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독전'으로 560만 관객을 동원한 이해영 감독의 신작 '유령'이 일제 강점기를 다룬 '한국적 소재'와 전 세계에 통하는 영화적 약속, 장르성을 결합한 스타일리시 스파이 액션으로 거듭났다.
이해영 감독은 17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진행된 '유령' 개봉 인터뷰에서 수 년간 이어졌던 '일제강점기' 소재 영화에 힘입어 조금 더 과감하게 장르성에 집중했던 작업기를 들려줬다. 국내 관객들이 선호하는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해외 관객들을 위한 미쟝센과 장르적 볼 거리가 다양하다.
"이번 영화가 '독전'과 달리 보인다는 말씀이 감사해요. 어떤 분들은 그 영화를 '이해영이 이해영했다'면서 이번엔 '더더욱 이해영한 느낌'이라고도 하셨거든요. 어떤 뜻에서 그렇게 보시는 지는 알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감독같다고 하니까 좋아요. 가장 큰 칭찬같거든요. 늘 다르게 보이는 감독이라고 보이길 바라기도 하니까요."
누아르 장르 특성상 '독전'이 좀 남성적이고 거칠고 투박스런 느낌이었다면, '유령'은 그에 비해 한층 섬세해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해영 감독은 당시에 '장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유령'에서는 한층 여유롭게, 즐기면서 찍었다고 과정을 돌아봤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유령'의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2023.01.17 jyyang@newspim.com |
"'독전'은 스타일리시한 것, 미쟝센 이런 것들이 지향점 자체였어요. 이번엔 배경이 일제강점기라서 그게 목적일 순 없었죠. 캐릭터와 인물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그런 것들을 통해서 훨씬 더 캐릭터의 면면이 다 보였음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만들어서 최소한 진짜 하얗게 불태웠다 싶죠. 그래도 스스로한테 '잘했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요."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성 시가지를 구현한 세트와 CG, 인물들마다 돋보이는 색감의 의상, 잘 조형된 이미지들은 모두 배우들의 연기를 돕고자 한 감독의 설정이었다. 이 감독은 "과거에 남산 산기슭을 깎아내 지었던 조선신궁을 영화 속에서 잘 구현해 일제의 폭력적인 권력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각 역할에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결국 그 인물로 빚어낸 과정에도 주효했다.
"박해수 씨를 캐스팅하면서 언어 장벽을 완전히 압도할 정도의 연기력과 장악력으론 가능할 거란 생각을 했어요. 처음 보자마자 거의 입덕했고, 베팅했고 적중했죠. 영혼을 갈아넣은 노력과 괴물같은 성실함과 연기력으로 해내줘서 감사해요. 이하늬 씨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뿜어져 나오는 러블리함을 오히려 안으로 눌렀을 때의 연기를 보고 싶었죠. 큰 사람이 안으로 품는 느낌을요. 설경구 씨는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를 담당하기에 존재감이 큰 배우가 필요했어요. 가장 독보적인 분께 어렵게 부탁을 드렸죠. 박소담 씨는 앳된 얼굴임에도 에너지가 굉장히 침착하고 진중하고 목소리도 저음이고 무궁한 신뢰가 생기는 배우예요. 이번 영화에서도 훨훨 날아다니면서 보람과 기쁨을 저한테 안겨줬죠."
'경성학교'부터 '아가씨' '암살' '밀정' 등 그간 숱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한국 명작영화들을 뒤로하고, '유령'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독립운동 조직의 중심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특히나 서로 구해주려는 강렬한 의지가 돋보이는 영화로 때론 더없이 판타지적이고 뜻밖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유령'의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2023.01.17 jyyang@newspim.com |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어 보진 않았으면 해요. 그래도 보통 우리가 대의를 위한 희생을 얘기할 때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이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위계가 존재하죠. 그것이 개입되지 않는 이야기였음 했어요. 독립 운동을 한 모든 분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분들이라 '죽어야 할 때 죽기위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집중했어요. 제가 찾아보면서 느낀 감정은 찬란함이었거든요. 사실은 비극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장르적으로, 상업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죠. 그 찬란한 승리의 순간을 너무나 담고 싶었죠. 우리는 사실 알고 있어요. 그렇게 승리한 적이 없단 걸요. 잠시나마 우리가 바라던 건 이런 찬란한 승리가 아니었나 싶었고 영화에 간절히 담고 싶었어요."
이 감독이 언급한 '웰메이드 시대극' 영화들 덕분에 국내 관객들에게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는 익숙하고, 때론 흥행보증코드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같은 흐름은 오래되진 않았다. 비극적이고 가슴아픈 역사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해외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더욱 영화적인 장르성을 갖추는 게 이제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터부시되던 소재였어요. 누구도 감히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워했죠. 좋은 영화들이 성과를 거두면서 관객들과 뜨겁게 소통했기 때문에 편안한 감정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장르적이고 영화적으로 더 접근하겠단 결심을 저도 감히 할 수 있었고요. 듣기로는 시대물이나 역사 이야기는 해외 관객들에겐 본인들과는 전혀 상관없게 느껴져 관심이 덜하다고 해요. 아시아 쪽이야 유사한 경험들이 있지만요. 역사적 배경에 관심이 없는 외국 관객들에게도 잘 소통하고 다가갔음 좋겠다 하는 바람과 욕심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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