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LNG 가격 널뛰기
AI 데이터센터도 충격파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과 이란 전쟁이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타깃으로 삼으면서 유가와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은 물론이고 전기 요금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사이클까지 연쇄적인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쟁의 불길이 카타르 북부 라스 라판으로 번진 것은 글로벌 가스 시장에 일종의 심장부 피격이나 다름없다. 라스 라판은 카타르 LNG 수출의 허브로, 카타르의 연간 8000만톤 안팎 LNG 생산 및 선적 능력이 집중된 복합 단지다.
카타르는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LNG 무역의 약 20%를 담당해왔고, 유럽이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를 잃은 뒤 사실상 최후의 보루로 의존해 온 공급자이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과 시설 피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의 가스 선물 가격이 하루 사이 30% 이상 급등했고, 한 주 단위로는 50%에 가까운 폭등을 연출했다. 2023년 에너지 위기 이후 최대 폭의 주간 상승을 눈앞에 둔 셈이다.
유럽 가스 가격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네덜란드 TTF 옵션 내재변동성은 연초 대비 네 배 가까이 폭등, 전쟁 이전에 형성됐던 '안정 구간'을 순식간에 깨뜨렸다.
LNG 가격 급등은 곧바로 발전 단가와 전력 요금 구조를 흔든다. 유럽에서는 이미 2022년 에너지 위기 당시 발전용 가스 가격 폭등이 각국 정부의 보조금 지출과 공기업 재무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를 경험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 재현될 조짐이다. 가스 가격이 오르면 가스발전의 마진 스택에서 위치가 높아지고, 도매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한계 발전원으로 더욱 자주 등장하게 된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도 가스 가격이 오르는 만큼 도매 전력 가격이 동조화되고, 소매 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는 다시 보조금을 늘리거나 전력·가스 공기업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아시아 지역의 전력업체와 정부 재정에도 유사한 압력이 누적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은 2022년 위기 이후 장기 계약을 늘리며 스팟 의존도를 낮추려 했지만 라스 라판처럼 글로벌 허브급 공급지에 물리적 타격이 발생하면 장기 계약도 물리적 이행 불능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일부 국영 전력·가스 기업은 이미 수년째 적자와 부채 누적에 시달리고 있고, 요금 인상과 재정 지원 사이에서 정치적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충격이 길어질 경우 전력사 신용등급 하락과 회사채 시장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에너지 전환 투자 여력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지적이 국제 에너지 금융 싱크탱크 보고서에서 반복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머물수록 전세계가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의 입구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경고도 커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 기준으로 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헤드라인 물가는 0.4%포인트, 국내총생산(GDP)은 0.1~0.2%포인트가량 악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선물 곡선이 시사하는 유가 상승 폭은 연말까지 약 30% 전후로, 이를 IMF 모형에 대입하면 인플레이션은 1%포인트 이상 추가로 높아지고 성장률은 0.5%포인트 안팎 떨어질 수 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높은 기준금리를 충분히 내리지 못한 상황에 또다시 물가 압력이 커지는 셈이고,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심해지는 '정체 속 물가 상승' 조합을 피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IMF는 과거 사이클을 분석한 연구에서 유가 충격과 동반된 경기침체는 일반적인 경기 후퇴보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모두 높은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거시 리스크의 또 다른 접점이 바로 AI 데이터센터다. AI 도구를 이용해 에너지 전문 매체와 컨설팅의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향후 3년 안에 최대 세 배까지 늘어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가스발전 의존도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대 중반에는 전체 전력 소비의 최대 12%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추정치가 제시됐고, 에너지 컨설팅 업체 엔버러스(Enverus)는 이를 충당하기 위해 미국 내에서 2030년까지 최대 80기의 신규 가스화력 발전소가 건설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NEF가 최근 발표한 연구는 이 흐름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가동 중인 온사이트(on-site) 가스 발전 설비는 2기가와트 수준에 불과하지만 각종 인허가·계획·기업 발표를 AI 기반으로 전수 분석한 결과 향후 몇 년 동안 114기가와트에 달하는 온사이트 가스 발전 설비가 새로 지어질 예정이라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송전망 연결 대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체 가스 발전소를 짓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이는 가스 시장의 수요 측 압력을 키워 LNG 가격과 전력 도매 가격의 변동성을 더 증폭시킬 수 있는 잠재 리스크로 읽힌다.
결국 전력과 가스, 데이터센터는 하나의 묶음 리스크로 수렴하고 있다. 전쟁이 LNG 공급망을 뒤흔들면 가스 가격이 뛰고, 가스 발전이 많은 지역에서는 전력 가격이 즉각 반응한다. 동시에 AI 인프라 확대가 전력 수요와 가스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어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을 때 수요 파괴를 통해 균형을 되찾던 과거의 '완충 장치'가 약해지고 있다.
블룸버그와 여러 에너지 컨설팅 보고서는 이런 구조 속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가스 발전 투자, LNG 의존도가 결합해 새로운 유형의 시스템 리스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마디로, AI 시대의 '전력·가스·데이터센터' 삼각축이 전쟁과 결합할 경우 에너지 시장의 충격은 과거보다 더 넓고 오래, 더 복잡한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