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별로 1~2년 파견…'요양기간'으로 인식
기재부 등 특정부처가 총괄하는 방식 한계
전문가 "위원장인 대통령이 회의 참석해야"
[세종=뉴스핌] 신도경 이정아 기자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뚜렷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각에서 '폐지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예산과 재정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특정부처가 총괄하는 방식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만큼 저출산위 자체에 힘을 더 실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18일 저출산위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인구 정책의 컨트럴타워인 저출산위가 예산 편성‧집행 권한 부재와 의사결정 등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구조 개혁이 시급한 시기에 저출산·고령화 정책 추진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위 민간 위원과 전문가 등은 저출산위의 기능을 위해 의사 결정 방식을 바꾸고 대통령실과 저출산위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제역할 못하는 저출산위…예산‧의사결정 등 구조적 한계 '지적'
저출산위는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심의하는 컨트롤타워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다.
위원회는 2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기획재정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장관이 참여하고 저출산·고령화 관련 전문가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한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진=EBS] |
저출산위의 기능이 부재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저출산위는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기능이 없다. 정책 추진에 있어 예산은 필수다. 저고위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해도 예산 편성이 되지 않으면 정책은 무산된다.
저출산위 민간위원인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저출산위가 예산을 총괄하거나 조정하는 기능은 없다"며 "부처마다 적정하다고 평가하는 예산이 다를 수 있고 조율이 필요한데 조율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예산 배정을 직접 하거나 부처에 요구하는 권한이 있으면 추진력이 생기지 않을 않겠느냐"며 "계속 제기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제 저출산위가 제시한 '육아휴직급여 상향' 정책은 무산됐다. 육아휴직급여 상향 정책은 유급 육아휴직 기간의 통상 임금의 상한을 월 150만원에서 월 200만원까지 올리는 정책이다.
한국은 유급 육아휴직 기간 통상임금의 80%(상한 월 150만원, 하한 월 70만원)이 지원되는데 상한액이 낮아 소득대체율이 40%를 밑돈다. 월 3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월급이 반토막 난다는 뜻이다.
반면 해외 주요국별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은 노르웨이 774만원, 아이슬란드 585만원, 스웨덴 410만원, 일본 317만원, 독일 244만원이다. 저고위는 아이를 낳는 부모에게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하려 했으나 기재부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안건이 미확정됐다.
[자료=고용노동부] 2023.12.18 jsh@newspim.com |
'파견 공무원'의 짧은 파견 기간도 문제다. 각 부처는 과장급 등 공무원을 저출산위에 파견한다. 통상 1년~2년 후 원래 부처로 돌아가 공무원들 사이에선 '요양 기간'으로 불린다.
저출산위 민간위원인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위원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평가하고 고생한 만큼 인사에 대해 배려해야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며 "파견 갔다 오면 오히려 쉬고 왔다며 인사에서 배려하지 않아 업무에 대한 독려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 결정 구조 방식이다. 현재 저출산위의 의사 결정 구조는 부처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저출산위 민간 위원은 심의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민간위원인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개혁이 안 되는 것은 책임 소재 때문"이라며 "공무원은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다 피해 보는 사례를 봤기 때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고위가 정책을 결정하면 각 부처가 집행하는 구조가 돼야 하고 책임은 저고위가 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 민간위원, 기재부 저출산위 총괄 의견 반대…"대통령실과 저출산위 소통 넓혀야"
저출산위 기능 부재에 예산 집행 권한을 갖은 기재부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기재부는 과거 인구위기대응 TF를 주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출산위 민간 위원은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재부는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3.12.19 photo@newspim.com |
김 교수는 "예산 집행 권한만 보고 기재부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기재부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며 반박했다. 그는 "기재부는 국민 세금으로 모은 예산을 아껴 쓰기 위한 부처라 저출산위를 맡았다고 예산을 투자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했다.
허 원장도 "정책이 잘 될까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 운영 원리에도 안 맞는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가 국정관리 체계를 어떻게 가져오고 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최근 인구 정책이 저출산과 일가정양립에 치우치다 보니 다른 분야들은 배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논의는 더딘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부처 특정 사업으로 가면 안되고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인구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이 준비돼야 하는 상황인데 그 역할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이기 때문에 대통령 관심이 관건"이라고 했다.
허 원장은 "대통령이 참석하면 좀 더 활발한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국정 분야는 경제, 외교 다양한 분야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매번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며 "대통령실과 저출산위 소통이 잦아지면 정책 추진에 속도가 붙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