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명문으로 회자된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본거지가 되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자 직접 사과를 하고 나선 것인데 ▲사과의 주체 ▲사과의 이유 ▲향후 개선 방향을 담은 것에 더해 투병중이었던 아버지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의 일화로 공감대까지 형성한 완벽한 글이라는 것이다.
고홍주 정치부 기자 |
사실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이 회장이 직접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현장 의료진도 아니었고 병원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상에서 발표한 사과문의 효과는 확실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추후 정부와 수년간 과징금을 두고 정부와 다퉜고 실무자들은 늑장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적어도 대중들의 비판에서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반년은 조금 이상하다. 도무지 사과하는 일이 없다. '불찰이다', '유감이다' 정도의 말만 해도 수그러들 논란인데 그 쉬운 길을 마다한다.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 XX' 사건에서도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형사책임을 인정했다고 몰아갈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그에게 당장 수사를 받고 법적 책임을 지란 얘기가 아니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최소한의 도의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색안경을 끼고 싶지는 않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이상민 장관도 오랜 기간 형사사건을 다뤄와서 사과를 곧 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호·정재승의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에서는 사과를 '리더의 언어'로 규정한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패배자의 언어가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의 언어라는 것이다. 물론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1달 남았다. 부디 올해가 가기 전에 '쿨하게' 사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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