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뉴스핌] 남효선 기자 = 세차게 쏟아지던 소나기성 가을비가 기세를 낮추고 가로등 불빛처럼 은은하게 흩날리며 대지를 적신다.
하늘향해 머리를 곧추세우고 세찬 비를 온몸으로 맞던 메타세콰이어 숲이 고요하다.
정적을 깨듯 한 무리 새들이 날아들어 세찬 빗소리 대신 맑은 음율을 쏟는다.
가을로 가는 숲 속은 아늑하고 고요하다.
수 만의 병정처럼 가지런하게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일제히 맑은 빗방울을 잎사귀에 달고 백설기 가루처럼 숲향을 흩뿌린다.
숲향에 취한 청개구리 한마리 메타세콰이어 나무 밑둥을 건너 풀 숲으로 내닫는다.
경북 영덕 영해들을 지나 벌영리에 자리 잡은 메타세콰이어숲이 편백나무를 허리에 끼고 때 늦은 가을비 속에 온 몸을 내맡긴 채 호젓하다.
이따금 숲을 흔들며 바람이 지나자 훌쩍 자린 메타세콰이어 나무와 편백나무가 후두둑 몸을 뒤채이며 영롱한 물방울을 날린다.
조선조 실학자이자 분방한 문장가로 문명을 떨친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년(영조 17)~1793년(정조 17)선생은 '원한(原閒)'이라는 글을 통해 '한가로움의 뿌리'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은 저절로 한가롭다"
그렇다. 이덕무 선생은 '한가로움의 근원'을 그저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움'에서 그 뿌리를 찾은 것이다.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는 이덕무 선생의 글을 소개하면서 "마음이 소란스러운 사람은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데려다놓아도 돈 버는 꿈이나 꾸고 권력의 쟁취나 꿈꾼다"고 단언했다.
[대구경북=남효선 기자] 2024.10.08 nulcheon@newspim.com |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하루 사이에 자신을 둘러싼 산야가 사라지고 강줄기가 바뀌고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식량을 내어주던 들판엔 낯선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
중국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에 숨가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동과 격무에 시달리며 황사에 미세먼지로 바깥출입마저도 꺼려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영해면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에서는 최소한 황사니 미세먼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이곳 메타세콰이어숲에 들어서면 세속의 욕망은 티끌도 없이 몸 속에서 날아간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전라도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 풍찬노숙의 세상의 일을 다 담은 듯 노년의 완숙함이라면 영해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은 해맑고 발랄하고 순하고 분방하고 꿈을 가득 머금은 청년들이다.
13~15년 남짓 나이를 먹은 메타세콰이어숲이 잘 매만진 가르마처럼 하늘을 받치고 양팔 벌여 사람들을 맞는다.
곧게 하늘로 솟은 메타세콰이어는 모두 허리춤에 편백과 측백 한 그루씩을 흡사 연인처럼 끼고 있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은 15년 전 이 고을 출신의 출향인사 장상국 선생의 자연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손길로 탄생했다.
숲은 어린만큼 여전히 미완성이다. 미완성이어서 꿈은 가득하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은 여타의 제법 이름난 숲처럼 출입 비용을 받지 않는다. 무료로 개방된다.
그냥 주어지는 것에는 반드시 무한 책임이 뒤따른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을 찾을 때는 아무 것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자신의 몸에 지닌 것들을 함부로 버려서도 안 된다.
속살을 고스란히 내어 주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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