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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 (상) 박지원 "지금 82세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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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김대중 선생 만나자마자 큰 절"
청년에게도 조언 "현실 어려워도 노력하면 잘 될 것"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TV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어머니와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잊지 못할 인연들과 자신의 정치 철학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당시 사형 선고 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뉴욕한인회장이었던 박 의원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씨와 친분이 있을 정도로 집권 여당과도 인연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 의원은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서 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김대중 선생에게 큰 절을 올렸다"며 "선생님, 제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랜 기간 측근으로서 곁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용인술은 위기 때 측근을 불러 해결하고, 위기가 지나가면 측근들을 멀리하는 것이었지만, 박 의원은 한 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박 의원은 그 비결에 대해 '모든 일에 영혼을 바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일에 자기의 영혼을 바쳐서 해야 상대방이 미동을 하지 내가 쇼를 하면 이미 상대방은 안다. 그래서 혼을 바쳐서 해야 한다"라며 "그런 것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이날 현재 어려운 청년들에게도 당부와 격려의 말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이뤄졌다"며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의 개념이 아니라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82세이지만 저는 한번도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서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다"며 "청년들이 궁색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0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 출생으로 광주 교육대학과 단국대학교 상학을 졸업했다. 14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국민회의 대변인,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대변인,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실장 등 김대중 정부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다.

이후에 18대·19대·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원장을 역임하고 다시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서 22대 국회의원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4.12.02 dedanhi@newspim.com

 다음은 박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채송무 정치부 기자, 이하 채 기자)정치인의 미래와 과거, 현재를 전부 아우르는 폴리티션스토리 진행을 맡은 뉴스핌 정치부의 채송무 기자입니다. 옆에는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스웨덴 린네대의 최연혁 교수님 모셨습니다. 오늘은 박지원 의원님 모시고 정치 역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은 오랜 기간 민주당 내에서 전략적 사고와 성실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당 원내대표를 하실 때 여당에서는 굉장히 괴로워하면서도 타협할 수 있는 원내대표라고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같은 성실함이나 전략적 사고는 어린 시절부터 있어왔을 것인데 어떤 소년이셨습니까.

▲(박지원 의원, 이하 박 의원) 그렇게 칭찬을 받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저희 아버님이 독립지사니까 그런 피가 있겠죠. 그런데 진도에서 저희 집안이 늘 국회의원을 나가고 도의을 나가니까 주위에서 그런 것을 보고 자라 '국회의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김영삼 원내총무가 펄펄 날라 다녔잖아요. 그래서 '나는 야당 총무를 꼭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별명이 야당 총무였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진도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박 의원) 진도는 유배지로 장흥군과 진도군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유배된 이들의 후손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진도로 유배 와서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한국화, 서예, 특히 국악에 대해 분위기가 아주 좋은, 가난하면서도 평화로운 그런 섬이죠.

-(최 교수) 그 당시 정치적인 현안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의원) 저희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으로 진도를 오셨대요. 어머님이 여성 대표로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고. 어렸을 때 그것이 기억나요. "손을 명주로 싸가지고 있어야 되겠다"고. 대통령과 악수했다고. 대통령이 상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적 이념은 없었어요. 단 우리 집안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인척, 형님, 아저씨들이 다 민주당을 했어요. 자유당을 하지 않고. 그래서 늘 저항정신은 갖고 있었지만, 제가 어려서 민주당이 무엇인지, 자유당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조건 국회의원을 한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나갔죠.

-(채 기자) 아버님이 독립투사셨던 집안 분위기도 있지만, 가장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어머니셨을 것 같은데, 어머니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무엇입니까.

▲(박 의원) 어머니는 저에게 모든 것이었죠. 누구나 그렇잖아요. 자기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우리 집이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지도 않고. 그냥 밥술깨나 먹는 집안으로 정미소를 했는데 베푸는, 나누는 삶을 살도록 말씀을 하셨고 실제로 어머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남에게 충분하게 주는 사람이 돼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으로 남아있고 그것이 좋은 교훈을 준 기억이 있어요. 정치를 하면 우리 국민들이 평화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엊그제 대전 독립지사 묘역에서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 드리고 조카들, 손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갖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분이기 때문에 혼자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나누어 갖으려는 생각을 가져라"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의원) 의원님을 보면 인연이라는 것은 선택과 자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진도에 있다가 미국으로 가셨습니다. 과정을 말해주시죠

▲(박 의원) 제가 LG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저희 큰 형님이 회사에서 미국으로 가셨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형님 회사에 잠시 있다가 나와서 독립을 해가지고 저는 진짜 모든 일을 열심히 해요. 치열하게,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을 했죠. 그러니까 "너는 장사할 사람이 아니다. 정치를 해라"고 해요. 저는 긍정적·진보적·진취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이룬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 실패 이런 개념이 아니라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들로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82세이지만 한 번도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서 그 꿈을 향해 가고 있어요. 청년들 좀 궁색하게 생각 하지 말고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되는 것 아니에요?

-(채 기자) 의원님의 정치 역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미국에 가서 성공한 사업가가 돼 당시 민정당 쪽과도 친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김대중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박 의원) 제가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와 아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미주지역 총연합회장을 하고 있는데 전경환 씨가 왔더라고요. 그 분의 형님이 그렇게 높은 사람인지는 처음에는 몰랐죠. 전두환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하는데 뉴욕 한인회장 자격으로 환영위원장을 했어요. 이후 전경환 씨가 굉장히 잘해주려고 했어요. 한국에서 큰 이권을 주어서 제가 나왔어요.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언젠가는 정치를 하고 싶은데 내가 이것을 하면 족쇄가 될 것 같아요. 독재자에게 이득을 보게 되면 족쇄가 되지 않냐, 그래서 큰 형님에게 전화를 했어요. "형님, 아무래도 내가 이것을 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으로 족쇄가 될 것 같습니다" 했더니 큰 형님도 "하지 마라" 그래서 그 다음날 안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계시다가 석방이 됐잖아요. 그래서 미국으로 오신 거에요. 저만 안 갔죠. 왜냐면 전두환 쪽과 관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 친구의 소개로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갔어요. 제가 찾아간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일체 집을 비우고 혼자 계시더라고요. '내가 잘못 살았구나'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아계신 김대중 선생께 큰 절을 올렸어요.

울면서 "선생님, 제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했더니 저보고 일어서라고 하더라고요. "박지원 회장이 전두환 대통령 환영식을 했다고 해서 부담을 갖지 마라. 당연히 전두환 대통령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미주지역 총연합회 회장으로 환영한 것이니까 괜찮다" 그리고 저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 "박 회장은 이미 대한민국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박 회장이 수입해 오는 한국 물품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이 고용돼서 소득을 올리고, 우리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라면서 "나를 좀 도와줘라".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밀사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 대통령은 편지가 다 검열되거든요. 저한테 써주면 제가 가지고 가서 한국에서 나눠드리고 답장 받아오고. 당시에는 김대중 선생이 정치를 한다, 앞으로 재기해서 대통령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때에요. 그런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게 됐습니다.

-(채 기자) 이후에도 대통령 대선 패배와 정계 은퇴, 그리고 복귀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을 함께 하셨고, 김대중 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 역할을 하셨습니다. 또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는데, 김대중 정부를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박 의원) 먼저 13대 국회 때 김대중 총재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비례대표를 해라' 당시에는 당에 공식적으로 돈을 내던 세상입니다. '얼마를 갖다가 총무원장을 하시던 최영근 의원. 울산 국회의원을 했었던 그 분에게 드려라' 했는데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 동부고, 서부도 있으니까 이런 것으로 해서 밀려서 안됐어요. 저는 돌아가는데 김대중 총재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어요. 이후 제가 김대중 총재님이 만들었던 미국 인권문제연구소를 이영작 박사, 유종근 박사하고 같이 해왔었어요. 그러다가 14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어요.

선거 끝나고 미국 집에 가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전화를 주셔서 '수석부대변인을 맡아라'. 이때는 이기택 총재가 통합을 해서 이기택 총재의 꼬마 민주당 분들은 국민을 상대하는 원내대표, 대변인을 맡고, 소위 김대중계, 동교동계는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맡았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때 권노갑·김옥두, 동교동 선배들이 제가 좀 인상이 좋았나봐요. 그래서 '인상이 좋은 박지원이 옆에서 모시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해서 수석부대변인을 맡았는데, 이기택 총재 계열의 장석화 의원이 대변인, 제가 수석부대변인. 물론 장석화 의원은 재선 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뉴스는 김대중 총재에게서 나오잖아요. 이기택 총재는 별로 말씀을 안하시니까. 그러다 보니 사실상 제가 대변인을 했어요. 매일 새벽 6시에 가서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민주당은 김대중 후보가 낙선을 하더라도 실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 4년 있다가 김대중이 있다. 그러니까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 이 생각을 갖고 했죠. 마지막 떨어졌을 때는 영국으로 가셨지만 소위 강창성, 문희상, 박지원을 이기택 총재에게 보냈어요. 저는 거기서도 대변인을 했는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민주당은, 동교동은, 호남은 '우리에게는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있다. 그래서 뭉치고 싸워서 이기자'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도 그 세력 중 하나고, 가장 측근으로 옆 자리에서 모셨어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의사를 보면 위기가 오면 동교동계 측근, 소위 가신들을 불러서 위기 극복을 하고, 극복이 되면 다시 이분들을 멀리 떼요. 공전하게 하는 거죠. 그런데 저만 1992년부터 서거하시기 전까지 한 번도 옆에서 떨어져 본적이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열심히 한 것 뿐이에요. 혹자는 '박지원이 대학에서 노인심리학을 전공해서 아부를 잘한다'. 저도 많은 모략을 받죠. 그럴 때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천하의 김대중이 누구나 아부는 한 두 달 하면 다 나타난다. 모든 일에 자기의 영혼, 혼을 바쳐서 해야 상대방이 미동을 하지 내가 쇼를 하면 이미 상대방은 안다. 그래서 혼을 바쳐서 일해야 한다". 그런 것을 저는 중시했다고 봐요. 우리 민주당은 김대중과 함께 뭉쳤다. 싸웠고, 언젠가는 이긴다는 신념으로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지지해서 대통령이 됐고 오늘날의 IT 강국, 생산적 복지, 노벨평화상,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정상회담을 이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dedanh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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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지지율 69%·與 국힘 2.5배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6·3 지방선거에서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53%로 야당 견제론(34%)을 압도했다. 정당 지지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비해 2.5배 높았다. 대구·경북(TK)도 접전 양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0%에 육박했다. 취임 후 최고치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국정 안정론이 견제론에 19%포인트(p) 앞섰다. 여론조사 통계를 놓고 보면 민주당은 TK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믿을 수 있는 지역은 거의 TK가 유일했다. 그나마도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출마 예상 후보가 국민의힘의 모든 경선 후보에 앞선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TK 민심마저 흔들린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본관에서 1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무위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3∼25일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지방선거 성격에 대해 '현 정부의 국정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안정론이 53%,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34%였다. 모름·무응답 13%였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중도층의 여론도 비슷했다. 중도층은 안정론이 52%, 견제론이 34%였다. 18%p 차로 전체 지지율 격차(19%p)와 비슷했다.  특히 T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여당 지지'가 높았다. TK에선 '여당' 27%, '야당' 52%, 모름·무응답 20%로, 야당이 여당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TK의 정당 지지율(민주 25%, 국민의힘 26%)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이와 다른 조사도 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김부겸 전 총리가 가상 양자 대결에서 모든 국민의힘 후보에 앞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5일 공개된 영남일보 의뢰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주호영 의원과는 오차 범위 안팎에서 앞섰고, 나머지 경선 후보들과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김 전 총리는 이 전 위원장과의 대결에서 47%와 40.4%로 6.6%p 차로 오차 범위 내 경합이었고, 주 의원과의 대결에서는 45.1% 대 38%(7.1%p 차)로 오차범위(95% 신뢰 수준에 ±3.4%p) 밖 차이를 보였다. 리얼미터 조사는 22~23일 18세 이상 대구 시민 820명 대상으로 무선 자동응답(ARS)으로 진행됐다. 응답률 7.2%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은 추경호 의원(9.9%p 차이)을 제외하고는 김 전 총리와 가상 대결에서 모두 두 자릿수 차이를 보였다. 김 전 총리는 최은석 의원과 홍석준 전 의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등과의 가상 대결에서는 과반 이상 지지도를 보였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회동을 마친 뒤 회동 내용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2026.03.26 photo@newspim.com 갤럽 조사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 국민의힘 18%였다. 지난 2주 전 조사와 비교해 민주당은 3%p, 국민의힘은 1%p 상승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각각 2%, 진보당은 1%를 차지했다. 특히 중도층에서는 민주당이 41%로 국민의힘(11%)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민주당은 전 연령에서 국민의힘에 앞섰다. 지역별로도 T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국민의힘에 우위를 보였다. TK는 민주당 25%, 국민의힘 26%, 개혁신당 4%, 진보당 2%, 조국혁신당 1% 순이었고, '그 외 다른 정당'은 3%, '지지하는 정당 없음'은 38%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팽팽했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거대 양당보다 높은 38%에 달한 것은 국민의힘에 실망한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이 대거 무당파로 이동한 영향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윤어게인 노선 갈등과 공천 내홍이 여론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이 집권 여당의 역할을 잘하느냐'는 질문에 긍정 평가가 53%, 부정 평가가 39%였다. '국민의힘이 제1야당을 잘하느냐'는 물음에 긍정 평가는 16%에 그쳤고, 부정 평가는 75%에 달했다. 특히 강세 지역인 TK에서도 부정 평가(74%)가 긍정 평가(15%)를 압도했다. 민주당의 입법독주에도 여당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이는 실용 노선을 앞세운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집안싸움으로 허송하는 국민의힘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2%p 오른 69%였다. 부정 평가 응답은 22%로, 지난 조사보다 2%p 하락했다. 전 지역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았으며, 대구·경북(49%)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긍정 평가가 과반을 차지했다. 20대 이하(46%)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긍정 평가가 과반을 기록했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다. 응답률은 21.3%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모든 여론조사의 통계상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70%에 육박하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민주당(46%)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믿었던 대구시장 선거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부겸 전 총리는 30일 지역 맞춤형 선물을 갖고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넘기는 선거는 여당이 절대 유리하다. 특히 취임 후 1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다. 이대로라면 여당이 돌발 악재가 겹치지 않는 한 압승이 예상된다.  leejc@newspim.com 2026-03-2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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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의 9배 'KBO 개막전 암표' [서울=뉴스핌] 나병주 기자 = 오는 28일 2026 KBO리그 정규시즌이 개막하는 가운데, 온라인 리셀 플랫폼을 중심으로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가의 9배에 달하는 가격에 표가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개정법 시행이 아직 반년이나 남아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티켓 리셀 플랫폼 '티켓베이'에는 개막전 입장권이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는 정가 1만4000원(1루 내야지정석)짜리 표가 최소 11만9000원에, 정가 2만5000원(원정 응원석)짜리 표는 25만원에 올라와 있다. 같은 날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KT 위즈 경기 역시 정가 1만8000원짜리 1루 네이비석이 최소 16만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서울=뉴스핌] 21일 열린 롯데와 한화의 시범경기에서 빼곡하게 가득 차 있는 관중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2026.03.21 wcn05002@newspim.com *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습니다.  이처럼 암표가 성행하는 이유는 현행 법 체계의 허점 때문이다. 국민체육진흥법(제6조의2)은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한 티켓 부정 판매만을 처벌 대상으로 한정한다. 매크로를 쓰지 않고 개인이 직접 표를 선점해 웃돈을 붙여 되파는 행위는 현행법상 단속이 쉽지 않다. 티켓베이 같은 리셀 플랫폼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로 분류돼 법적으로는 티켓을 직접 파는 당사자가 아니라 개인 간 거래를 연결해 주는 역할로 취급된다. 현행법이 암표를 판매한 개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보니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최근 법적 근거를 마련하며 제재 강화에 나섰다.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공포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따르면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공정한 구매 과정을 방해하는 모든 재판매 목적의 부정구매와 상습적인 부정판매가 금지된다. 적발 시 암표 판매자에게 판매 금액의 최대 50배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부정 이익을 전액 몰수·추징한다. 불법 거래를 알선·방조한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도 시정명령 등 제재 근거를 신설하고 불법 행위를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규정도 담았다. 문제는 이처럼 강력한 제재를 담은 개정안의 시행일이 오는 8월 28일이라는 점이다. 당장 이번 주말 개막전을 포함해 2026시즌 전반기 내내 온라인 암표 거래는 사실상 단속 공백 상태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단속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도 자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SSG 랜더스는 1인당 예매 가능 수량을 기존 12매에서 6매로 축소하고 취소 마감 기한을 경기 4시간 전에서 당일 오전 10시로 앞당기는 등 예매 문턱을 높였다. 이처럼 구단들이 예매 기준을 손보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암표를 뿌리까지 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구단 차원에서 매크로 탐지 프로그램 등을 돌리며 암표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히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 단속과 해석 과정에서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법이 개정됐지만 조항상 모호한 부분이 많다"며 "정가 대비 어느 정도 값을 부풀렸을 때 부정판매로 볼 수 있는지 등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향후 판례가 쌓여야 범위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lahbj11@newspim.com 2026-03-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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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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