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6월 30일(현지시간) 개막한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흰옷이 아니면 윔블던 코트에 설 수 없다. 세계 최고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회답게 '드레스 코드'는 엄격하다. 선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백'이어야 한다.
경기할 때 두건을 착용하고 뛰는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21세 기대주' 디아나 슈나이더(세계 15위)는 1회전에서 흰색 두건을 구하지 못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윔블던에서 두건 없이 경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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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퀸스클럽 챔피엄십 16강전에서 두건을 쓰고 경기한 슈나이더와 30일 두건 없이 윔블던 여자단식 1회전에서 승리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슈나이더. [사진=로이터] |
평소 특수 제작한 두건을 착용하는 슈나이더는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땀을 잘 흡수하는 원단을 찾아 두건을 맞춤 제작하는데 흰색 천은 구하기 어려웠다"며 "시간이 부족해 윔블던에 맞는 두건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폭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은 가운데 땀을 비 오듯 흘리며도 우치지마 모유카(72위·일본)를 2-0(7-6<7-5>, 6-3)으로 제압하고 2회전에 진출했다. 슈나이더는 "푸른 잔디와 흰옷의 조화는 윔블던만의 멋이다. 즐겁고 멋있다"며 대회 분위기를 추켜세웠다.
윔블던의 '흰옷 고수'는 18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땀이 드러나는 걸 '부적절하다'고 여겼고 흰색 옷이 땀이 덜 보여 자연스럽게 관습이 됐다. 규정으로 명문화된 건 1963년부터다. 브라질의 테니스 스타 마리아 부에노가 1962년 화려한 복장으로 출전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후 대회 측은 드레스 코드를 명문화했다.
1970년대부터는 선수들과의 '복장 전쟁'이 본격화됐다. 2013년에는 로저 페더러가 흰 운동화에 주황색 밑창을 신고 출전했다가 곧바로 제재를 받았다. 이듬해인 2014년부터는 속옷까지 흰색으로 통일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2017년에는 비너스 윌리엄스가 분홍색 스포츠 브라가 드러났다는 이유로 경기 중 브라를 갈아입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같은 해 남자 선수들도 속바지 색깔까지 일일이 검사받는 수모를 겪었다. 2023년부터는 생리 불안감을 호소한 선수들의 의견을 수용해 여자 선수에 한해 유색 속옷 착용이 허용되면서 다소 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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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분홍색 스포츠 브라를 착용한 비너스 윌리엄스의 경기 모습. [사진=ESPN스포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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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페더라가 착용한 주황색 밑창을 댄 흰 운동화. [사진=ESPN스포츠] |
올해 윔블던 공식 규정에는 '거의 흰색이나 크림색도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목선과 소매 장식도 1㎝를 넘으면 안 되며 언더웨어는 반드시 흰색이어야 한다. 의료진이나 장비조차 가능한 한 흰색을 써야 하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유색 허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관중까지 복장을 규정한다. 로열 박스에 앉는 남성은 정장과 넥타이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며 여성은 드레스 착용은 되지만 모자는 금지된다. 올잉글랜드 클럽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우승자부터 예선 통과 선수까지 모두 똑같은 색의 옷을 입는 것은 훌륭한 평등의 상징"이라며 "선수가 주목받고 싶다면 패션이 아닌 경기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윔블던은 '테니스계의 롤스로이스'라 부른다. 단정한 흰색 복장은 이 대회가 가진 보수적 권위를 상징한다. 선수들은 이를 불편하지만 지켜야 할 품격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일부 선수들과 팬들은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앙드레 애거시는 과거 흰옷 규정에 반발해 1989년과 1990년 윔블던을 아예 불참하기도 했다.
psoq133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