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브리핑 진행하지만 위약금 면제 문제는 공회전
해킹 한 달 간 가입자 40만명 이탈...'고객 신뢰' 회복 조치 필요
[서울=뉴스핌] 정승원 기자 = "SK텔레콤 해킹으로 해지하고 싶은데 인터넷이 결합으로 묶여 있어 위약금 때문에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저녁 모임에 나갔다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날 모임에서 SK텔레콤 가입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다른 지인은 이번 해킹 사태로 다른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했지만 결합 상품으로 묶여 있다던 지인은 위약금이 발생할까 통신사 번호이동을 하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이심(e-Sim)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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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산업부 기자 |
문제는 그가 데이터 나눠쓰기로 태블릿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는 이심 지원이 돼서 이심으로 교체했지만 태블릿은 이심 지원이 안 되는 모델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매일 SK텔레콤의 뉴스를 확인하면서 상황이 진전됐는지를 확인하며 자신의 유심 교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SK텔레콤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사고 후 기자회견을 열어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객들에게 사과를 했고 유심 교체와 함께 유심보호서비스 가입도 진행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신규 영업 중지 행정지도를 받아 전국 2600개 대리점은 유심 교체에 힘쓰고 있으며 유심 교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데일리 브리핑도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 브리핑에 나서는 임원들은 고객 불편에 대한 지적인 나올 때마다 "고객들께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한다.
그럼에도 한 달의 기간 동안 SK텔레콤 브리핑을 취재하며 든 생각은 소비자와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과기정통부의 요청에 따라 브리핑을 계속 진행 중이지만 브리핑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소비자들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소비자들이 가장 듣고 싶은 답은 브리핑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SK텔레콤 관련 뉴스를 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위약금 면제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위약금 면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했으며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은 "이용자의 형평성 문제와 법적 문제를 같이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 시 최대 500만명이 이탈하고 매출까지 감안하면 조 단위의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SK텔레콤은 이번 해킹 사고 이후 '고객 신뢰'라는 단어를 자주 강조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고객신뢰위원회도 구성을 완료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번 사고에 대한 SKT의 대처는 고객 신뢰 회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분이 많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도 "SKT의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역대급 사건"이라며 "SKT는 피해가 발생했는지 따지기 전에 이미 발생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약금 면제로 조단위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SK텔레콤의 입장이다. 여기에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통신사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위약금 때문에 통신사 이동을 할 수 없는 소비자는 빠져 있다.
해킹 피해에 대한 책임도 마찬가지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100% 책임지겠다'는 SKT의 입장은 아직 해킹으로 인한 고객 피해가 없다고 보는 것과 같다. 해킹을 당한 것 자체가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본 것이다. 고객들은 SKT를 믿고 개인정보를 맡긴 것인데 SKT는 마땅히 해야할 정보보호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사고 한 달이 지난 현재 SKT 가입자 40만명이 타 통신사와 알뜰폰 등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해커의 공격으로 수많은 리스크가 발생한 SKT의 입장도 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더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고객들이다.
SKT는 각종 조사가 끝나고 고객신뢰위원회를 통해 고객 신뢰 회복 방안에 대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SKT가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고 초기 대응에서 보여줬던 아쉬움을 메울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고로 잃는 것은 단지 가입자수만이 아닐 것이다.
ori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