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이용·폐기 이력 관리...2026년부터 시행
재료 원산지·내구성·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 규제
EU, 배터리 뿐 아니라 모든 상품으로 확대 계획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배터리 공급망을 놓고 세계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유럽도 배터리 규제 문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으로 자국에서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면서 공급망 장악에 나섰다면, 유럽연합(EU)은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제도로 EU에 환경 규제에 부합하는 배터리만 거래가 가능하게 만든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는 배터리 소재 재활용에 방점을 둔 규제 법안의 법제화를 진행 중으로 연내 최종 발효될 예정으로 2026년 시행할 예정이다. EU는 배터리 재활용을 촉진해 자원의 절약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인 '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EU의 환경 규제에 부합하는 배터리만 EU 국가 내에서 거래되도록 할 방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2022.08.16 [사진=로이터 뉴스핌] |
'배터리 여권'은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배터리의 생애주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전자시스템이다. 세계 배터리 동맹(Global Battery Alliance·GBA)이 2020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EU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배터리 규제 초안을 만들어 지난 3월 유럽의회까지 통과했다.
EU 규제 대상은 용량 2kWh 이상의 산업용, 자동차용 배터리다. 재료 원산지와 탄소(온실가스) 배출량을 수치로 나타낸 지표인 탄소 발자국을 비롯해 ▲배터리 내구성 ▲배터리 용도 변경 및 재활용 이력 ▲재활용 이력 등을 '배터리 여권'에 기재해야 한다.
EU가 정한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도 충족해야 한다. 2025년까지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코발트와 구리, 납, 니켈의 90%, 리튬의 35% 이상의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 EU는 2030년까지 코발트·구리·납·니켈의 95%, 리튬의 75% 이상으로 목표를 상향할 방침이다.
EU의 규제 움직임에 독일과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도 제품 이력 데이터 축적을 통한 '디지털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EVMAM-TBRAT)'을 구축해 전기차 배터리의 재활용 책임·이행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배터리 재사용 분야 기업에 대해 배터리 정보 입력을 의무화해 배터리 이력 정보가 빠른 속도로 축적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BMW와 유미코어, 바스프 등 11개 기업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배터리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배터리 패스(Battery Pass)'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일본은 지난 4월 민간 주도의 배터리 공급망 협의회(BASC)가 EU 배터리 여권과 호환 가능한 '일본식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설계해 EU의 배터리 여권 제도 도입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국의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응 업계 간담회를 주재,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날 회의에는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 김동섭 SK하이닉스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방수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지동섭 SK온 사장, 이창한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운영위원장, 정순남 전지산업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관련 업계의 대표 및 관계자가 참석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2022.08.25 photo@newspim.com |
우리나라에는 현재 관련 플랫폼이 아직 없다. 지난 5일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를 전기차와 별도로 등록해 배터리 전 생애주기 이력을 공공데이터베이스에 담아 관리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 개정 추진 계획을 내놨다. 배터리 이력 관리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셈이지만 배터리 생산과 재활용을 아우르는 시스템 구축까진 시일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EU 배터리 여권으로 살펴본 이력 추적 플랫폼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역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제품에 대한 '디지털 상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디지털 이력 추적 시스템의 대상을 지속적해서 확대하는 추세다.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EU의 배터리 여권 제도를 예의주시하고, 각국의 배터리 여권 대응 동향을 벤치마킹해 한국식 배터리 이력 추적관리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하는 배터리 순환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폐배터리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EU 규제는 친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 중 하나로 착실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aaa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