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전쟁 종료돼도 리스크 여전
주식·채권·외환까지 연쇄 파장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이란 전쟁이 걸프의 정유 시설과 LNG(액화천연가스) 허브를 강타하면서 에너지 인프라는 전시와 평시의 경계가 흐려진 새로운 안보 질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부상했다.
국제 기구와 싱크탱크는 이미 송유관과 가스 터미널, 전력망이 이제 병참과 외교, 금융시장을 동시에 흔드는 지정학의 최전선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뮌헨안보회의가 발간한 2026년 보고서는 '그리드가 곧 전장'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에너지 인프라가 사이버 전쟁과 물리적 공격의 결합 지점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2022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작전'이 가스 파이프라인 누출, 송전선 파손, 변전소 화재, 에너지 기업을 겨냥한 랜섬웨어 공격 등 사이버와 물리 공격을 의도적으로 섞어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공격은 단순한 인프라 파괴를 넘어 병원과 통신망, 산업 시설 가동을 멈추게 해 국민 심리에 충격을 주고, 나토 집단방위 조약 발동 기준까지 시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식량과 비료, 광물까지 포함한 '전략적 공급망의 무기화'를 경고하면서 에너지 시스템은 그 가운데에서 디지털과 물리, 경제적 피해가 가장 직접적으로 교차하는 영역이라고 지적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에너지 전환 보고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WEF는 2025년 에너지 전환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긴장과 기술 및 기후 충격이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의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주권이 각국의 정책 프레임에서 기후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중동과 동유럽 분쟁, 아프리카·남미의 자원 민족주의, 중국의 배터리·태양광 공급망 지배 등은 모두 에너지 인프라와 공급망이 더 이상 중립적 민간 영역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도구이자 갈등의 무대가 된 사실을 보여준다.

이란이 카타르 라스 라판 LNG 허브를 타격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반복적으로 공격하며, 각국이 상대방의 송유관과 인터넷 해저 케이블 취약점을 탐색하는 장면은 에너지 인프라가 '보호해야 할 자산'을 넘어 '먼저 장악해야 할 표적'으로 인식되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단기적 합의나 봉쇄 속에 멈춰 서더라도 에너지 인프라를 노리는 공격과 위험은 사실상 상시 리스크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중동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과 시장 심리, 성장과 물가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상수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특히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동량이 크게 줄고, 산유국이나 가스 수출국 인프라 일부가 물리적 공격을 받는 상황을 예로 들며 에너지 안보가 아시아와 전 세계에서 "최우선 리스크"로 부상했다고 지적한다.
한 분석은 2023년 기준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30% 이상 증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러한 공격들이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실전 리허설'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구조적 변화는 자산시장에도 조용하지만 강한 재정렬을 강요하고 있다. 먼저 인플레이션 경로가 달라진다. 과거에는 유가 급등이 일회성 쇼크로 끝나면 물가도 서서히 안정되는 패턴이었지만 인프라를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 시장은 '충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위험 프리미엄을 가격에 상수처럼 반영하기 시작한다.
IMF와 여러 투자은행은 10%의 유가 상승이 평균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0.4%포인트 높이고 성장률을 0.1~0.2%포인트 낮추지만, 충격이 반복될 경우 기대 인플레이션과 임금 요구까지 자극해 효과가 그 이상으로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너지 가격과 지정학 리스크가 결합한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형성되면 중앙은행은 경기 둔화를 감수하고서라도 높은 기준금리를 더 오래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자산가격 재평가라는 형태로 금융시장에 반영된다.
주식시장에서는 에너지·방산·인프라 섹터가 '에너지 안보 플레이'로 재조명되는 반면, 에너지 비용과 금리에 민감한 성장주와 소비 관련주는 평가를 다시 받게 될 전망이다.
채권시장에서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국채와 전력 및 가스 공기업 채권이 더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에서는 에너지 순수입국 통화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지정학 충격 때마다 성장률 하락과 경상수지 악화 우려를 반영해 하락 압력에 시달리는 반면 에너지 순수출국의 통화는 단기적으로 '안전자산'처럼 기능할 여지가 커진다는 분석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