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성 차관급 이례적 담화 발표
"과거 붙잡혀선 미래 전진 없다"
납치 문제 '전제 조건화'엔 불만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은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나 북일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언급에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박상길 외무성 부상은 담화에서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 두 나라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2년 9월17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사진=뉴스핌 자료사진] |
박 부상은 담화에서 "우리는 기시다 수상(총리)이 집권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제조건 없는 일조 수뇌회담'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는데 대하여 알고 있지만 그가 이를 통하여 실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며 "21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에 걸치는 조일 수뇌상봉과 회담이 진행되었지만 어째서 두 나라 관계가 악화일로만을 걷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일본은 2002년 9월과 2004년 5월 두 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만나 국교정상화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일본 측은 17명의 납북자 가운데 2002년 9월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일시 귀환 형태로 데리고 온 5명을 제외한 12명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나머지 납북 일본인은 8명 뿐이며 모두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4명의 납북자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박 부상은 "지금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수뇌회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그 무슨 문제해결을 운운하며 조일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무엇을 요구하려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만일 다른 대안과 역사를 바꾸어볼 용단이 없이 선행한 정권들의 방식을 가지고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해결해보려고 시도해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산이고 괜한 시간낭비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이 2017년 11월 6일 일본을 방문해, 납치피해자 가족모임과 면담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박 부상은 "지나간 과거를 한사코 붙들고 있어 가지고는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27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인 납북자 귀국 촉구 집회에 참석해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기시다 총리의 행사 관련 언급에 외무성 차관급 인사를 내세운 공식 담화까지 발표한 건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기시다 총리나 일본 정부에 대해 별다른 비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북한이 납치 일본인 문제 등과 관련해 일본 측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기시다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제안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입장을 밝힌 건 주목되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