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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한국은행,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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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르면 정부는 무엇을 하느냐고 국민들은 원성이지만, 사실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지는 곳은 다름 아닌 중앙은행이다. 과일 값이 오를 때 정부는 수입이나 대체과일, 정부지원 등 재정과 무역을 통해 물가를 잡으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고 푸는 것은 중앙은행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바라보는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가 같거나 비슷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정반대의 입장일 때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코로나 때와 같이 국민지원금이나 자영업자 지원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풀어 소비진작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할 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풀린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갑자기 올린다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둘의 관계는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자동차의 치킨게임처럼 비쳐지게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지원한 생활비 지원자금은 외식, 국내여행, 쇼핑 등의 소비 활동진작에 쓰이지 못하고 가계부채의 높아진 이자비용만큼 은행으로 들어가게 되어 정책효과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부는 중앙은행장 해임을 고려할 수 있을까? 또한 중앙은행은 정부와 대척점을 이루며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서라도 화폐조절을 통한 자신만의 정책기조를 고수해야 할까? 중앙은행이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고 엇박자가 되면 정부는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자신들의 말을 따를 수 있는 총재를 뽑아 애초부터 문제를 제거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 같은 가상적 상황은 결국 중앙은행이라는 국가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이라는 민주주의 문제로 귀착된다.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중앙은행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며,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로부터의 독립적 관계를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각국의 독립성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국제적 지표는 있을까.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수준일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출처=블룸버그통신]

세계 제1위 권력자,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고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리치(Robert B. Reich) 교수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는 미 대통령이 아닌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이라고 그의 자서전에서 적고 있다. 정치 베테랑이었던 리치가 주목한 그린스펀은 19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후 2016년 직위에서 물러나기까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그리고 조지 W. 부시까지 4명의 대통령의 대통령과 함께 미 연방은행을 이끌어 온 수장이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사건은 바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 패닉사태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발생한 주가폭락사건은 1929년 발생한 두 번의 월스트리트 대폭락 수치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홍콩에서 시작해서 유럽으로 이어진 폭락사태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이르러 다우존스 지수가 22.61% 하락해 세계경제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을 때 그린스펀이 신속하게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대폭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위기는 가까스로 수습되었다. 주가대폭락을 신속하게 대처한 그린스펀은 세계적 주목을 단숨에 받으며 스타덤에 뛰어올랐다.

그의 뒤를 이은 벤 버냉키(Ben Bernanke), 재닛 엘렌(Janet Yellen), 제롬 파월(Jerome Powel)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그린스펀 만큼 인지도는 없어도 세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자국의 중앙은행장 이름은 생소해도 미국 연준위의장의 이름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중앙은행의 역사

1401년에 설립된 바르셀로나 은행(Taula de canvi de Barcelona)은 지방 공립 은행의 첫 번째 사례다. 1407년 이를 모방해 제노바 공화국의 세인트 조지 은행(Bank of Saint George)이 설립되었고, 베니스에도 지로은행(Banco del Giro)이 설립되었다.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과 1619년 함부르크 은행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이 은행들은 국제 무역의 효율성을 높이고 통화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지방 공공 은행으로 활동하며 중앙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국가가 소유한 중앙은행은 1688년 스웨덴 신분의회가 소유한 국가은행(Riksens Ständers Bank)이 세계최초다. 안정적인 화폐보유를 통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군대조직과 무기제작 등을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국왕의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는 스웨덴이 30년전쟁의 승전국으로서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1899년 릭스방크법에 따라 스웨덴 릭스방크로 이름을 바꾸며 1931년부터 1975년까지 금본위제를 택해 국가가 보유한 금의 가치만큼만 지폐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켰다.

영란은행.[사진=로이터 뉴스핌] 2023.11.02 mj72284@newspim.com

스웨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은 주식회사형태의 특허회사로 출발했다. 1690년 프랑스 해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해군육성이 시급했던 영국은 런던정부의 낮은 국제신용과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란은행법(The Bank of England Act)에 따라 은행을 설립했다. 골자는 런던과 웨스트민스터의 자본가들이 개인 최대 £10,000 투자를 유도해 함대를 건조할 수 있는 150만 파운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즉 대주주들이 참여해 만든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를 띤 은행으로 이 같은 형태는 1946년까지 유지되었다.

영란은행은 주주들이 소유한 주식회사 형태에서 국가가 국유화해 중앙은행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세계중앙은행 형성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첫 번째 계기는 월터 베이지호트(Walter Bagehot)가 쓴 '롬바르드가(街) (Lombard street: A Description of the Money Market, 1874)'에서 국가소유의 중앙은행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롬바르드 거리에서 활동했던 오버랜드 거니 은행(Overend, Gurney and Company)이 은행이 유동성 위기가 왔을 때 영란은행에 지불보증을 해 주지 않아 생긴 파산문제는 국가 중앙은행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주식회사였던 영란은행의 주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우량은행의 일시적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앙은행의 존재는 국가경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두 번째 영란은행의 위상에 영향을 끼쳤던 문서는 맥밀란 보고서(Macmillan Report, 1931)다. 맥밀란 위원회는 뉴욕 주식의 폭락사태에 따라 얼어붙은 영국의 금융시장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이 위원회에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eynard Keynes)도 조사위원으로 참가해 함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바로 영란은행의 국유화였다. 중앙은행의 개입 없이 국내 금융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1946년 국가가 소유하는 중앙은행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문서는 라드클립 보고서 (Radcliffe Report, 1959)다. 2차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해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것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해 영란은행을 지휘하고 통화정책과 경기관련 정책에 있어 정부가 우선권을 가지고 주도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강력하게 제시되어 논란이 되었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지휘와 감독 하에 운영되어야 한다는 권고안이었다. 2차대전 이후의 산업재건, 국가인프라건설, 그리고 주택건설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고 마셜플랜으로 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했던 정부의 역할에 힘을 실어준 보고서였지만, 이후 영국에서는 영란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며 중앙은행의 고유권한과 독립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했다.

루이 14세 사후 존 로(John Law)가 설립한 일반민간은행(Banque Générale - Banque Générale Privée)은 1716년 5월 20년 인가를 받은 주식회사였다. 침체된 프랑스 경제를 활성화하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비롯한 루이 14세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국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중앙정부의 소유는 아니었다. 1800년 나폴레옹의 주도로 프랑스은행 (Banque de France)이 처음으로 설립되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의 역사 속에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유럽의 중앙은행들보다 한참 늦은 1913년에야 설립되었다. 은행들은 평상시 예금자로부터 예치된 자금의 대부분을 투자에 쓰기 때문에 예금자들이 예치한 은행의 지불능력에 의구심을 갖고 일시에 현금을 찾으려고 할 때 발생하는 예금인출에 속수무책이 된다. 1930년대에 발생했던 대공황을 거치면서 위기상황에서 발생하는 뱅크런(Bankrun)에 대비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에서 '부분 지급준비금제도'가 갖춰졌다. 또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통화량을 재량껏 조절할 수 있게 하는 탄력적 통화정책을 통해 통화량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역할도 포함되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달러 발행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가 소유의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상업은행들(privately-owned commercial banks)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 미국 정부는 민간 기업인 연방준비제도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달러를 빌려오는 식으로 화폐를 조달하고 있는 형태다.

1971년 닉슨의 달러정책, 세계 중앙은행 화폐정책의 대변혁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체결한 조약은 본격적으로 1958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경쟁적 평가절하를 막아 세계 경제성장을 촉진하며 마셜플랜 하에 경제복구를 추진 중이었던 유럽과 일본은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화폐는 자연스럽게 달러에 고정되었다. 금1온스 당 35달러의 고정환율로 자국의 화폐를 바꿀 수 있었다.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단일 마차였기 때문에 브레튼우즈 체제는 잘 작동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70년에 이르자 서독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의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미국이 세계경제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27%까지 수직낙하했다. 베트남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국제수지의 적자악화, 통화팽창 등의 결과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71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84%, 그리고 8월 기준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다.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급히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 재무장관, 재무부 국제담당재무 국장 핵심인물을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 불러 비밀회합을 가졌다. 결국 달러와 금 사이의 태환제도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임금과 가격을 한시적으로 90일 동안 동결하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책정했으며, 이를 8월 15일 일요일 바로 발표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한 것이다. 이를 역사는 1971년의 닉슨쇼크(Nixon shock)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국내외적으로 성공하는 듯했다. 8월 15일 발표한 다음 날인 월요일 다우존스는 일일 사상 최대 상승폭으로 올랐고, 뉴욕타임스도 긍정적 사설을 실었다. 1971년 12월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후속 조치도 이끌어 냈다. 독일의 마르크화, 일본의 엔화 등 각국 통화의 미국 달러화에 대한 평가 절상이 이루어졌다. 이를 스미소니언 협정(Smithsonian agreements)이라 한다.

1973년에는 3월에는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꿔 무역수지에 따라 환율이 자동조절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모든 것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변동환율제는 라인강의 기적과 한국전쟁의 특수로 경제의 붐이 일고 있던 독일과 일본의 마르크와 엔화의 가치를 가파르게 상승하게 했지만,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줄어들어 두 화폐 대비 2분의 1의 가치로 계속 떨어졌다. 달러 가치의 지속적 폭락, 세경경제 2위와 3위 화폐의 가치상승은 스미소니언 합의도 폐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다. 1985년 9월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합의한 환율조정에 따라 달러 대 엔환율을 1달러에 250엔에서 120엔으로 대폭 조정하여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터널이 시작된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라 할 수 있다.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이 기점으로 경쟁력을 서서히 상실하면서 버블이 꺼져가지 시작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반사이익을 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1986년부터 3년 연속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2%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자료=한국은행]

중앙은행 독립성, 정치학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오다

중앙은행의 위상이 정치학 연구의 한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온전히 리파르트(Arend Lijphart) 교수의 덕이다.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형태(Patterns of Democracy, 1999/2012)에서 중앙은행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정도는 민주주의의 작동방식과 매우 연관이 높다고 주장한다. 리파르트 교수는 세 가지의 변수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첫째, 연방주의와 지방자치 수준이 높을수록 독립성은 올라가고, 단방형 중앙집권국가에서는 독립성이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독일, 스위스, 미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국가들의 1945-94년 사이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는 상위그룹에 속해 이 상관성은 0.6 정도에 이른다. 둘째, 노사 간의 협조체제가 공고한 국가일수록 독립성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노사 간의 공조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되면 국가가 경기부양이나 실업률 통제를 위해 중앙은행이 덜 개입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상관관계는 0.10으로 매우 낮아 신빙성은 떨어진다. 셋째는, 비례대표제로 권력이 공유되어 있는 국가일수록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두 번째 논리와 마찬가지로 권력이 분산되어 중앙은행에 압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0.06의 상관관계를 보여 거의 신빙성은 낮은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단방제, 중앙집권제, 다수대표제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로 대체로 위 3가지의 가설이 맞아 떨어진다. 1945-94년 사이 평균 0.27에 머물고, 1945-2010년까지의 평균도 0.36, 그리고 1995-2010년 기간 동안은 0.41로 대체로 최하위권에 있어 3개의 가설이 모두 해당되는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의 중앙은행 독립성 정도가 우리나라보다 낮게 나오기 때문에 전혀 설명력이 떨어진다. 위 세 나라는 단방제는 모두 동일하지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권력분산형 모델이라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결정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미국과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독립적 위상을 훼손시킨 사례들

사례 1. 존슨 대통령과 윌리엄 마틴 위원장과의 갈등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미 1951년과 1970년 사이 의장이었던 윌리엄 마틴(William McChesney Martin Jr.)과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과의 갈등은 더 극적이다.

1965년 12월 5일의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를 실천하기 위한 국내 프로그램 확대, 1964년 제정된 세금 감면,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출 증가 등의 재정 부양책을 들고 나왔을 때, 연준의장이었던 마틴 주니어(William McChesney Martin Jr.)는 경제가 과열되는 조짐이 있다고 보고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금리 인상이 경제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분노하며 연준의장과 경제 관료들을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날 모임에서 존슨 대통령은 담낭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상태에서도 격정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연준의장도 단호했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제가 옳고 대통령이 틀린다는 것은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연방준비제도법이 금리에 대한 책임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부여했다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결정이 최종적이어야 하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입니다." (리치몬드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1965: The Year the Fed and LBJ Clashed. https://www.richmondfed.org/publications/research/econ_focus/2016/q3-4/federal_reserve)

결국 존슨 대통령은 그의 뜻에 따라야 했다.

사례 2. 트럼프 대통령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위원장 길들이기

2018년 12월 10일자 워싱턴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을 향해 일련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은행을 '미쳤다'고 표현하며 '중국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고 파월의장을 길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또 기사에서 '제롬 파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봅시다'라며 강제퇴임 조치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꺼내며 압력을 가했다. (2018. 12. 10. 워싱턴 저널).

미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례 3.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와의 밀월관계

부동산 규제 및 대출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된 적이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금리가 2.5%에서 1.25%로 내려 가계대출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이를 따져 물었다. 2017년 10월 한국은행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한 의원과 한국은행 총재와의 질의답변이다. "취임 당시 2.5%였던 기준금리가 1.25%로 반 토막이 됐다. 소신을 못 지킨 게 이해가 안 된다". 질의에 대해 총재는 "5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는 경기흐름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에 기여한 것이다. 통화정책은 그야말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율적, 중립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경제부총리와의 압력에 의한 결정인지, 자율적이며 독립적 판단인지 의문이 남는다.

사례 4. 문재인 정부시절 경제부총리의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압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19년 7월18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2018년 11월 기준금리를 올렸다가 8개월 만에 돌려놓았다. 시장에서는 같은 해 7월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8월경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며 정책공조 필요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여러 차례 한국은행에 간접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이 말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경제부총리는 2019년 5월 기자간담회, 7월 4일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변화한 경제여건을 감안해 금통위가 합리적이고 적절한 판단을 할 것", "국제적으로는 전체적으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같이 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가 고려된다" 등의 발언으로 한국은행의 7월 금통위를 앞둔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압력 시그널을 보냈다.

이런 발언들을 두고 경제부총리의 지속적 압력이 금융정책에 영향을 미쳐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 금통위는 연 3.50%인 기준금리를 12차례 연속 동결했다. 2024.07.11 photo@newspim.com

한국은행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평가는 냉정하다. 리파르트 교수가 제시한 국제비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독립지수는 하위권에 속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한국은행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정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완전히 정부의 의지와 단절될 수는 없다.

미국의 제롬 파월이 트럼프가 보란 듯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것과 반대로 금리인하를 끝까지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던 사례나, 존슨 대통령의 엄포에도 당당하게 맞선 마틴 주니어의 한마디가 강하게 와 닿는다.

"나는 연방준비제도법이 금리에 대한 책임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부여했다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결정이 최종적이어야 합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통화안정과 물가안정, 그리고 경제성장의 큰 틀에서 자율적 결정의 잣대를 확실히 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결정하는 한국은행이 되어 한국이 국제비교에서 당당히 세계 최고수준으로 소개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최연혁 교수. 2024.01.15 mironj19@newspim.com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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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9호 홈런 등 3할 타율 복귀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가 홈런 포함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타율 3할대에 복귀했다. 이정후는 1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2026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 1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5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1득점으로 활약했다. 시즌 타율은 0.300으로 올라섰다. 이정후는 1회말 유격수 뜬공, 3회말 유격수 병살타로 물러나며 출발이 안 좋았다. 수비에서도 1회말 알바레스의 타구를 놓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방망이로 곧바로 빚을 갚았다. 팀이 1-1로 맞선 5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선발 헤이든 웨스네스키의 2구째 92.5마일(약 148.8km) 포심 패스트볼을 통타해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이정후. [사진=샌프란시스코 SNS] 2026.08.11 psoq1337@newspim.com 시즌 9호포로 빅리그 데뷔 후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경신했다. 장외로 날아간 대형 홈런이었으나 오라클 파크 특유의 '스플래시 히트'에는 미치지 못했다. 타구가 맥코비만 바닷물에 직접 빠지지 않고 난간을 맞았다. 이정후는 8회말에도 바뀐 좌완 스티븐 오커트의 슬라이더를 밀어쳐 좌전 안타를 만들며 멀티히트를 완성했다. 이후 2루 태그업까지 성공했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했다. 연장 10회말 마지막 타석에서는 유격수 땅볼로 돌아섰다. 이정후의 활약에도 샌프란시스코는 웃지 못했다. 3-2로 앞서던 9회초 마무리 딜런 스미스가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진 10회초 승부치기에서 제이슨 폴리가 폭투와 피안타로 무너지며 3실점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는 3-6으로 역전패하며 3연패에 빠졌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송성문. [사진=로이터] 2026.08.11 psoq1337@newspim.com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송성문은 밀워키 브루어스전에 9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으나 2타수 무안타 1희생번트에 그쳤다. 3회말 무사 2루에서 희생번트를 성공시켰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송성문의 시즌 타율은 0.209로 떨어졌다. 샌디에이고는 7회말 터진 잭슨 메릴의 역전 2점 홈런에 힘입어 3-2로 승리, 3연승을 달렸다. 밀워키 배지환은 결장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8-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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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공동명의 절세'도 옛말?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셈법이 세제개편을 계기로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절세 수단으로 활용돼 온 공동명의가 제도 변화에 따라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택 보유 형태에 따른 세 부담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명의 따라 달라지는 종부세…입법예고에 반발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세제개편안으로 공동명의 1주택자의 종부세 계산법이 달라지면서 명의 형태와 실제 거주 여부에 따른 세 부담 격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같은 한 채를 보유하더라도 단독명의인지 공동명의인지, 공동명의 특례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공제액과 세액이 달라져서다. 기존에 절세를 위해 선택했던 명의 구조가 세법 변화에 따라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주택 수 중심이던 종부세 체계를 주택가격과 실제 거주 여부 중심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거주 1세대 1주택자의 기본공제는 현행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높이는 반면 비거주 1주택자는 9억원을 적용한다. 1주택자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70%가 적용된다.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는 지분별로 각각 종부세를 내는 방식과 부부 중 한 명을 1세대 1주택자로 간주하는 공동명의 1주택 특례 가운데 유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특례를 택하면 단독명의 1주택자와 마찬가지로 실거주 여부에 따라 14억원 또는 9억원의 기본공제를 적용받는다. 반대의 경우 부부가 각자 보유 지분에 대해 별도의 납세자가 돼 종부세를 계산한다. 결국 실제로는 같은 집 한 채를 보유하고 있어도 명의와 특례 선택에 따라 적용되는 공제 구조에 차이가 있다. 비거주 1주택자의 기본공제가 9억원으로 낮아지면서 공동명의 일반과세가 더 유리해지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공동명의자가 1세대 1주택자와 다른 과세체계에 놓이면 오히려 불리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납세자들의 불만은 실제 보유주택 수보다 명의의 형식에 따라 과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집중돼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 내 종부세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총 3207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공동명의와 관련한 의견은 29건으로 전체의 약 0.9%다. 의견 제출자 A씨는 "부부 공동명의는 공정시장가액비율 80%, 단독명의는 70%를 적용하는데 공동명의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며 "그냥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제출자는 B씨는 재산세와 종부세의 기준이 다른 점을 문제삼았다. 그는 "재산세는 이미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에게 1주택 기준을 적용하면서 종부세는 명의가 2인이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세제 간 엇박자"라며 "집이 두 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한 채인데 부부가 공동명의로 등기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종부세만 실거주 여부와 명의 구조에 따라 과세 방식이 달라지면서 납세자가 체감하는 제도 간 차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거주냐 비거주냐…같은 집인데 수백만원 차이 명의 방식에 따른 세액 차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부부가 주택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한 것으로 가정해 반포자이 전용 84㎡의 보유세 변화를 분석했다. 세액공제는 적용하지 않았고 2027년 공시가격 상승률은 올해 상승률의 절반 수준으로 가정했다. 분석 결과 반포자이 전용 84㎡ 공동명의자의 보유세는 2026년 1171만원에서 2027년 실거주할 경우 1744만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1년 만에 573만원, 48.9% 증가하는 수준이다. 같은 공동명의라도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을 경우 증가폭은 더 컸다. 비거주 공동명의자의 보유세는 2027년 2183만원으로 계산돼 올해보다 1012만원, 86.4% 급증했다. 같은 주택과 동일한 지분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거주 여부에 따라 2027년 세 부담이 439만원 벌어지는 셈이다. 공동명의는 그동안 종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1주택자는 부부가 지분을 나눠 보유하면 각각 공제를 받을 수 있어 공동명의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법이 바뀌면서 기존에 유리했던 명의 구조가 예상치 못한 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장원 법무법인 리치 세무사는 "1주택 공동명의는 각각 종합부동산세 공제를 받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 유리한 편"이라면서도 "세법이 바뀌면 유리하다고 판단해 선택했던 공동명의가 갑자기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수가 늘어나면 명의 구조에 따른 차이는 더 복잡해진다. 이 세무사는 "부부가 각각 주택 한 채씩 온전히 갖고 있으면 각각 1주택자로 세금을 내지만 2채를 50%씩 갖고 있으면 각각 2주택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며 "유리하다고 해서 공동명의를 했는데 갑자기 세법을 바꿔버리면 곤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택을 취득할 당시의 세제상 유불리를 고려해 결정한 명의 구조가 이후 제도 개편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면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온다. 같은 주택을 계속 보유하더라도 거주 여부와 명의 형태, 특례 신청 여부 등에 따라 세 부담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과세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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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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