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등 "수년 누적된 구조적 문제 방치한 결과"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월드컵 4회 우승국' 이탈리아가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탈락'의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현지 언론은 거친 비판을 쏟아냈고 축구팬들은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지단의 저주'라는 엉뚱한 주장까지 나왔다.
이탈리아는 1일(한국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FIFA 랭킹 65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1-4로 패했다. 월드컵 우승국으로는 사상 처음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 내용도 우승국답지 못했다. 전반 41분 알렉산드로 바스토니가 거친 태클로 퇴장당해 10명이 연장까지 120분간 탈락의 두려움 속에서 싸웠다. 승부차기에서는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상대 키커의 킥 방향을 적어둔 '커닝 페이퍼'를 경기장에 내던지기도 했다.

현지 언론인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이번 월드컵 본선 탈락을 두고 "제3의 종말"이라고 썼다. 한 축구팬은 소셜미디어에서 "지단의 저주는 진짜다"라며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의 '마테라치–지단의 박치기 사건'을 소환했다. 20년 전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지만 경기 중 마르코 마테라치와 지네딘 지단 사이 충돌이 벌어졌고 지단은 '머리 박치기'로 퇴장당했다. 일부 팬들은 이후 이탈리아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일부 축구팬은 이탈리아축구협회 건물 앞에 몰려가 달걀을 투척하며 시위를 벌였다.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협회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이탈리아형제당 소속 정치인은 "그라비나 사임을 시작으로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공개 요구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연 배우 러셀 크로우조차 "이탈리아에 또 한 번 암울한 새벽이 오고 있다. 이렇게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탄식했다.

감독을 향한 화살도 거세다. 젠나로 가투소 감독은 월드컵 본선행 실패 시 '이민도 고려하겠다'는 농담 섞인 발언까지 했지만, 정작 그의 전술적 고집이 패착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탈리아 언론은 "세계적인 흐름인 포백을 외면하고, 구식 3-5-2 포메이션을 끝까지 고집했다"고 비판했다. 준결승 이후 웨일스가 아닌 보스니아를 만나게 됐다는 이유로 일부 선수들이 안도하며 웃는 영상이 공개된 것도 뒷말을 낳았다. 팬들은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었다"고 비꼬았다.
BBC와 CNN 등은 "수년 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유로 2020 우승은 오히려 시스템 결함을 가린 '마지막 반짝임'이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축구의 몰락 배경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을 가능하게 한 토대는 1990년대 청소년 대표팀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1995년 세리에A가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풀면서 빅클럽 중심으로 외국인 선수가 대거 유입됐다. 자국 유망주들의 출전 기회는 급감했고 이는 국가대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막대한 중계권료와 경기장 현대화, 수익 구조 혁신으로 세계 1위 리그가 됐다. 반면 세리에A는 투자와 개혁에 뒤처졌다. 세계 매출 상위 10개 클럽 명단에 이탈리아 팀은 한 곳도 없었다. 한때 지단, 호나우두, 바티스투타가 뛰던 무대는 지금 루카 모드리치 등 은퇴를 앞둔 노장들이 커리어 마지막을 보내는 리그가 됐다. 반복된 승부조작 스캔들도 축구팬의 신뢰를 갉아먹었다. 마피아 조직인 '카모라(Camorra)'의 실체를 파헤친 책 '고모라'를 쓴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이탈리아 구단들은 마피아의 돈세탁 금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psoq133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