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 사례 1993년 김영삼 정부 '금융실명제'…33년간 잠자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원자재 수급 불안에 대응해 헌법상 긴급재정명령 활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경제 대응 수위를 최고 단계로 끌어올렸다.
전쟁이나 금융위기 등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권한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사실상 '비상 경제 대응'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관행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가 가진 권한과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긴급명령은 '헌법 제76조'에 규정된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평상시의 헌법상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사항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에 의하지 않고 명령으로써 제한할 수 있는 법률적 효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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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발동 사례는 대부분 국가 존립이 흔들리는 시기에 집중됐다. 긴급명령 1호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공포된 '식량 배급에 관한 특별조치령'으로, 전쟁 직후 식량 수급 조절을 위해 발동됐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총 14차례 긴급명령을 활용해 식량 배급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고, 금융기관 예금 인출을 제한해 통화팽창을 억제했으며 물가 조절과 물자 수급을 중앙에서 관리했다. 또 금·은 등 귀금속 거래를 금지하고, 군수품 조달과 철도 물자 수송을 국가가 일괄 통제했다. 시장 기능을 사실상 국가가 대체한 셈이다.
1972년에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이른바 '8·3 조치'를 발동했다. 당시 기업들은 고금리 사채에 의존하며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태였고, 정부는 사채 상환을 중단시키고 이를 장기 저리 대출로 전환했다. 기업은 사채 규모를 신고하고 금융기관은 특별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공급했다.
이 조치로 약 3500억원 규모의 사채가 동결되고 정책 자금이 투입되며 기업 연쇄 도산을 막았다. 다만 사채를 보유한 개인 자산가의 재산권 침해와 물가 상승 부담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정부가 발동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 즉 '금융실명제'다. 정부는 긴급명령을 통해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전환하고 차명계좌를 금지했다. 시행 다음 날부터 신분증 없이는 계좌 개설이나 거래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강력하게 적용됐다.
이 조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원 확보 효과를 높였지만,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긴급명령 형태로 전격 시행됐다. 이후 관련 내용은 법률로 정비됐다.

이처럼 긴급명령은 가격 통제, 자금 이동 제한, 거래 금지 등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전쟁, 금융위기, 구조개혁 등 극단적 상황에서만 사용된 '최후의 정책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 언급은 경제 상황을 비상 단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동 전쟁을 세계 경제 성장률의 하방 위험 요인으로 보고 주요국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2분기 배럴당 135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위기 인식도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나프타 수출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 구조를 고려하면 가격 통제와 수급 개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plu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