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불한당'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고 설경구를 '지천명 아이돌'의 반열에 올려놓은 감독 변성현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통해 가장 좋아했던 배우 전도연과 호흡을 맞췄다.
변성현 감독은 7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길복순' 공개 기념 인터뷰에서 최근 일련의 논란에 휩싸인 영화 내용과 전도연, 설경구 등 최고의 배우들과 호흡하게 된 소감을 얘기했다. 논란도 있었지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초청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비영어권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만듦새를 또 한번 인정받았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2023.04.07 jyyang@newspim.com |
"1위 소식을 어제 들었어요. 약간의 논란이 있어서 마음이 계속 안좋은 상태로 있다가 안도감이 크게 들었죠. 전 영화, 전전 영화가 흥행적으로 잘 안 돼서 부담감이 있었는데 굉장히 바랐던 결과예요. 흥행하면 굉장히 신나겠다고 상상했었는데, 솔직히 신나기보다 안도감이 컸어요. 사실 2위인 '머더 미스터리'가 2019년에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영화라고 해서 1위할 거라고 예상을 못했거든요."
'길복순' 영화 속 다른 지명이 나라와 쓰인 것과 달리 전라-순천으로 표기된 봉투 때문에 갑작스레 불거진 일베 논란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 감독은 "계속 잠을 못잤다"면서 움츠러든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스스로 당당히, 그런 성향이 절대 아니라고 어디서든 밝힐 수 있다는 점이다.
"순천 이슈도 감독이 그 컷을 일일이 컨펌할 순 없어요. 듣기로는 감독이 한 2만 가지 컨펌을 한다고 해요. 단순히 C급킬러라서 해외 작품은 안하니까, 이런 생각에 그렇게 적힌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이 쓰인 것까지 제가 컨펌하지 않았고, 연출부 친구가 너무 미안해해서 연락도 못하고 있대요. 의도를 했다면 모를까, 의도하지 않은 논란은 사실 예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잖아요. 태어나서 그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도 없고 그런 성향과 거리가 멀어서 전혀 예상 못했어요. 앞으로 더 신경써야한다고 생각해도 의도가 없는데 안될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요."
변 감독은 마음 고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법적대응 같은 단어에는 그리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만 별점을 주는 분들이 오해가 있으시다면 그런 걸 없애주시면 좋겠다"고 바랐다. 존경해 마지않는 전도연과 드디어 만나 그를 위한 액션 영화를 만들었는데, 숱한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 스태프들이 오해로 인해 저평가 되는 것은 힘든 마음을 털어놨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2023.04.07 jyyang@newspim.com |
"영화가 재미없으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죠. 하지만 오해로 괜한 선입견이 생겨서 영화가 저평가받는다면 같이 준비한 분들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앞서 '킹메이커'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면 '길복순'은 전도연 배우에서 시작된 이야기라 그냥 계속 아이러니를 가져가요. 제가 많이 느낀 건 엄마와 배우 사이의 간극이었거든요. 다 아이러니면 어떻게 살아야하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내 윤리와 소신은 뭘까를 생각했어요. 스스로 물었을 때 떳떳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재영이가 '떳떳하고 싶었어, 나에게'라고 말한 게 길복순의 '쪽팔리잖아요, 나에게'로 변주되거든요."
변성현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전도연이란 배우를 두고, 그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장르를 함께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 길복순은 전도연의 삶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점을 담아 완성했다. 그는 "엄마가 딸에게 몇 번 문 열어주는 영화다라고 생각했다"면서 영화에서 다룬 '모녀관계'를 설명했다.
"모녀사이에 벽이 있는 게 서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어서예요. 복순이의 비밀은 진짜 얘기하면 안되는 것이어야 했고 재영이의 비밀은 얘기는 해도 되는, 사회적인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밀이었죠. 엄마가 절대 밝히지 못하는 비밀을 말했을 때 딸은 문을 열어주는데 그런 비밀도 아닌데 엄마는 못받아들이고 도망가요. 시나리오 자체가 도연 선배한테 착안한 점이 있어요. 세상 그렇게 당당한, 아무도 함부로 못하는 배우지만 우리랑 막 밥 먹고 술 먹다가 아이랑 통화할 때 쩔쩔매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게 재밌었고 그걸 제일 어려워하셨어요. 영화 너무 재밌게 얘기하다가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볼 때 그 진심이 느껴지면서 이런 얘길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남자 감독으로서 모녀관계를 현실적으로 담고 싶다고 해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도연에게 부탁해 딸과 대화하는 걸 직접 옆에서 보기도 하고, 대사의 일부는 전도연이 직접 감수를 봐주기도 했다. 변성현 감독은 이번 영화가 액션 영화의 장르를 띠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건 역시 아이러니로 가득한 모녀관계를 그려낸 데 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 [사진=넷플릭스] 2023.04.07 jyyang@newspim.com |
"사실 다시는 액션영화를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기술적으로도 생각할 게 많고 힘든데 배우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거의 모든 액션영화에선 주인공 캐릭터가 무명의 적들과 싸우는 신이 많아요. 이번엔 모든 상대가 캐릭터성이 있는 인물이길 원했거든요. 그렇다보니 다 배우들이 해야 했어요. 다들 액션에 특화된 분들은 아니어서 못할 짓이었죠. 감정연기는 부딪혀가면서 짜낼 수라도 있는데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어요. 맘에 들 때까지 찍을 수가 없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고, 배우들이 힘들어하면 저도 힘들어요. 액션 시나리오를 쓸 수는 있어도 연출은 이제 못할 것 같아요."
변성현 감독은 취향상 설명을 위한 장면과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평소의 작업 스타일을 얘기했다. '길복순'에서 어느 캐릭터의 전사가 생략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결과다.
"설명을 오히려 안하고 싶기도 했어요. 언젠가부터 지나치게 설명이 많아진 것 같고 그걸 보는게 조금 피곤해졌거든요.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위한 장면을 넣을 때가 있고 한국영화가 너무 친절하게 연출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을 타고난 건 아니어서 콘티 단계에서 고민이 많아요. 이렇게 하면 알아들을까, 이러면 너무 촌스럽다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죠. 제 영화에도 충분히 촌스러움이 있어요. 그래도 최대한 안촌스럽게 해보려고 노력하려 해요. 인물관계에서 유난히 멜로를 살리는 건 제 취향이에요. 그런 감정 때문에 직접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그런 감정이 깔려있고 전개에 영향을 주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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