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기 기자 = 우리나라에서 기술탈취 피해를 본 중소기업 가운데 절반이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3년간 특허 출원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기술탈취 근절 위한 정책 수요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 늘어나는 中企 기술탈취 피해 규모...하지만 절반이 "손 놓고 있다"
[사진=중기중앙회] |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 10곳 중 1곳 이상이 기술탈취 피해 경험이 있고, 그 중에서 43.8%는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기술탈취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78.6%로 가장 많았고, 21.4%는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라고 답했다.
최근 나온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3 중소기업 기술 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가 발생했거나 이전에 발생한 피해를 인지한 사례는 총 18건, 피해액은 197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이 기술 탈취를 경험한 이후 내부적으로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8.3%, 외부적으로 별도 조치를 안 한 비율은 33.3%에 달했다. 해외에서 기술 침해를 당한 경험 이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50.0%로 더 높았다.
해외 기반의 중소기업 둘 중 하나, 국내 기반의 중소기업 셋 중 하나는 기술 탈취 피해를 인지했음에도 손을 놓고 당했던 셈이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은 인력이나 자금이 현격히 부족한 탓에 대기업이 마음먹고 기술을 탈취하려고 하면 이를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치를 취한 경우에도 피해 복구의 정도를 살펴보면 '다소 회복할 수 있었다'가 38.9%로 가장 많았지만 '전혀 회복할 수 없었다'와 '거의 회복할 수 없었다'를 합치면 55.6%의 기업이 '회복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 중기중앙회의 조사결과다.
중기중앙회는 "기술을 탈취당해도 피해입증이 어려워 조치를 취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아 실제 피해규모는 통계수치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 모두 기술탈취 피해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민사소송 시 행정기관에 대한 자료제출명령 도입 등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이 앞장서고 정부-국회 기술탈취 문제 해결에 힘모아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글로벌 창업대국을 위한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핌 DB] |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면서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기술탈취 문제와 관련해 "기술탈취는 중범죄"라며 "단호하게 사법 처리해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고 보복당하지 않게끔 국가가 지켜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에 소개된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술탈취 피해를 입증하는 것(78.6%)이다.
근본적으로 특허 심판·소송에서 침해 사실과 손해액 산정에 대한 증거의 대부분을 침해자인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어 증거 수집의 어려움으로 침해 입증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선 국회에서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기술 탈취를 예방하기 위해 현행 3배인 손해배상액 상한을 5∼10배로 늘리는 법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또 기술탈취와 관련된 내용-증거를 상호공개하도록 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마련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특허 침해의 특성상 침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결국 처벌이 솜방망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맹점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침해를 양산하는 꼴"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도 최근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조정·조사 등 분쟁 해결 기능을 강화하고, 원스톱 지식재산 분쟁해결 지원 기구인 산업재산분쟁종합지원센터 설립 등 기술 탈취 피해기업 보호를 위한 '부정경쟁방지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련 법률' 및 '발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부정경쟁 행위 행정조사에 대한 시정명령 규정을 마련해 아이디어 탈취 등 행위 적발 시 시정 권고는 물론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불이행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실효적인 권리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한무경 의원측은 "기술탈취는 신속한 대응과 그 구제가 중요하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원스톱 분쟁해결 체계'를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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