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안전진단 완화…분상제·재초환 이은 재건축 '3대 대못' 개선
서울시 '35층 룰' 폐지와 맞물려 재건축 추진 속도 빨라질 전망
고금리·매수심리 위축에 거래시장 활성화 한계
[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정부가 재건축 3대 대못으로 꼽히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되면서 내년 이후 불황기가 예고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새로운 활기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노원·목동·강동·송파 등의 30년 이상된 낡은 아파트가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며 여기에 1기 신도시까지 재건축에 동참하는 이른바 '대 재건축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돼서다. 이렇게 되면 건설업계에 있어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재건축 안전진단은 20년 이상 기간이 필요한 재건축 사업의 시작이란 점을 볼 때 당장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불황'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 많다. 더욱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5년전으로 되돌렸을 뿐 더 완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곧장 주택시장에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다. 이에 따라 높은 분양가, 미국발 고금리와 같은 외생변수가 먼저 해결돼야 주택시장도 '대 재건축 시대'에 따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이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발표된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합리화 방안'으로 인해 재건축사업 활성화에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합리화는 2018년 이후 위축된 아파트 재건축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줄 것"이라며 "이는 시장 침체기에 놓인 건설업계에 있어 새로운 활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앞으로 안전진단시 구조안전성 점수 비중은 현행 50%에서 30%로 낮춰진다. 주거환경·설비노후도 점수는 각각 30%로 높아진다.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한 조건부 재건축의 점수 범위는 축소되고 재건축 허용 대상을 확대한다. 이에 따라 재건축 안전진단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는 만큼 재건축 추진 단지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정비사업 승인권자인 서울시의 입장 전환도 '대 재건축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서울시는 약 10년간 고수해 온 3종 일반주거지역 아파트 '35층 룰'을 폐지했다. 아울러 시는 70~80년대 지정된 아파트 지구를 폐지하고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바꿀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층수나 용도지역이나 용적률 상향, 공공기여 비율 등에서 유연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와 맞물린 시너지가 극대화 돼 재건축 추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안전진단에 발목 잡힌 노원…규제 완화로 재건축 속도
2018년 3월 이후 개선되기 이전 안전진단을 완료한 46개 단지 가운데 재건축 판정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21개 단지는 조건부 재건축으로 판정받았고, 나머지 25곳은 재건축할 수 없는 유지 보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을 적용하면 46곳 중 12곳이 즉시 재건축이 가능하며 23개 단지는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그동안 번번이 안전진단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며 재건축 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돼온 노원구에서도 재건축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80년대 이후 지어진 아파트는 사실상 구조적으로 매우 튼튼한 편"이라며 "현행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에서는 '무너지기 직전'이 아니면 통과가 불가능한 만큼 이번 제도 개선으로 재건축 추진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내 2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 가운데 내년 1월 기준 30년 이상인 단지는 389곳이다. 기존 안전진단이 통과된 단지들은 제외한 수치다.
지역별로 보면 노원구가 79곳으로 가장 많았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 월계동 미미삼(미륭·미성·삼호3차)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미삼의 경우 입주연도가 1986년으로 35년뒤 넘어섰다.
이 외에도 ▲강남구 46곳 ▲도봉구 34곳 ▲송파구 23곳 ▲강서·양천구 22곳 ▲영등포구 20곳 ▲서초구 17곳 ▲동작구 13곳 ▲강동·광진구·구로구 12곳 ▲강북구 10곳 ▲성동구 9곳 ▲서대문구 8곳 ▲금천·은평구 7곳 ▲동대문·성북·관악구·중랑 6곳 ▲마포구 5곳 ▲중구 3곳 ▲종로·용산구 2곳 등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서울에서 입주 이후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42만6972가구에 달한다. 이는 전체 아파트 가구수 179만9935가구 중 23.7%에 해당하는 수치다.
노원구와 도봉구 등 일부 자치구는 30년 이상 아파트 비중이 50%를 넘는 것 분석된다. 노원구는 전체 16만1973가구 가운데 52%에 달하는 8만4279가구가 30년 이상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도봉구 역시 전체 6만4121가구 가운데 3만2804가구(51.2%)가 30년 이상 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강남구(37.1%)와 양천구(34.8%), 송파구(30.6%)의 노후화 주택 비중이 3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와 함께 재건축 3개 규제로 불려온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안으로 사업 추진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이번 방안에 따라 재건축 추진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고 안전진단을 신청하거나 통과하는 단지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도심의 주택 공급 기반이 마련되면서 수요자가 희망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 공급이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8일 국토교통부 기자실에서 열린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 브리핑에서 권혁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국토부] |
◆재건축 속도 빨라지지만…고금리·매수심리 위축에 거래시장 활성화 한계
업계는 일단 재건축시장이 '정상화'됐다는 점에서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지만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이 정비사업의 초기단계에 해당되고 고금리 여파로 매수세와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어 거래시장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합리화방안은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라며 "재건축 시장 활성화에 일정부분 영향은 주겠지만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주택시장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3대 대못이 어느정도 정상화 됐다고 하지만 재건축사업이 활성화 되려면 '경기'도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김덕례 실장은 "현재 우리 주택시장은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위축돼 있으며 금리인하가 선행되지 않으면 주택경기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더욱이 원자잿값 상승으로 무려 30% 가까이 분양가가 오른 점을 감안하면 사업이 추진되더라도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대를 모았던 둔촌주공 재건축아파트 '올림픽파크포레온' 마저 기대에 못미치는 청약성적을 거둔 것이 그 실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분양가는 청약 부진을 더 심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임병철 팀장은 "지난 8월 여의도 공장아파트가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데 이어 10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통과됐다"면서 "하지만 경기 불황과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한파로 아직 시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된다 하더라도 금리 인상,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의 영향으로 당장 재건축 단지의 집값이 반등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 외부요인 영향을 규제 완화로 상쇄시키기는 어렵지만 지난 정부에서 시행됐던 과도한 규제들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의 건설경기 침체를 막을 순 없더라도 향후 건설경기를 재건할 때 중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씨앗을 뿌린 것인데 지금은 (시장이) 겨울이라 씨앗을 아무리 뿌려도 발아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럴때일수록 고급기반을 만들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뉴타운 계획을 내놓은 후 20년이 지나며 서울시 노후 주거지 재정비가 상당히 이뤄진 것처럼 이번 정부의 재건축 촉진대책들도 서울의 도시계획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재건축 역시 시작부터 끝까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제 기반을 잡아놓으면 향후 20년 후에는 서울의 주택부족문제와 도시계획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례 실장도 "당장은 외생변수로 인해 주택시장이 부활하기 어렵겠지만 좀더 시차를 두고 생각한다면 이번 대책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