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게임즈 소송서 앱시장 독점 인정 안 돼
경제권 고안과 경쟁제한 부당성 경계 모호
애플 5가지 사안 중 3가지는 미리 해결 나서
5년 준비서 논리만 6번 변경, 구실 찾기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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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무부가 주장한 애플의 5가지 대죄 ①대립 쟁점>에서 이어짐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 판례상 독점이 인정되려면 60% 정도의 점유율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점유율을 산정할 때 '분모'에 해당하는 대상 시장을 명확히 획정해야 하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60%라고 해도 그 수치가 타사의 신규 진입이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의 수치인지, 소비자가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숫자인지를 소명해야 한다. 미국 내 고성능 스마트폰 시장 범위를 획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메릭 갈랜드 미국 법무장관(좌)과 조너선 켄트 법무부 반독점국장 [사진=블룸버그통신] |
앞서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 개발사 미국 에픽게임즈와 소송에서는 애플의 독점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다. 비록 에픽게임즈는 애플에 대해 독점 기업으로 주장하면서 그 시장을 앱 시장으로 거론했지만 앱 시장이라는 것이 애플의 아이폰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관련 판례는 시사점이 있어 보인다. 코넬대학교이 조지 헤이 교수는 애플이 독점 상태에 있다고 해도 합법적으로 독점을 달성한 것이라면 법무부의 설득력은 희석된다고 봤다.
⒝경쟁제한 행위의 부당성 역시 입증이 쉽지 않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독자적인 경제권을 구축하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상의 고안이기도 하다. 이런 정당한 고안과 부당한 행위의 경계선을 긋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애플도 이점을 방어 논리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경제권을 개방하면] HW·SW·서비스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이 애플에 기대하는 종류의 기술을 설계할 능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등 HW와 SW, 서비스를 긴밀하게 통합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덕분에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하고 보안과 프라이버시는 강화해 안드로이드 계열의 스마트폰과는 차별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법무부의 지적에 따라 경제권을 개방하게 되면 보안이나 프라이버시 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사용자 경험도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애플은 자사만의 차별화된 가치, 즉 '애플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법무부의 고전을 예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애플이 문제 시 된 5가지 사안 중 3가지에 대해 제소되기 전에 미리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법무부가 내세운 쟁점 대부분이 옛것이 돼 버린 셈이다. 애플은 작년 메시지 서비스의 업계 표준인 RCS에 대응해 기종과 관계없이 동영상 송수신 등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또 클라우드 기반의 게임 앱 배포 제한에 대해서도 올해 1월 폐지를 선언했다. 아울러 NFC 액세스 제한에 대해서는 관련 기술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를 외부 기업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전환은 유럽에서 시행한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법무부가 내세운 쟁점 대부분이 낡은 것이 된 이유는 그동안 미국 빅테크의 독점적이고 과점적인 성격을 둘러싸고 엄격한 평가를 해온 유럽에서 DMA(디지털시장법) 등의 규제가 선행됐고 애플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법무부의 관련 조사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조사는 5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애플에 의하면 조사 과정에서 최소 6차례의 소송 근거가 되는 법리 변경이 이뤄졌다고 한다. 법무부는 장기간 소송을 준비했음에도 결정적인 공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법무부와 함께 반독점법 집행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대형 기술기업 대상 소송에서 계속 패소하면서 '세금 낭비'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소송에 나서는 것은 애플을 비롯한 대형 기술기업이 다루는 디지털 기술이라는 것이 국가가 담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공적이고 기초적인 인프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제품과 서비스 설계에 대한 결정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의 법과 규칙이 됐다. 그런 법과 규칙을 정하는 것은 국가의 일인데도 말이다.
소송전에서의 애플의 유리한 입지가 예상된다고 해도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피해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애플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부문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최근에는 10년 동안 개발을 추진해왔던 전기차에서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8년부터 시작돼 10년 넘게 소요된 법무부 소송 대응에 몰두하는 동안 모바일용 운영체제 개발이 늦어지면서 부진기를 맞았던 때를 떠올리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에버코어ISI의 아미트 다르야나니 애널리스트는 "초기 소송이 결론나기까지 2~3년이 걸릴 것"이라며 "그 뒤 항소 과정에 약 1년이 추가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기존 법률로는 애플의 독점 상태를 주장하기에는 매우 어렵다"며 "의미있는 반독점 조치가 나오려면 새로운 입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상급심으로 갈수록 비즈니스 친화적인 판결이 나올 것"이라며 "현 대법원이 가장 우호적일 것"이라고 했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약 3~4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정치권의 행동이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그래도 법무부의 승기는 크지 않아 보인다는 주장인 셈이다.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