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불법파업 확산·수백 하청노조 개별교섭 시 극도 혼란"
전문가 "'교섭창구 단일화' 이미 시행...불법파업 처벌 가능"
독일, 하청 노동자 교섭권 보장하면서도 파업일수 OECD 최저
[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개별적으로 교섭을 요구하면 원청이 일일이 대응할 수 없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불법 파업이 확산할 우려도 크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위원들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한 경제6단체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의 문제점을 공식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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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오른쪽)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이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손 회장은 이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노사 간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고용노동부] |
◆ 경영계 "수백 개 하청노조 개별교섭 시 극도 혼란, 불법파업 확산 우려"
25일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경영계의 우려는 노조법 개정안의 실제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복수노조 또는 여러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의2)가 이미 시행 중이다.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에 따르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 형태와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해 교섭을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노란봉투법은 합법적인 파업에 한해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지, 불법파업은 여전히 손해배상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다. 불법파업에 대한 사용자 방어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손해배상을 할 경우 사측은 노조 재산 압류, 조합비 계좌 차단, 노조 운영비 동결 등의 방법을 쓸 수 있다.
신하나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열악한 노동자들이 임금 손실을 감내하며 무리하게 파업을 남발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며 "오히려 단체교섭의 상대방을 명확히 해, 불필요한 분쟁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용석 금속조노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정책부장도 "노동조합 치고 파업 좋아하는 조합은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파업하면 돈을 못 받는데, 왜 일부러 파업하려고 하겠냐"고 단언했다.
합법적인 파업 조건을 지키는 것도 까다롭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최범규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합법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측에 교섭을 요구해야 하고 노동위에 가서 교섭을 중재하고 파업 여부와 관련한 조합원 투표,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등 몇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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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AI생성] |
◆ 독일, 3층 구조로 노사갈등 최소화…파업 일수 OECD 최저
독일, 프랑스 등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도 사용자 측의 방어 수단을 함께 마련해 노사갈등을 최소화하고 있다.
독일은 노동조합, 근로자협의회, 기업 공동 결정이라는 3층 구조로 근로자 대표 시스템을 운영한다.
노동조합은 특정 경제 부문 근로자들을 대표해 사용자단체와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파업도 할 수 있지만 특정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근로자협의회는 직원 5명 이상 사업장에서 4년 임기로 선출되는 근로자 대표기관이다. 채용·전보에는 동의권을, 해고에는 협의권을 갖는다. 사회문제(근무시간, 보상 원칙 등)에서는 사용자와 근로 합의서를 체결해 공동 결정권을 행사한다.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조정위원회가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린다.
기업 공동결정제도는 노동자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근로자 500명 초과 기업은 감독이사회의 1/3을, 2000명 초과 기업은 절반 이상을 근로자 대표로 구성해야 한다. 이 같은 시스템 결과 독일의 파업 일수는 2020~2022년 기준 노동자 1000명당 17.8일로 OECD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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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노동조합, 근로자협의회, 기업 공동 결정이라는 3층 구조로 근로자 대표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래픽=AI 이미지 생성] |
프랑스는 대표적인 산별교섭 중심 국가로 꼽힌다. 단체협약은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불법 행위와 파업이 병행될 경우 사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사측은 각 노동자 개인별로 불법행위와 손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다. 파업 자체만으로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경우 역시 극히 드물다고 알려진다.
김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사측)의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하청, 특고, 플랫폼,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청 등 실질적인 사용자가 그동안 누려온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라며 "노동자들의 자유가 억압됨으로써 얻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법적 노동쟁의의 범위가 과도하게 축소되고 손해배상책임이 과도하게 파업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등 반헌법적 상황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chogiz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