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농축·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지지" 첫 공개 표명
핵연료 사이클 완성으로 온전한 핵주권 확보에 성공
'현행 협정 수정' 또는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 추진
"진짜 난관은 실무협상"...협상 결과 낙관은 금물
[도쿄=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한·미 정상 합의 사항을 담은 팩트시트(설명자료)가 14일 공개되면서 한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이전에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게 됐다. 핵연료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권한을 확대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팩트시트 발표에 대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며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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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5.11.14 photo@newspim.com |
팩트시트에 이와 관련한 내용은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돼 있다.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에 협조와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일 한국이 미국과 후속 실무협상을 거쳐 농축·재처리 권한을 얻는다면 핵연료 주기(nuclear fuel cycle)를 완성하고 온전한 '핵주권'을 갖게 된다. 또한 의도했든 안 했든 이를 통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부수적으로 얻어진다는 점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2035년까지 유효한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과 협의를 거쳐 동의를 받아내야만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고, 재처리는 불가능하다. 한국은 2010년부터 무려 5년 동안 진행됐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농축·재처리를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미국의 완강한 거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게 농축·재처리를 허용하는 것은 국제비확산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 부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번에 팩트시트 공개가 늦어진 이유도 농축·재처리 관련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줄다리기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규모의 대미 투자와 핵추진 잠수함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의 잠수함 활동까지 추적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된 '패키지딜'이 아니었다면 한국이 농축·재처리 권한을 얻는 것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현행 협정에 규정된 절차를 따르거나 아예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현행 협정에는 이 사안과 관련해 양측의 차관급 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를 열어 핵연료 주기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절차를 통해 현행 협정에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허용하는 내용의 규정을 추가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10년 남은 현행 협정을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해 농축·재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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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한·미는 이번에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 명료하게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현행 협정 내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를 명시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팩트시트에 '한·미 원자력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가 달린 것이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반면 정부는 새로운 협정 체결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향후 논의 방향에 대한 국민의힘 김건 의원 질의에 "저희는 개정을 염두에 두고 미측과 사안을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협정을 전면 개정해 한·미 원자력 협력을 일본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조만간 이 문제와 관련한 실무협상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상 간 합의가 있더라도 미국 에너지부가 주도하는 실무협상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실무자들은 핵 비확산에 대한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이미 정상 간 논의에서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을 크게 확대한다는 '큰 방향의 합의'에 도달한만큼 한국이 목표했던 수준이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