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KAIST미술관이 26일 대전 본원에서 공식 출범했다.
- 정문술 회장 기부로 조성된 미술관서 원로작가전 열었다.
- 엄태정 개인전으로 금속조각 60년 여정을 조명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조각가 엄태정의 60년 작업세계 망라한 기획전
전시 교육 연구 아우르는 현대미술플랫폼 출범
[대전=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대전광역시 유성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본격적인 현대미술관이 설립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KAIST 미술관은 지난 2024년말 문을 열었지만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것은 올 8월이다. KAIST미술관이 그랜드 오픈을 선언하며 8월 26일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본격 출범한다.
KAIST(총장: 배충식) 대전 본원에 건립된 KAIST미술관은 2026년 원로작가 초대전 《탈(脫)창조의 세계로》를 8월 26일부터 2027년 6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가 개최되는 미술관과 정문술홀은 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의 후원으로 건립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정문술 컬렉션과 대한민국예술원》을 선보인 데 이어 정문술홀에서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 원로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원로작가 초대전'을 기획하고, 두 번째 기획전으로 엄태정 개인전을 26일 개막했다.

KAIST미술관의 설립은 한 뜻깊은 패트론의 비전에서 비롯됐다. 미술관은 KAIST에 총 515억원과 필생의 미술품 컬렉션을 기부한 고(故) 정문술 미래산업 회장의 뜻과 미술관 건립기금을 바탕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정 회장은 건립기금과 함께 미기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Tribute to Dean Winkler'(1995) 등 주요작품 41점을 기증했다.
이후 각계 기증이 이어져 미술관은 현재 약 400점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KAIST 캠퍼스 학술문화관 후면에 연면적 2,611㎡(약 790평), 3층 규모로 증축된 미술관은 실내외에 총 7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제1전시실은 정 회장의 뜻을 기려 '정문술 홀'로 명명했다.

미술관이 야심적으로 기획한 전시는 한국 1세대 추상조각가 엄태정(Um Tai-Jung, 1938~ )의 개인전이다. 6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창작궤적과 철학적 여정을 조망하는 자리다. KAIST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미술관 앞 야외에 설치한 석점의 연작 '낯선 자의 출현 I II III'(2026)을 포함해 1960년대부터 2026년까지 대표적 작품 총 36점을 선보인다. 작가 엄태정은 '금속 조각가'로 불리며 60년 내내 금속을 소재로 다뤄왔다. 이번 기획전에서도 금속 물질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인간의 실존과 영성에 관한 작가의 시적 상상이 '탈(脫)창조'의 세계로 완결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엄태정은 1960년대 이래 쇠, 구리, 알루미늄 등 금속의 물성을 탐구하며 '물질의 언어'를 성찰해왔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수상작인 '절규'같은 초기 철 작업에서는 강렬한 힘과 긴장감을 보여주는 작업을, 이어 구리 시기에는 작품 안팎의 상반된 질감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탐구한 보다 유연한 조각을 발표했다.
1980~1990년대에는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와 동양적 사상을 반영한 '천·지·인' 연작과 한국의 전통의 형상들을 모티프로 하는 작품 '청동-기-시대'를 잇따라 선보였다. 2000년대부터 작가는 보다 부드러운 금속인 알루미늄과 티탄이 만들어내는 중립적 은빛 공간에서 물질로서 작업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 속의 공존과 어울림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 물질을 통한 '비움과 채움'의 미학은 모두 근원적 세계에 접근하기 위한 연속적인 수행이자 조각에서 진정한 시간과 공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일평생 금속 조각에 헌신해온 엄태정 작가는 "내가 쇠를(소재로) 택한 게 아니라, 어느 날 쇠가 나를 불렀다. 이끌리듯 쇠의 세계로 빨려들어갔고, 일평생 금속과 함께 하며 그 세계를 깊이 깊이 헤엄치고 쌓고 자르고 축적했던 여정이 있어 충만했다. 나는 행복한 작가다"라고 토로했다. 다루기 힘든 소재인 금속이란 소재와 만나 반세기 이상을 끈질기게 예술이란 탑을 쌓아올린 노 작가의 얼굴에선 평온의 미소가 은근히 감돈다.
엄태정의 조각은 금속이라는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정복하고, 완결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 간 깊은 내면적 조응을 이루어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종국에는 이에 귀결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전체 창작을 관통하는 핵심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세월 그 뜨거웠던 물질과 정신의 '변증법적 과정'을 증언한다.
물질의 힘과 강렬한 에너지를 응축해 낸 초기 대표작 '삼익조(Three Winged)' 연작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삼익조-하늘새-69-III'(1969), '대지-삼익조'(1972), '영혼')1965)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섭리와 인간의 사유가 격렬히 교차하는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로서 엄태정의 초기 물성 탐구와 영성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조각에서 '정신과 물질의 합일'은 '천·지·인'(2018),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다'(2018), '만다라-시간의 향기를 담다Ⅰ~Ⅲ'(2022), '만다라-하늘-무한주'(2025) 같은 천·지·인과 만다라 연작, 우주를 주제로 한 최근작 '코스모스 26'(2026)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그는 고요한 묵상과 집요한 수행의 시간을 내면에 집중시키는 구도자 같은 자세로 물질을 통해 우주적 기운과 영성에 도달한다.
2000년대 이후 엄태정은 물질의 중량감을 덜어내고 빛과 여백을 포용하기 시작한 알루미늄 대형작들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고요한 벽체와 나'(2018), '낯선 자의 은신처-은빛 베일 출현 I II Ⅲ'(2025)을 비롯해 신작인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II'(2026)를 통해 알루미늄과 티탄이 만들어 내는 중립적 은빛 공간 속 물질을 넘어선 '비어 있음(void)'의 영성적 상태를 목격한다.
엄태정이 도달한 '탈창조'의 세계는 실제 너머에서 '낯선 자(The Stranger)'를 만나는 영적 축적 끝에 도달하는 시공간이다. 깊숙한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한 영성인 낯선 자는 자신을 구원하는 타자이자, 내면 깊이 존재하는 작가 자신이다. 자신이 비워낸 공간에 낯선 자가 도래하고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소멸해 신의 공간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순간, 그는 신과 같은 혹은 신과 공동으로 절대적인 창조를 이룬다.

'낯선 자 -자연의 꽃 그리고 영혼'(2024), '낯선 자, 코스모스-북두칠성'(2024-2025)을 비롯해 신작 '낯선 것의 예언적 숨결'(2026), '낯선 자 안에 서라-빈자리〉(2026)까지 탈창조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에는 어김없이 낯선 자가 함께 자리한다.
기술의 발전과 인공적 창조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과학기술의 산실인 KAIST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탈(脫)창조의 세계로》전은 본질로 돌아가 인간 존재와 근원을 되묻고 있다.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술문명의 속도감에 맞서 엄태정은 비워내고 초월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본질과 재회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한다.
조각이 차지한 물리적 형태보다 그 주변에 형성되는 깊은 여백과 그늘, 표면을 연마하며 새겨넣은 시간의 흔적은 관람객에게 질주하는 속도를 잠시 멈추는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하며, 비움을 넘어 인간의 실존을 회복하고, 삶과 예술이 하나로 이어지게 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엄태정 작가의 개인전 외에 지난 3월 개막해 현재 진행 중인 정문술 기증작품 특별전 '류경채: 마음의 시'와 김영나 작가의 개인전, 미술관 소장품전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엄태정 개인전 《탈(脫)창조의 세계로》는 내년 6월 30일까지 열린다. 무료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