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쏠림 현상·보상 없는 한국 탈출…이공계 인재 부족사태
국내 체류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 42.9% "3년내 해외 이직 고려"
"인재 유출보다 일자리 확보가 더 시급…양질의 일자리 있어야"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이공계 인재 유출이 한국 경제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첨단 제조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의 상위권 이공계 인재가 잇따라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봉 등 금전적 보상부터 경력 지속성, 연구 생태계 조성 등 구조적 한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인재 유출에 앞서 국내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의 '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하는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 42.9%는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젊은 연구자들의 경우 그 비율이 70%에 달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출신 이공계 박사 인력은 지난 2010년 9000명에서 2021년 1만8000명으로 두 배 늘었다. 이 가운데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주요 5개 대학 출신이 해외 순유출 인력의 47.5%를 차지하면서 핵심 인력의 유출에 경고음이 울린다.
◆ "돈 때문만은 아니다"…환경·기회·네트워크의 격차
이공계 인재들이 해외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보상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 연봉(66.7%)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지만, 그다음으로는 연구생태계·네트워크(61.1%), 경력 기회 보장(48.8%), 자녀 교육(23.9%)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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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근무자의 절반 이상이 '연봉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했지만, 해외 인력 중 동일한 응답은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공계 인재들이 해외로 이동하는 원인은 단순히 급여 격차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내 이공계 인력의 만족도는 연봉뿐 아니라 연구환경, 근무여건 전반에서 해외 대비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행의 로짓(로지스틱 회귀) 분석 결과는 이 점을 뒷받침한다. 소득·고용안정·승진 만족도가 각각 1단위(5점 척도) 높아질 때 해외 이직 확률은 평균 3~5%p 낮아졌다. 즉, 단순히 연봉을 높이는 것 외에도 고용 안전성과 승진 경로, 연구환경 개선이 인재 유출을 완화하는 실질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결과는 전공별·세대별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석사급 인력은 승진 기회와 연구환경이, 박사급 인력은 고용 안정성과 자녀 교육 여건이 이직 의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신성장 분야(바이오·IT·소프트웨어 등) 인력의 경우 연구환경과 가족·교육 여건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전통 산업군 종사자들은 고용안정성의 영향이 가장 컸다.
20~30대 젊은 층에서는 '미래 성장경로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국내에서는 경력 초반 급여 상승폭이 완만하지만, 해외는 경력 초기 급격히 높아진 뒤 일정 수준에서 안정화되는 '역U자형' 임금 구조를 갖는다. 결국 이공계 경력 초반에서 나타나는 보상 격차가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결과다.
◆ 해외 '성과중심' vs 한국 '연공중심'…보상체계의 한계
국내외 기업의 인건비 구조를 비교하면, 인재 유출의 배경에는 산업 구조의 차이도 자리한다. 한국은행은 IT·바이오 등 일부 산업에서 인건비 비중이 이미 미국 기업과 큰 차이가 없다고 분석한다. 즉 임금 격차는 산업 구조와 기업의 수익성 격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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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제조 공정을 외주화하고, 소프트웨어·플랫폼 중심의 고부가가치 구조를 구축해 높은 성과를 인재 보상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은 중간재 비용과 감가상각 부담이 크고 인건비 비중이 낮은 산업 구조다. 따라서 기업의 성과 기반 보상을 확대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결과적으로 국내 이공계 인력의 임금 체계는 여전히 연공구조에 머물러있다. 근속연수 중심의 획일적 급여체계에서는 성과에 따른 효능감을 느끼기 매우 어렵다. 보고서는 "성과·시장가치 중심의 유연한 보상체계로 전환해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닌, 성과가 곧 보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등 세제 정책 뒷받침돼야…학계 "양질의 일자리 확보 중요"
보고서는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해법으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인적자본 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연구·인력 개발비 세액공제 등 기존 제도가 있지만, 장기적 인력 육성 유인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핵심 인력에 대한 소득세 감면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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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 연구원장이 LG 에이머스 해커톤에 참가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LG] |
또 석사급 연구자들이 단기 과제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묶이지 않도록 경력트랙을 예측할 수 있게 설계하고, 해외 연구기관과 교류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연구자가 다시 국내 연구 생태계로 '환류'될 수 있도록 정년연장 등 유연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술창업 활성화와 전략기술 개방도 중요한 화두로 던졌다. 기술창업은 이공계 인재가 의사·변호사 수준의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성취를 얻을 수 있는 핵심 경로다. 보고서는 정부가 선도적 투자자로서 초기 리스크를 흡수하고, 성실실패자 재도전 제도 강화 등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공계 인재 유출 현상보다 국내 일자리 부족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공계 인재가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일자리 부족 문제가 가장 크다"며 "인재 유출에 초점을 짚지 말고, 국내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해 이공계 인재들이 국내에서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lu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