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화·금융 아우르는 실거주 보호 개편안 예고
학계 "낡은 도시정비사업 뜯어고쳐야"
국가 전략 플랫폼 육성 필요성도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정부와 학계가 고질적인 부동산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주택 정책의 판을 완전히 뒤집는 전면적인 재구조화에 나선다. 맹목적인 유동성 팽창에 기댄 과거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수요자 맞춤형 거버넌스와 첨단 기술이 융합된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 공간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1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은 '주택·도시, 재탄생(Rebirth)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 "유동성 파티 끝"…자산 버블 걷어내고 '실거주 보호' 총력
장우철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기조발제를 통해 반복되는 부동산 위기를 타개하고, 무너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주택 시장의 '게임의 룰'을 전면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현 정부 주택 정책의 핵심은 맹목적인 신용 팽창이 불러온 자산 버블을 끊어내고 '실거주 중심'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장 정책관은 역대 부동산 위기의 근본 원인을 '유동성 과잉'으로 꼽았다. 2000년 54조원이던 주담대는 신용카드 대란 이후 저금리 기조 속에 2007년 344조원으로 6.4배 폭증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실거래가 기준으로 전국 43.7%, 서울 99.3% 상승하며 집값이 급등한 현상 역시 2019년 하반기 금리 인하 이후 유동성 팽창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쏠림이 맞물린 결과로 지목됐다.
이러한 자산 버블은 극심한 자산 격차를 초래했다. 2015년에는 지방 아파트 약 2.9채(평균 1억9000만원)로 서울 아파트 1채(평균 5억4000만원)를 살 수 있었으나, 2025년 말 기준으로는 지방 아파트 5채(2억6000만원)를 팔아야 서울 1채(12억9000만원)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의 쏠림'이 심화됐다. 숨은 부채를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 비율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약 175%에 달해 거시 건전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장 정책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혁파' 철학에 발맞춰 통화·금융·세제·공급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개편안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와 초고가 1주택자의 비정상적 특혜를 공정성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투기는 철저히 차단하되 통상적 실거주는 적극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 건설업계도 '플랫폼' 입는다…AI로 시장 진단해야
김성환 건산연 연구위원은 인구 구조의 하강 국면과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기 전인 지금을 주택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꿀 마지막 기회로 진단했다. 현재의 주택 문제는 개별 영역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와 공급자, 수요자가 서로 다른 논리로 작동해 발생한 구조적 단절이자 시스템 실패라는 지적이다.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에서는 다층적 심의와 규제로 공급 병목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방은 미분양 물량 급증과 건설 금융 연체율 증가로 공동화가 가속화하는 실정이다. 김 연구위원은 주택을 자산 증식 도구가 아닌 국민의 삶을 담아내는 유기적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는 주거 철학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대전환을 위해서는 산업 주체의 역할, 거버넌스, 기술 등 세 가지 축의 동시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제기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람 측면에서는 노동 집약적인 현장 시공 중심의 전통 건설 산업을 첨단 생산 체계와 전 생애주기 주거 서비스 모델로 확장해야 한다"며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공급자와 절차 중심의 경직적 규제를 수요 대응형 유연한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허용된 것만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에서 금지된 것 외에는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분절적인 인허가 체계를 원스톱 통합 행정으로 구축해 지역 특성과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지원형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측면에서는 직관과 사후적 총량 지표에 의존하던 시장 진단을 데이터 기반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요와 공급 파이프라인을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알고리즘 기반 조기 경보 체계를 구축해 정보 격차를 완화하며 정책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집을 더 짓는 정책을 넘어 참여 주체 모두가 한 몸이 돼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정주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20년 묵은 낡은 정비사업 대수술…'땜질 처방' 버려야
이태희 건산연 연구위원은 기존의 낡은 도시정비정책을 전면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순한 주택 공급량 확대에 머물던 과거의 양적 팽창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도시경쟁력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의 도시 정책이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단기적인 경기 대응 도구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식 합동재개발 구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땜질식으로 법률과 사업 수단만 중첩되면서 현장의 혼란과 사업 지연을 초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질적으로 주민 동의서 징구 등 초기 단계부터 따지면 정비사업 완료까지 평균 20년 이상 소요되는 실정이다.
해결책으로는 '(가칭) 노후 도심 관리 기본법' 제정을 제시했다. 편화되고 유사한 각종 정비사업 제도를 통폐합하고, 노후 기성시가지 정비사업 전반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까다로운 정비구역 지정 요건을 대폭 완화해 주민 다수가 희망하는 경우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잡하고 자의적인 인허가 및 각종 심의 과정에 AI 시뮬레이션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극 도입해 불필요한 사업 지연과 갈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비현실적인 공공임대주택 인수가격을 현실화하고 공공기여 방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연구위원은 "공사비 상승과 직결되는 마감재 비리 등을 막기 위해 즉시 공시 의무화 및 내부고발 시스템 등을 도입해야 한다"며 "앞으로의 주택과 도시는 더 많이 짓는 대상이 아니라, AI 기반 기술 등을 통해 더 잘 설계하고 유연하게 운영되는 국가 전략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