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측 기부·사과 등 '호응' 조치와 피해자 설득 관건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한일관계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외교당국 간 협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으나 피해자 측의 수용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26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르면 이달 말 안에 서울에서 한일 외교국장급 협의를 열고 강제동원 배상 해법과 독도 영유권,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01.12 leehs@newspim.com |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질문에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의 차기 일정은 현재 조율 중에 있다"며 "정부는 조속한 현안 해결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교당국 간의 긴밀한 협의를 더욱 가속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일 외교국장급 협의는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데 이어 약 2주 만에 다시 추진되는 것으로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배상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제3자 변제'와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안을 공식화한 뒤 이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제시한 '제3자 변제'와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은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들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배상금 재원 조성은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 등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선 배상금 재원 조성에 참여할 경우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피고기업이 아닌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經團聯) 차원에서 재단에 대한 자발적 후원 등의 형태로 자금을 기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은 피고기업에 배상금 지급을 명령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일본 측은 해당 기업들이 직접 배상금 재원 마련에 참여할 경우 사실상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그간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또 일본 측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사항인 '사과'와 관련해서도 개별 기업의 사과가 아니라 일본 정부 차원에서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반성을 언급한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을 '계승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히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6일 한일 국장급 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일측 피고 기업의 기여 문제와 관련해 "한일 간에 인식차가 있다"면서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당국자는 강제징용 해법 발표 시기와 관련해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과 관련해 양국 간에 인식차가 있기 때문에 발표 시기를 예단할 수 없다"며 "긴밀하고 속도감 있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징용 해법이 발표되면 당연히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는 해제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을 열고 있다. 2023.01.12 leehs@newspim.com |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함은 물론, 배상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이 직접 배상금 지급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정부 배상안을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외교부에 항의서한까지 전달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측은 정부가 제시한 강제징용 해법안에 대해 "일본의 사죄배상은 빠졌고, 일본기업 대신 한국기업이 배상하는 졸속적·굴욕적 해법이었다"며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우려와 경고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요구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해법은 '제2의 위안부 합의'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