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법원·검찰

속보

더보기

[기고] 불완전판매소송에서 투자자보호의무 이행여부와 투자경험 및 이해능력

기사입력 : 2025년10월11일 06:00

최종수정 : 2025년10월11일 17:23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김성중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2022년 하반기 홍콩H지수(HSCEI)의 급락으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투자한 다수의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이에 따라 많은 투자자들은 해당 ELS 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를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이하 불완전판매소송), 현재 여러 법원에서 홍콩 HSCEI 지수 연계 ELS 상품 관련 불완전판매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성중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사진=화우]

필자의 실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불완전판매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사유를 주된 청구원인으로 주장한다. ① 자신은 낮은 위험의 안전한 상품에 가입하기를 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의 투자권유에 따라 실제로는 자신의 투자성향에 부합하지 아니한 고위험의 상품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점(이른바 '적합성∙적정성원칙 위반'에 관한 주장) ② 금융투자상품 가입과정에서 금융회사의 판매직원으로부터 해당 상품의 구조와 위험성 등에 관하여 제대로 설명을 받지 못하였고, 상품설명서 자체를 교부받지 못하였거나 교부받았더라도 그 설명서 내용만으로는 해당 상품의 구조 및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른바 '설명의무 위반'에 관한 주장).

이에 대하여 금융회사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방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① 금융회사는 투자자를 상대로 투자성향분석 절차를 진행하였고, 투자자가 가입한 금융투자상품은 위 투자성향분석 결과 도출된 투자성향에 부합하는 상품이다. ② 금융회사는 상품설명서에 해당 상품의 구조, 위험성에 관한 충분한 내용을 담았고, 그에 기초하여 설명을 진행하였다.

결국 법원은 적합성·적정성 원칙 위반 및 설명의무 위반 여부에 관한 당사자들의 대립된 주장을 기초로, 해당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를 심리·판단하게 된다. 특히 그 판단에 있어서는 판매 당시 작성·교부된 서류의 구체적 기재 내용과 더불어 투자자의 종전 투자경험, 거래 행태 및 이해능력 등이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최근 하급심 판결의 동향을 살펴보면, 법원은 투자자의 종전 투자경험, 그 중에서도 투자자가 가입한 당해 상품과 유사한 위험등급 및 구조의 금융투자상품에 종전에도 여러 차례 가입한 사실이 있는지, 그 과정에서 이미 원금손실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나아가 투자자가 충분한 이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가 해당 상품의 구조, 위험성 등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해당 상품에 가입하였는지를 판단한다. 이는 금융투자업자의 불완전판매 책임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해당 금융투자상품의 특성과 위험 수준, 투자자의 투자경험 및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확립된 판례의 입장(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08다52369 판결 등 참조)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향후에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소송에서 법원은 투자자의 구체적 투자경험, 능력 및 손실경험 여부를 중시하고, 이를 통해 투자자가 해당 상품의 구조와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였는지를 고려하여, 불완전판매 책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는 불완전판매 사실에 대하여 당사자 사이의 주장이 대립하고, 가입 당시 작성∙교부된 서류만으로는 금융투자상품의 판매과정상 문제점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 법원이 제출된 증거와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불완전판매의 성립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성중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경력
· 2018-현재 법무법인(유) 화우
· 2024 농협은행 본점 (파견)
· 2021-22 신한은행 본점 (파견)
· 2021 중소기업은행 본점 (파견)
· 2016-18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 2015-16 국방시설본부 법무실 (국가송무담당)
· 2013-15 육군 제8군단사령부 법무부 (국선변호, 국가송무·배상담당)

학력
· 2022-23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chool of Law (Visiting Scholar)
· 2016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행정법박사 수료)
· 2013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
· 201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2010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부
· 2003 중대부속고등학교

 

abc123@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김일성 출생과 가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김일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를 알아야만 분단, 6·25전쟁, 정전 후 북한군 도발, 북한 핵 문제,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의한 자유 통일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김일성 그를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해부한다. 출처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 전쟁사 제1권', 전 성균관대학교 이명영 교수의 '김일성 열전', '권력의 역사', '세기와 더불어는 어떻게 날조되었나', 유순호 '김일성, 상중하', 김준협·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서울대 조영남 교수의 '중국의 통치체제' 등이다. 1950년대 북한 마을 전경. [사진= 국사편찬위윈회] 김일성은 ① 본명이 김성주다. 역사 자료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김일성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② 중국으로 귀화한 중국인이었다. ③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④ 중국 공산당 만주 무장단체 동북항일연군 대원이었다. ⑤ 중국 공산당 혁명을 위해 활동하였다. ⑥ 항일 독립운동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⑦ 1940년 10월 중국 공산당 주보중을 지휘관으로 봉대하며 소련으로 망명했다. ⑧ 귀화한 중국인, 중국 공산당 당원, 소련군 대위 신분으로 1945년 9월 19일 귀국하였다. 영국 화이트 스타 라인이 운영하던 북대서양 횡단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가던 중, 1912년 4월 15일 대서양 한가운데서 빙산과 부딪쳐 침몰하는 세기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1,500여 명이 사망했던 그 날,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平安南道)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남리(南理)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 이름은 김성주(金聖柱)였다. 훗날 북한 정권 제1대 지배자 김일성(金日成)이다. 아버지는 김형직(金亨稷)이고, 어머니는 강반석(康盤石)이다. 김성주가 태어날 때 아버지 김형직은 열여덟 살이었고, 어머니 강반석은 스무 살이었다. 김형직과 강반석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김형직은 아들 김성주가 태어날 때 개신교 신자만 들어갈 수 있는 숭실중학교 학생이었다. 김형직의 장인 강돈욱(康敦煜)은 오늘의 평양시 만경대 구역인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 칠곡교회 장로였다. 김형직은 장인 강돈욱에게 부탁하여 맏아들 이름을 김성주라고 지었다. 김형직 아내(김성주 엄마) 강반석 본명은 강신희였다. 이를 강돈욱이 세례명 베드로, 우리말 반석으로 개명했다. 김형직과 강반석은 아들 3형제를 두었다. 첫째는 성주였고, 둘째는 철주(哲柱), 셋째는 영주(英柱)이다. 둘째 철주는 1935년 만주에서 죽었다. 영주는 북한 정권 제2인자 자리까지 올라갔으나, 김성주 아들 김정일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후, 실권이 없는 한가한 직책에 머물다, 2021년 12월 사망했다. 북한 정권은 김형직을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민족해방운동의 선각자이며, 3·1운동의 조직자로 선전하고 있다. 강반석은 김형직이 3·1운동을 선도할 당시 그 뒷바라지를 한 혁명의 어머니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실 김형직은 민족주의자였다. 1926년 공산주의자에게 돈을 내 주지 않는 등 비협조적 인물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김성주의 할아버지는 김보현(金輔鉉)이다. 김성주의 할머니는 이보익(李寶益)이다. 김보현과 이보익은 아들 형직(亨稷), 형록(亨祿), 형권(亨權) 3형제와 딸 구일녀(九日女), 형실(亨實), 형복(亨福) 등 3남 3녀를 낳았다. 형록은 영주(永柱), 원주(元柱), 창실(蒼實), 원실(元實) 등 6형제를 두었다. 형권은 일찍 죽었다. 김성주 증조할아버지는 김응우(金應禹)이다. 남의 집안 묘를 관리하는 묘지기였다. 북한 정권은 김성주 증조부 김응우가 1866년 대동강에 들어온 제너럴셔먼호를 격침 시킨 반미운동의 선구자로 날조하여 선전하고 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11-03 06:00
사진
시진핑, 경주서 3일간 머문 뒤 떠나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 기간 중 머물렀던 경주 코오롱호텔에 감사 인사를 남기며 3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2일 호텔 측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오후 3시 20분경 숙소를 떠나며 "잘 머물다 갑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전했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경주에 머물며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경주=뉴스핌] 윤창빈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탑승한 훙치 N701이 30일 오후 경북 경주시 코오롱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2025.10.30 pangbin@newspim.com 코오롱호텔은 객실 300여 개 규모의 대형 호텔로 시 주석 체류 기간 동안 일반 손님은 전혀 받지 않았다. 모든 객실은 중국 정부 수행단과 관계자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9층 객실에 머물렀으며 호텔 내 식당이나 부대시설은 이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객실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식사 메뉴와 동선은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됐다. 체류 내내 가장 강조된 부분은 보안이었다. 시 주석이 떠난 이후에도 코오롱호텔 주변은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장에는 경찰특공대가 배치돼 있었고, 장갑차가 주차장에 대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호텔 진입로에는 철제 펜스와 가림막이 이중으로 설치돼 외부에서는 차량의 이동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진입로 양옆에는 100미터가 넘는 구간에 가림막이 이어졌고 출입 시에는 엑스레이 짐 검사와 이중 신체 검색이 이뤄졌다. 로비 유리창도 모두 차단막으로 가려져 외부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호텔 관계자는 "직원들조차 시 주석을 직접 볼 수 없었다"며 "호텔 내에서도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이 사전에 철저히 조정됐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 경찰과 중국 경호 인력 등 약 100여 명이 호텔 내부 곳곳에 배치돼 24시간 경계 태세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호텔[사진=코오롱 호텔·리조트] mkyo@newspim.com 2025-11-02 10:59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