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배상 판결 이어지는데 재단 기금은 바닥
정부, 재원 마련 방안 '민간의 자발적 기여' 고수
'물컵 나머지 절반' 채울 일본의 참여 '기대 난망'
국내 강제동원 수혜기업 참여 '여건 조성'이 관건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지난해 3월부터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으로 추진해온 '제3자 변제' 해법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속속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피고기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재원이 고갈되고 재원을 확충할 방안도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더 이상 제3자 변제 해법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니오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5일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이 일본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에 따라 후지코시는 피해자 23명에게 각각 8000만원~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결국 이를 대신해 3자변제를 해야 할 재단이 부담해야할 금액은 이날 판결만으로 21억원 이상이 늘어났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2023.04.14 pangbin@newspim.com |
정부는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하면서 재단을 통해 모든 승소 원고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날 판결로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승소한 피해자는 모두 50명이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지연 이자를 뻬고도 40억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고등법원과 1심에 계류중인 소송이 60여건에 이른다. 이 소송도 모두 피해자 승소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재단이 현재 보유중인 현금은 15억원 정도여서 재원을 추가로 마련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제3자변제가 불가능해진다.
재단에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낸 기업은 지난해 3월 40억을 출연한 포스코가 사실상 유일하다. 당시 포스코는 "과거 재단에 100억원을 출연하겠다는 약정서에 근거해 남은 40억원을 정부의 발표 취지에 맞게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는 일본 기업과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이 문제가 한국 내에서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 일본이 움직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재단에 국고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일본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어서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제3자 변제를 결정할때 강제동원으로 수혜를 받은 국내기업의 자발적 출연을 재원으로 삼도록 한 것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모습이라도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국고 지원을 하게되면 이같은 취지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재단이 기대를 걸고 있는 재원 마련 방안은 16개 국내 강제동원 수혜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 이미지 손상과 배임 논란 등을 의식해 참여를 꺼리고 있다.
제3자 변제 방안을 적극 지지했던 한 민간 전문가는 "국내 수혜기업이 동참하는 것 외에 다른 재원 마련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다"면서 "하지만 이들에게 출연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참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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