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이 1~2일 한중일 슈퍼매치에서 일본·중국에 4전 전패, 12세트 전패를 당했다.
- 일본은 SV리그로 리그를 국제 수준으로 개편했고, 중국은 장신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 세계 상위권을 유지했다.
- 한국은 외국인 편중 V리그 구조 탓에 국내 선수 성장과 대표팀 경쟁력이 무너져 VNL 강등과 슈퍼매치 참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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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아시아 여자배구의 격차는 더 이상 국가대표 무대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슈퍼매치에서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이 일본·중국 팀을 상대로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면서 V리그의 국제 경쟁력에도 뚜렷한 경고음이 울렸다.
지난 1~2일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한·중·일 여자배구 탑클럽 슈퍼매치는 축제보다 한국 여자배구의 냉혹한 현실을 확인한 무대에 가까웠다. V리그를 대표해 출전한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은 일본 오사카 마블러스와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를 상대로 4경기를 치렀지만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패배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용이었다. 두 팀은 4경기에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채 모두 세트 스코어 0-3으로 무너졌다. 한국 팀들의 슈퍼매치 최종 성적은 4전 전패, 세트 득실 0승 12패였다. 국가대표 차출로 완전한 전력이 아니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일본과 중국 구단 역시 비슷한 조건이었다. 단순히 주전 선수 몇 명의 공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격차였다.
이번 대회는 갑자기 벌어진 이변이 아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나타난 한·중·일 여자배구의 흐름을 보면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일본은 최근 몇 년 동안 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자배구 정상권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2024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5년에도 예선 9승 3패로 3위에 오른 뒤 최종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매년 우승권 전력을 유지한 것은 아니지만, 세대교체 과정에서도 세계 상위권 국가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선수층과 조직력을 증명했다.

일본의 약진은 대표팀만의 성과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2024년 출범한 SV리그가 있다. 일본은 2024년 기존 V리그를 SV리그로 재편하면서 2027년 완전 프로화, 2030년 세계 최고 리그 도약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단순히 대회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구단 운영과 경기장 환경, 마케팅, 중계, 선수 영입 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제배구연맹의 상업 부문을 담당하는 발리볼월드와 다년간 전략적 협약도 맺었다. 일본 리그를 세계 시장에 노출하고, 콘텐츠와 중계 품질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여기에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일본 선수들이 매주 세계적인 공격수와 블로커를 상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2026-2027시즌부터는 코트에 동시에 출전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숫자도 4명으로 확대했다.
중요한 점은 외국인 선수의 존재가 일본 선수들의 성장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을 몰아주는 대신 자국 세터와 리베로, 미들블로커, 아웃사이드 히터가 높은 수준의 배구를 경험하도록 리그 구조를 설계했다. 빠른 템포와 정교한 연결, 탄탄한 수비 조직력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점에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경쟁 경험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 일본 대표팀은 특정 스타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시카와 마유(엑자시바시)를 중심으로 여러 공격수가 고르게 득점하고, 세터와 미들블로커까지 빠른 공격에 참여한다. 한 선수가 빠져도 전체 시스템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사카가 슈퍼매치에서 보여준 빠른 전환과 끈질긴 수비도 이런 리그 환경에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중국도 세계 정상권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았다. 2025 VNL 예선에서 일본과 나란히 9승을 거뒀고, 2026년에는 예선 6승 6패로 9위에 머물렀지만 개최국 자격으로 결선에 출전한 뒤 4강까지 올랐다. 준결승과 3위 결정전에서 패했으나 최종 4위라는 성적을 남겼다. 2023년 VNL 준우승을 포함해 꾸준히 국제대회 상위권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의 강점은 오랜 기간 구축한 장신 선수 육성 체계다. 학교와 지역팀, 연령별 대표팀, 프로팀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장이 좋은 유망주를 일찍 발굴한다. 단순히 키 큰 선수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높은 타점과 블로킹 능력을 국제무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간 육성한다.
중국 리그 상위권 구단들도 국가대표급 선수와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를 함께 활용한다. 주팅(이모코 발리)처럼 해외 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 대표팀과 자국 리그에 새로운 기준을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 이번 슈퍼매치에 참가한 상하이는 높이와 공격력뿐 아니라 서브, 블로킹, 수비 이후 반격에서도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을 압도했다.

반면 한국은 김연경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2021 도쿄올림픽 4강 이후 세대교체에 들어갔지만 새로운 주포와 미들블로커, 세터를 충분히 육성하지 못했다. 2022년과 2023년 VNL에서 연속으로 12전 전패를 당했고, 2024년에는 30연패를 끊었지만 2승에 그쳤다. 결국 2025년 1승 11패, 18개국 최하위로 VNL에서 강등됐다.
세계 정상급 국가를 반복해서 상대할 수 있는 VNL 무대를 잃었다는 것은 단순한 한 대회의 강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이 빠른 공격과 강한 서브, 높은 블로킹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국제랭킹을 끌어올릴 기회도 부족해지고, 주요 국제대회 출전권 경쟁에서도 불리해진다. 대표팀의 하락이 다시 국제 경험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그 뿌리는 V리그의 구조와도 연결돼 있다. 여자부 구단들은 오랫동안 외국인 아포짓에게 공격을 집중해왔다. 승리가 필요한 구단 입장에서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지만, 국내 공격수는 리시브와 수비를 담당하고 어려운 상황의 높은 공은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 구조에서는 국제무대에서 결정적인 공을 처리할 국내 공격수가 성장하기 어렵다. 대표팀에서는 V리그 외국인 선수의 역할을 대신할 선수가 필요한데, 정작 리그에서는 그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다. 외국인 선수가 빠진 대표팀이 공격력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들블로커와 세터 문제도 비슷하다. V리그에서는 외국인 공격수를 활용하기 위해 양쪽 날개에 의존하는 배구가 자주 나타난다. 빠른 중앙 속공과 다양한 콤비네이션을 시도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리그에서는 통했던 높고 단순한 공격이 국제무대의 강한 서브와 높은 블로킹 앞에서는 쉽게 막힌다.
한국배구연맹(KOVO)도 아시아쿼터 자유계약 전환과 외국인 선수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더 많이 데려오는 것만으로 리그의 국제 경쟁력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가 국내 선수의 자리를 대신하는 데 그치면 공격 의존도는 더 심해질 수 있다. 반대로 일본처럼 국내 선수들이 높은 수준의 선수와 함께 뛰고 경쟁하도록 구조를 설계한다면 성장의 자극이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외국인 선수의 숫자가 아니라 활용 방식이다. 국내 유망주에게 출전 시간을 보장하고, 특정 포지션에서 국제무대를 대비한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장신 유망주 발굴과 세터 육성, 연령별 대표팀과 프로팀의 연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일본은 리그를 국제 기준으로 바꾸며 대표팀의 경쟁력을 끌어올렸고, 중국은 장기간 구축한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V리그의 흥행과 대표팀의 성장을 연결하지 못한 채 VNL 강등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제주의 슈퍼매치는 친선대회였다. 하지만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이 기록한 12세트 전패는 가볍게 넘길 숫자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한국 여자배구가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경고에 가깝다.
V리그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이제 그 인기를 선수 육성과 국제 경쟁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리그에서 통하는 배구와 세계에서 통하는 배구가 계속 다른 방향을 향한다면, 슈퍼매치 전패와 VNL 강등은 일시적인 실패가 아니라 한국 여자배구의 새로운 현실로 굳어질 수 있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