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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간 감독 74명 교체…대행과 공석 기간 빼면 평균 1년도 안돼
반면 축구협회장은 최근 31년간 사실상 정몽준-정몽규 2인 체제
성적 안 나오면 감독에게 무한 책임 떠넘기는 전형적 낙인 찍기
'하이 리스크, 리틀 리턴'…한국 사령탑 지원자 찾기 힘들어져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 '국민 역적'이 되기까지 두 경기면 충분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 얘기다.

차범근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멕시코에 1-3으로 진 뒤 네덜란드와 2차전에서 0-5로 대패했다. 네덜란드전 경기 내용은 골키퍼 김병지의 눈부신 선방이 없었더라면 더 큰 점수 차로 패배했을 정도로 참담했다.

방송해설 위원 시절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SBS]

대한축구협회는 파리 현지에서 긴급 기술위원회를 소집하고, 월드컵 도중 사령탑 해임이란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당시 기술위원들은 차범근의 잘못된 선수기용과 작전실패가 참패의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 넘겨받은 축구협회 수뇌부는 국민 여론이 최악이어서 극적인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경질 배경을 설명했다. 기자의 뇌피셜이 아니라 당시 언론 보도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이다.

차범근이 팬들의 야유와 조롱을 받으며 중도 귀국하는 그 기괴한 광경은 전국에 생중계됐다. 기자는 그 날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다행히 한국은 남은 벨기에전에선 김평석 대행 체제로 경기를 치러 1-1 무승부로 마감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수십 년 쌓은 공적이 며칠 만에 날아간 차범근

시계를 좀 더 앞으로 돌려보자. 차범근은 선수 시절이야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지도자로서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1991년부터 4시즌 동안 현대 호랑이 축구단(울산 HD) 지휘봉을 잡은 그는 사령탑 데뷔 첫 해 한국프로축구대회(K리그1) 준우승을 일궈냈다.

홍명보 감독의 요즘 울산이야 우승을 밥 먹듯이 하지만, 당시만 해도 준우승조차 역대 두 번째로 해보는 것이었다. 울산은 1992년과 1993년 연속 3위, 차범근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1994년에도 4위였다. 1993년엔 컵대회에선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차범근은 역시나 중도 퇴진한 박종환 감독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잇달아 잡은 뒤 일본 원정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이 경기는 '도쿄 대첩'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한일전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결국 차범근호는 전문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조 1위(6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다. 슈퍼스타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계의 징크스가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차범근은 월드컵 본선 두 경기 만에 나쁘면서도 무능한 감독으로 낙인찍혀 역사상 전무후무할 현지 해임을 당하는 희생양이 됐다. 그래도 그는 곧바로 중국 슈퍼리그 선전 핑안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 이 와중에 K리그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발언을 해 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축구협회는 옳다구나 하고 그에게 5년간 국내 지도자 자격 정지 중징계를 내렸다.

1년여 만에 선전 감독에서 물러난 차범근은 한동안 차범근축구교실에 전념했다. 마침내 징계가 풀려 2004년 수원 삼성을 맡은 그는 복귀 첫 해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2005년에는 컵대회 정상에 올랐다. 2008년에는 리그와 컵대회에서 동시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9년 10위로 추락한 뒤 2010년 시즌 중 자진 사퇴했다. 이후 그는 방송해설만 하며 현장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2016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사령탑 시절 히딩크 감독. [사진=뉴스핌 DB]

◆'오대영' 불명예 히딩크의 화려한 변신

프랑스에서 차범근에게 평생의 상처를 안긴 네덜란드 사령탑은 바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한국을 자근자근 밟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네덜란드는 최종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년여 후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과 인연을 맺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히딩크 영입설이 나돌 때 차범근이 공개 지지했다는 점이다.

허정무 박항서 감독을 거쳐 2001년 1월 취임한 히딩크의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듬해 한일 월드컵을 대비해 양국에서 공동 개최한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 체코와 원정 평가전에서 다시 0-5로 대패했다. 첫 경질설이 나왔을 때 히딩크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정몽준 축구협회장은 이번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히딩크는 이미 검증된 감독이라는 평가였다. 국민 여론도 경질과 옹호론으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히딩크는 2002년 들어서도 우루과이와 평가전 패배에 이어 북중미 골드컵에서 미국과 캐나다에 연패했고, 최약체 쿠바와도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시 경질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진득한 기다림이 결실을 본 것일까. 3월 이후 한국은 6차례 평가전에서 2승 4무을 기록하며 무패 행진을 벌였다. 마지막 프랑스와 평가전에선 2-3으로 선전했다.

마침내 한국은 한일 월드컵에서 홈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 신화를 썼다. 히딩크는 한국의 국민 영웅이 됐다. 월드컵 연속 4강 감독이 된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가 PSV 에인트호번에서 박지성 이영표를 영입했고, 4시즌 동안 3번이나 리그 우승컵을 안았다. 그리고 2006년 대회에선 호주를 16강에 진출시켰고, 유로 2008에선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놨다. 2009년엔 잉글랜드 첼시 임시 감독으로 FA컵 우승을 따냈다.

1998년 4강 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야인으로 전락해가던 그는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세계적인 명장이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월드컵 4강이 초래한 FC 대한민국 감독 수난사

한일 월드컵 4강은 온 국민에겐 축복이었지만, 축구인들에겐 재앙이었다. 축구협회는 이후 주구장창 외국인 감독만 모셔왔다. 그렇다고 4강 신화가 쉽게 재현될 리가 있나. 국민 눈높이는 하늘 꼭대기에 있는데,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대표팀 전력은 그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은 각각 1년 2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본프레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짓고도 해임됐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전에서 사상 최초로 원정 월드컵 승리를 따냈지만 조 3위(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이 무산되자 8개월 만에 경질됐다. 세 감독 모두 재임 기간 승률은 히딩크보다 높았다. 이어 핌 베어백 감독은 1년 11개월 만에 사퇴했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KFA]

2008년 들어 허정무가 두 번째로 지휘봉을 잡으면서 국내 사령탑 시대가 복원됐다. 허정무는 2년 6개월이나 장수하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최초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재임 기간 성적이 22승 14무 8패였던 그는 이후 축구협회 부회장과 프로연맹 부총재를 역임했다.

반면 2013년 6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는 이듬해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 2패로 탈락하며 한동안 차범근과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 친분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다는 비난이 나왔고, 그는 떠밀리듯 미국으로 떠났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사령탑 신태용 감독도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패해 비슷한 위기에 처했지만, 3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에 2-0으로 승리하며 극적으로 회생했다. 이후 그가 인도네시아 사령탑으로 승승장구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KFA]

한국 대표팀은 신태용에 이어 파울로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벤투는 2018년 8월부터 4년 4개월간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 됐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그의 재임 기간 한국은 57위였던 랭킹을 32계단이나 끌어올렸다.

그러나 다음 주자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초부터 재택근무 논란을 일으키더니 첫 5경기에서 역대 최장기간 무승 사령탑의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이후 13경기 무패 행진을 벌였지만, 지난 2월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패배하고 짐을 쌌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의 내분이 알려지기도 했다.

◆감독들의 무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축구협회는 2월 클린스만을 해임한 뒤 5개월째 차기 사령탑을 찾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이 든 성배'이자 '파리 목숨'으로 악명 높은 한국 사령탑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사실 기자가 장황하게 쓴 앞의 사례에 모든 답이 담겨 있다. 한국 대표팀은 1948년 5월 박정휘 초대 감독 취임 이후 76년간 74번이나 사령탑이 바뀌었다. 10명의 대행 체제와 잦은 감독 공백 기간을 빼면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밑으로 쑥 내려간다.

2월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중도 해임을 발표하고 있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뉴스핌 DB]

반면 축구협회장은 정몽준 전 회장이 1993년부터 2009년까지 4회 연임했고, 정몽규 현 회장이 2013년부터 3회 연임 중이다. 중간에 경기인 출신인 조중연 전 회장(2009~2013년)이 사실상 위탁 경영을 했으니 최근 31년간 현대가의 두 수장이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감독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지만 회장은 영원한 곳이 축구협회다. 경기에 진 사령탑은 곧바로 무능하면서 나쁜 감독으로 낙인찍히고, 여론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 되지만 말이다.

대표팀 실력에 맞지 않는 국민 눈높이도 문제다. 공은 둥글고, 승부의 세계에선 이변이 속출한다. 한국이 아시아의 최약체 팀에게 지는 게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

한두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그야말로 초보의 판단이다. 국민 여론을 앞장서서 막아주는 게 회장의 역할이다. 이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수장이 있을 때 조직은 제대로 돌아간다. 정몽규 회장은 지금이라도 양복 안 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녀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지도자가 지원할 것이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하다. 황선홍 23세 이하 올림픽팀 감독과 김도훈 전 울산 감독은 최근 2개월씩 임시 감독을 맡았다. 황선홍은 과중한 업무 탓인지 신태용의 인도네시아에 일격을 맞고 파리 올림픽 진출이 좌절되면서 대표팀도 같이 내려놓는 치명상을 입었다.

바로 이 방법이다. 해임하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는 대행 체제를 앞으로도 쭉 유지하는 것이다. 그동안 히딩크, 허정무, 벤투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 임시 감독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하는 말이다.

zangpab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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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성과급 400%+1270만원' 잠정합의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현대자동차 노사가 장기간 이어진 교섭과 파업 끝에 올해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노사는 피지컬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에 공동 대응하고, 2028년까지 기술직 5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 6월 18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 상견례를 했다. [사진=현대차] 현대차 노사는 25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열린 16차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최영일 현대차 대표이사와 이종철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장 등 노사 교섭대표가 참석했다. 상견례 이후 111일 만이다. 올해 교섭은 7월 이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장기간 진통을 겪었다. 파업에 따른 차량 생산 차질과 직원 임금 손실이 발생했고, 부품 협력사의 경영 부담도 커졌다. 노사는 추가 피해를 막고 하반기 생산과 신차 출시 일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파업 여파를 조속히 수습하고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번 합의에는 임금과 근로조건뿐 아니라 미래 산업 전환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노사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이 기업 경쟁력 확보에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신사업과 신기술 추진 경과를 노조와 투명하게 공유하고, 노사는 미래 산업 전환 과정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변화 대응력과 생산성, 제조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한다. 기술직 신규 채용도 진행한다. 노사는 2027년 하반기 핵심 직무를 중심으로 기술직 200명을 채용하고, 2028년에는 300명을 추가로 뽑기로 했다. 현대차는 국내 공장 재편에 따라 기존 1공장과 42라인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른 대규모 인력 배치 전환이 예정돼 있지만, 노사는 고용 창출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신규 채용에 합의했다. 임금과 성과급은 기본급 10만원 인상과 경영성과금 400%+1270만원, 현대차 주식 15주, 해시포인트 50만원 지급 등으로 구성됐다. 기본급 인상분에는 호봉승급분이 포함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장기간의 교섭 진통과 파업으로 주주와 고객, 부품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하반기 생산과 신차 출시에 총력을 다해 고객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2026-08-2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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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희소성 쇼크 몰려온다 *자금 풍요의 시대가 저물고 자금쟁탈의 시대가 도래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던 주체들의 돈줄기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늘어지고 있다. 그 반대편에선 천문학적 부채를 안고 있는 주요국 정부들의 재정 차입 수요와 인공지능(AI) 기술혁명의 물결에 올라타려는 기업들의 투자 붐으로, 민·관의 자금조달이 봇물을 이룬다. 인플레이션 유령을 떨치지 못한 중앙은행들은 참전을 꺼리고 있다. 다음 ①~⑤편에서는 '과잉저축 시대'의 종언과 '대(大)차입 시대로 전환'을 불러온 동인과 이것이 자산시장에 갖는 함의를 짚어본다. ⑥~⑨편은 미래 매출과 수익을 담보로 자금조달 각축전을 벌이는 AI업계의 최근 동향과 이들의 부채 폭식이 초래할 금융 측면의 위험, 그 위험 너머의 기회를 살피기로 한다.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저축 과잉(Saving Glut)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본 희소성(Capital Scarcity)의 시대가 본격화됐다. 골드만 삭스를 포함한 월가의 공룡 투자은행(IB)은 기업부터 정부까지 자금 수요가 폭증하는 반면 돈줄이 말라 들어가면서 기간 프리미엄의 구조적 상승과 채권 자경단의 빈번한 출몰이 뉴 노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중국의 과잉 저축과 IT 대기업의 자금력, 여기에 일본의 초저금리가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 물량을 흡수하면서 금리를 누르고 자산시장의 버블을 부추겼던 패턴이 깨졌다는 얘기다. 무위험 자산으로 통했던 미국 국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하면서 자본 효율성이 낮은 기업이나 부채 규모가 큰 정부가 시장의 냉정한 심판에 직면하게 됐고, 저금리를 지렛대 삼은 자산 버블을 뒤로 하고 높은 레벨의 자본 비용을 전제로 한 새로운 투자 방정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데 월가 구루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골드만 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 레버리지 청산과 미 국채 금리 급등, 호르무즈 해협 분쟁 등 2026년 여름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든 세 가지 변수가 일회성 악재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여년간 지속된 과잉 저축 시대가 끝나고 자본 희소성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음이라는 얘기다. AI 레버리지 투자로 고수익률을 올렸던 헤지펀드가 7월 반도체 지수 폭락으로 160억달러 규모의 포지션을 시타델(Citadel)에 전량 매각한 사실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6차례 금리 인하에도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5.27%까지 뛴 점, 그리고 미국-이란 갈등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 미국 전략석유비축(SPR) 규모가 40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20년간 저금리를 떠받쳤던 대전제가 무너진 데 따른 결과라는 얘기다. 저축 과잉 시대 종료와 자본 희소성 시대 개막 [AI 일러스트=황숙혜 기자] 해외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이 34% 선에서 24% 아래로 떨어진 것은 자금 공급의 축소를 의미하고, 연간 8000억달러 이상 AI 인프라 구축과 리쇼어링, 각국 방위비 증액, 여기에 국채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수요까지 자금 수요는 폭발적이다. 자금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자본의 가격에 해당하는 실질 금리, 즉 기간 프리미엄이 구조적인 상승세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골드만 삭스는 경고한다.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과 국채시장, 원유시장의 유동성이 동시에 막히는 이른바 '유동성 트리플 킬(Liquidity Triple-Kill)로 인해 변동성 상승이 일상화되는 '고변동성 사이클(High Volatility Cycle)에 진입했다고 보고서는 판단한다. 골드만 삭스가 제시한 '유동성 트리플 킬'은 주식과 채권, 원유를 포함한 실물 자산 시장의 유동성이 한 시점에 동시에 막히면서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는 유동성 경색을 의미한다. 실제로 높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AI 테마에 베팅했던 헤지펀드가 지수 폭락으로 담보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무차별 매도를 강행, 주가 하락과 강제 청산, 추가 급락의 악순환을 일으켰다. 채권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연간 1조달러를 웃도는 이자 비용과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달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지만 해외 중앙은행과 연기금의 매수는 위축되는 실정이다. 미 재무부가 시장에서 막대한 현금을 흡수하면서 빅테크를 포함한 기업들 자금줄이 바닥을 드러냈고, 장기물을 중심으로 금리 역주행이 벌어졌다. 설상가상, 호르무즈 해협 차단으로 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을 막아주던 미국 전략비축유가 40년래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유가 변동성을 완충해 줄 실물 유동성 버퍼도 거의 소멸했다. 골드만 삭스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4% 아래로 복귀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연준의 손을 벗어난 문제라고 주장한다. 원유시장만 보더라도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 프리미엄이 일회성 충격에서 지속적인 할인 요인으로 전환했고, 원유 변동성지수(OVX)와 뉴욕증시의 공포지수(VIX) 간의 거대한 격차가 단기간에 줄어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2026년 여름을 기점으로 금융시장이 마침내 자본 희소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프리미엄을 지불하기 시작했고, AI 레버리지 청산과 미 국채 금리 급등, 호르무즈 분쟁이라는 세 가지 힘은 거대한 서사의 세 가지 단면일 뿐 이면에 깔린 구조적 동인들은 이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골드만 삭스는 강조한다.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 [자료=블룸버그] 저금리와 저물가,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과거의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장기 국채를 중심으로 고금리 고착화와 자본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인한 기업 양극화, 채권 자경단의 지배력 강화, 자산시장 변동성의 일상화가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등장했다는 것. 월가의 황제로 통하는 제이미 다이먼 JP 모간 최고경영자(CEO)의 경고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지난 5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월가가 과잉 저축의 시대를 뒤로 하고 자본 희소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자료=블룸버그] 저축 부족과 대출 수요 폭발로 시장 금리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 그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국채 발행과 이자 부담, 공급망 재편과 친환경 전환에 들어가는 거대한 인프라 자금, AI 및 국방비 지출 급증 등 세 가지를 '자금 폭식'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5.27%까지 오르며 2007년 이후 1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2년물 수익률도 상승 흐름을 지속, 시장이 정부의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적극 반영하는 가운데 다이먼은 기업 신용 시장에 닥칠 '이중 고통'을 경고했다. 국채시장 뿐 아니라 회사채와 신용시장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모든 회사채의 이자율 벤치마크가 올랐고, 기업 부도 위험 재평가로 스프레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기업들이 만기 연장에 나서면서 과거보다 높은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 신용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누적, 차환 대란이 터질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밖에 월가의 여러 전문가들도 흡사한 의견을 제시했다. 씨티그룹의 매크로 전략가 짐 맥코믹은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면서 채권 트레이더들이 30년물 수익률의 핵심 목표치로 5.5%를 겨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TS 롬바드의 스티븐 블리츠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미국 10년물 수익률이 6%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국채 장기 약세장이 이제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차환 압박이 누적되는 가운데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가 고착되면서 채권과 신용시장이 앞으로 보다 가혹한 시험대를 직면하게 될 가능성에 월가는 무게를 둔다. 시장 전문가들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종료되고 자본 희소성과 고금리가 정착되는 새로운 국면에서는 과거처럼 연준의 금리 인하만 바라보고 주가 밸류에이션이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AI 레버리지 청산에서 보듯 악재가 터지거나 유동성 경색이 발생할 때 시장을 받쳐줄 '무제한 자금'이 실종됐고, 증시 전반의 변동성 상승과 재무 건전성에 따른 기업들의 극단적 양극화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기대와 소문에 기대 오르는 주식보다 잉여현금흐름(FCF)과 실적이 우량한 종목으로 투자 영역을 좁히고, 인컴 및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shhwang@newspim.com 2026-08-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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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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