈린다. 그를 오래 지켜본 한 군 원로는 "똑똑한 건 알겠는데 명철한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그를 잘 아는 한 육사 선배는 "큰 틀만 보고 각론에 너무 약하다"고 평했다고 했다. A씨 자신도 청문회 준비단 첫 출근길 모습에 대해 "의외였다. 너무 가볍고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엘리트'가 아니라 '결단'이다 = 국민의 불안은 여기서 출발한다. 인품과 언변, 전략적 담론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각론이다. 무인기 대응 과정의 혼선, 합참 작전기획 라인에서 나온 실무 역량에 대한 냉정한 평가, 청문회에서 드러난 핵심 쟁점에 대한 모호한 화법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위기의 순간 구체적 방책을 내놓고 책임지는 장관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주적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강 장관은 청문회에서 "2004년 이후 주적 용어를 쓰지 않아 왔다"면서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강선영 의원은 그가 북한을 주적으로 지목하지 않은 데 실망을 표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용어 논쟁을 떠나, 장병들이 장관의 입에서 듣고 싶은 것은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는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다.
사관학교 통합을 두고는 장관은 전작권 전환에 집중하고 통합 문제는 차관에게 맡길 것이라는 관측도 국방부 주변에서 나온다. 육사 출신 장관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한다는 해석이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누가 앞에 서든 국방부가 추진하는 일이고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단견"이라고 잘라 말했다.
◆임기 중 반드시 챙겨야 할 것 = 강 장관은 전임 장관이 남긴 과제를 그대로 떠안았다. 11월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의 전작권 전환 완전운용능력(FOC) 검증, 핵추진잠수함 특별법과 핵연료 확보 협의, 해병대 준4군 체제, 국군사관학교 창설, 2040 군구조 개편이 줄지어 있다. 효력이 정지된 9·19 군사합의 복원 여부도 "안보환경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 '억제력의 공백'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되고 있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긴장은 되풀이되고 있다. 지휘구조가 바뀌는 전환기는 적에게 가장 매력적인 틈이다.
강 장관은 서면답변에서 전작권 전환의 본질을 "우리 군이 전시에 주도적으로 작전을 계획·결심·수행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선언이 아니라 합참의 작전계획, 연합연습의 질, 감시·정찰과 지휘통제 체계의 실질로 증명돼야 한다.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미측과 손발을 맞춘 경험은 이 대목에서 가장 큰 자산이다.
둘째는 합참의 위기관리 체계 재정비다. 무인기 사태는 개인의 과오 이전에 상황 전파와 결심 체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그 현장의 책임자였던 사람이 장관이 된 만큼, 누구보다 그 결함을 정확히 복기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사관학교 통합을 둘러싼 군 내부 갈등의 관리다. 추진하든 수정하든, 장관이 전면에 서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갈등을 피하는 리더십은 결국 갈등을 키운다.

◆성공하는 장관의 조건 = A씨는 지명 직후 강 장관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사우디에서 귀국한 강 장관은 "어깨가 무겁다. 기도해 달라"고 답했다. A씨는 한 가지만 당부했다고 한다. 조성태 전 국방장관의 좌우명 '정도유구(正道悠久)', 바른 길만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A씨가 풀이한 정도의 기준은 단순하다. "국방장관은 자신의 이익은 물론 육·해·공군의 이익, 심지어 국군의 이익까지 떠나야 한다. 오직 국가방위에 득이 되면 정도이고, 해가 되면 아니다. 정책이든 법이든 그 기준 하나로 처결하면 큰 실수가 없다."
역대 성공한 국방장관들은 언론의 박수나 정권의 눈치보다 국방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았다. 강 장관은 이미 모멸의 시간을 실력과 신망으로 이겨낸 경험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부하들의 이름을 외우던 따뜻함 위에 각론을 파고드는 치밀함과 책임을 피하지 않는 결단을 더하는 일이다.
기원전 260년 장평(長平)에서 조나라 노장 염파(廉頗)는 진나라 대군을 맞아 성벽을 굳게 지키는 지구전을 택했다. 싸우지 않는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조왕도 출전을 재촉했지만, 염파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바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진이 두려워하는 것은 염파가 아니라 조괄(趙括)"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조왕은 병법을 줄줄 외우며 말솜씨가 뛰어난 조괄로 장수를 바꿨다.
조괄은 왕이 원하던 대로 성 밖으로 나가 공세를 폈다가 포위돼 전사했고, 항복한 조나라 병사 40여만 명은 생매장당했다. 종이 위에서만 병법을 논한다는 '지상담병(紙上談兵)'이 여기서 나왔다.
염파는 윗사람의 뜻보다 나라의 안위(安危)를 택했고, 조괄은 나라의 안위보다 윗사람의 뜻과 자신의 명성을 택했다. 강 장관이 염파의 길을 걸을지, 조괄의 전철을 밟을지는 청문회가 아니라 취임 후 첫 위기에서 판가름 난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