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묻다
유머와 해학으로 미국식 민주주의 비판
작금의 한국 상황에 대해 던지는 심각한 질문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총을 든 스님'은 세계에서 국민 총행복 지수가 가장 높다는 부탄을 배경으로 한다. 2006년 부탄 왕국에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다. 국왕이 자진해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기로 한다.
왕정 국가 부탄에서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마련한다. 그러나 왕정 국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민주적 선거의 개념을 가르치는 건 쉽지 않다. 산업화를 추구하는 빨간색,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파란색, 전통을 수호하는 노란색으로 나누어 투표하라고 가르친다.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당국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은 편의상 세 편으로 나눈 주민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라고 강요한다. 한 노인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무례를 강요하느냐? 우리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반박한다. 누군가는 선거가 "새로운 돼지 질병이냐?"고 묻는다. 결국 모의 선거는 노란색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다. 노란색이 왕의 상징색이었던 것이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영화 '총을 든 스님'의 스토리를 이끄는 건 총이다. 모의 선거가 치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마 승은 젊은 제자에게 보름달이 뜨기 전에 총을 구해오라고 명한다. 젊은 스님은 부탄을 샅샅이 뒤진 끝에 미국 남북 전쟁 당시의 희귀한 소총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건너온 무기상이 이 총을 노린다. 무기상은 가격을 산정할 수 없는 골동품 총을 손에 넣기 위해 제임스 본드가 쓰던 최신식 기관단총 두 자루를 구해준다.
이 영화를 만든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10대 시절을 해외에서 자랐다. MTV를 보고, 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를 갔다. 자연스럽게 007 제임스 본드 영화도 봤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적 민주주의를 부탄의 행복주의에 대비시키면서 놀라운 통찰력으로 그릇된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총을 든 스님' 메인포스터. [사진 = (주)슈아픽처스 제공] 2025.01.02 oks34@newspim.com |
라마 승은 과연 이 총을 무엇에 쓰려고 구했을까? 이 영화의 핵심적인 질문이 거기에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보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일까. 느닷없는 통치자의 계엄 발표와 그 이후 벌어지는 혼돈스러운 상황을 접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2025.01.02 oks34@newspim.com |
국민의 행복은 뒤로한 채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정치인들과 그럴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이 아직도 유효한가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 그 조항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