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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애 화가 이중섭 '황소'와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의 질긴 인연

기사입력 : 2022년04월19일 13:35

최종수정 : 2022년04월19일 14:10

개관 10주년 맞은 서울미술관 소장 그림에 얽힌 이야기 풍성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Fear or Love)>가 4월 13일 시작됐다. 800여평 공간에서 선보이는 창관 이래 최초의 대규모 기획전시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룩한 한국 근·현대 거장 31명의 주요 작품 140점을 집대성한, 매우 보기 힘든 전시다. 그림들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만큼 크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입구에서 본 서울미술관 전경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서울미술관을 설립해 운영하는 사람은 유니온약품의 안병광(65) 회장이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인문학적 소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을 것 같은 그가 어떻게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명작 수백점을 아우르는 '대 소장가'로서 거듭날 수 있었는지 그 사연을 알고 나면 이번 10주년 기념전이 정말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번 기념전 출품작들은 작품 하나 하나도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 작품들마다 소장가인 안병광 회장과 얽힌 사연들이 숨어 있어서 그 이야기들을 알고 나면 그림을 감상하는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대가들의 그림들과 연결되는 안회장 일화는 매우 많은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그림들과 얽힌 사연들이다. 평생을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다 마흔 살 나이에 적십자 병원 311호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그래서 한국판 고흐와 비견되는, 그 자체로 신화인 사나이 이중섭은 대체 안회장과 어떤 스토리로 얽혀 있을까.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이중섭 그림 '황소' 앞의 안병광 회장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안병광 회장은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후 취업을 하지 않고 곧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1년 뜻 맞는 친구 둘과 함께 '삼우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수출한 티셔츠가 빨자마자 배꼽티가 돼버리는 불량품이어서 반품이 쏟아졌다. 쫄딱 망해 이듬해인 1982년 폐업했다. 당시 살던 집도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갔다.

그해 그는 친구들이 모아준 돈으로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3만 원짜리 단칸방을 얻어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에게도 "내 사정이 이런 데 같이 살 수 있겠느냐. 대신 나한테 시집오면 5년 안에 여의도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언장담했다. 여의도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뜨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인생역전이 그리 쉬울리 없다. 그는 1983년 친구 따라 제약 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으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좀처럼 실적을 내지 못했다. 약을 팔러 병원에 갔다가도 문 밖에서 서성거리다 발길을 돌리는 날이 많았다. 매출 실적이 늘 꼴찌를 맴돌았다.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자책감에 사직서를 늘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1983년 태풍 포레스트가 들이닥친 날, 대낮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안 회장은 그날도 미처 팔지 못한 약이 잔뜩 담긴 가방을 품에 안은 채 당시 명동 로열호텔 근처의 한 액자가게의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우연히 진열대에 비치된 한 그림이 그에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중섭의 <황소>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이중섭 '황소' [서울미술관 소장] 2022.04.19 digibobos@newspim.com

"처음에는 엄청 못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그린 황소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싶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았더니 그림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뭔가 신묘한 힘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림 속의 황소가 마치 불을 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주인은 1만원을 불렀으나 7천원으로 깎았다. 그 때 그의 수중에는 9천원 밖에 없었다. 신문으로 그림을 싸서 나가는 그에게 "그건 진품이 아니라 인쇄물"이라는 가게 주인의 말이 돌아왔다. 

바로 이것이 이중섭은 커녕,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안회장의 첫 미술품 경험이었다. <황소> 그림에 매료된 안회장은 무작정 인사동으로 가서 이중섭의 진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고, "진품을 사려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 값은 줘야 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황소의 대범한 기세가 작용한 것인지, <황소>의 모작을 구입한 뒤로 그의 삶은 달라져갔다. 꿈도 생겼다. '저 황소처럼 뜨겁게 살아 성공하자. 그래서 언젠가 진품 <황소>를 손에 넣자'고 스스로에게 주문하듯 되뇌었다. 그러면서 갓 결혼한 그의 부인에게 "언젠가 반드시 <황소>의 진품을 사서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다수 한국 남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황소 그림과 함께 수줍음 타는 성격도 바뀌었다. 열심히 뛰어다녀 로컬 쪽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원이 됐더니 종합병원 영업을 맡기더라. 선배들이 영업이 가장 안 되는 거래처를 넘겨줘 초반에는 실적이 저조했지만 8개월 뒤에는 종합병원 영업사원 가운데 전국 1등을 차지했다.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의 판매실적은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4년 뒤인 1987년에는 드디어 서울의 신 부촌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4년 전 예비신부에게 했던 '호언장담' 약속을 지킨 것이다.

시범아파트로의 이사는 그에게 또 다른 행운을 가져다줬다. 마침 그의 이웃에 시인 구상(1919~2004)이 살고 있었다. 구상은 1950년대 이중섭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놀이터의 햇볕 좋은 등나무 아래로 데려가 담소를 나누는 게 그분의 일상이었다. 단 하루도 그 시간을 거른 적이 없다. 구상 선생님에게서 이중섭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분은 '이중섭이 정말 천재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머리 속으로 구상하면 그게 그냥 그림이 된다'고 했다. 그분의 그런 말이 내게 또 다른 자극을 줬다. 그림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던 것이다."

안회장이 처음으로 실물 그림을 산 것은 1991년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도 캔버스에 그린 유화나 수채화는 아니었다. 바로 이중섭이 종이 살 돈조차 없어 담배곽 안 포장지로 있는 은박지에 그린 '은박지 그림'이었다. 당시 그는 500만원을 투자했다. 제대로 된 그림도 아닌 은지화(銀紙畵)에 그런 거액을 투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황소> 진품이 나오길 기다리며 하나 둘 이중섭의 그림을 모아야겠다는 뚝심이 불타 올랐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이중섭 은박지 그림 [서울미술관 소장] 2022.04.19 digibobos@newspim.com

그렇게 오매불방 이중섭의 그림이 시중에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10년 6월 29일이었다. 가나아트 이옥경 대표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드디어 <황소>가 옥션에 나왔다면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전했다. 그러나 <황소>는 30여년 만에  '고래등 같은 집 한채' 가격에서 빌딩 하나 가격으로 변해 있었다. 박수근 그림 <빨래터>와 최고가 경쟁을 벌이며 하루가 다르게 값이 치솟고 있었다. <황소>를 사려면 세금 포함해 약 38억원이 필요했다.

안회장은 이대표에게 부탁해 <황소> 그림을 하루동안만 빌려와 집에 가져왔다. 밤새도록 그림을 보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마침 서울미술관을 짓고 있었던 터라 여유자금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그림을 도로 가져다주고 그림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당시 중외제약의 당진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러 내려갔다. 그런데 이옥경 대표에게서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경매가 끝날때까지 계속 전화를 할 태세였다.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겄만, 흔들리고 있었다. 30년 전에는 어디 있는지 알 수조차 없던 그림이 드디어 실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지금은 제 발로 그림이 찾아왔다.

안회장은 고민 끝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이중섭의 또 다른 걸작 <길 떠나는 가족>을 <황소> 그림 소유자에게 팔고, 나머지 차액만 지불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당시 <길 떠나는 가족>이 약 20억원 쯤 했으므로 18억원 정도만 충당하면 됐다. 그렇게 해서 안회장은 최종적으로 35억 6천만원을 지불하고 드디어, 30년만에 <황소> 진품을 얻었고, 아내와의 30년 전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에 얽힌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황소> 그림을 옥션에 내놓은 소유자는 당시 91세의 부산 거주 박태현 씨였다. 그는 <황소> 그림을 1952년에 소유해 60여년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럼 박태현 씨는 어떻게 <황소> 그림을 갖게 되었을까. 1952년부산 12월 이중섭은 부산 대정동 '루네상스 다방'에서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옹성과 함께 동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에 이중섭은 <길 떠나는 가족>을 내놓았는데, 어떤 청년이 쌀 한 가마니 값을 내고 그림을 사갔다. 그가 바로 박태현 씨였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중섭의 허락도 없이 당시 다방 마담이 임의로 팔아버린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상당수 화가들이 무명 시절에 술값이나 호텔비 대신 자신의 그림을 맡겨놓았듯, 이중섭이나 동인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해서 다방 마담이 그림 딜러 노릇을 한 것이었다.

그런에 자신의 그림 <길 떠나는 가족>이 팔려나갔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이중섭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 그림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한국 이름 이남덕)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한국전쟁의 피란길에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냈던 그였다. 그림을 그리며 눈물을 몇 바가지는 흘렸을 것이고, 나중에 일본에 가족들을 보러 갈 때 꼭 그 그림을 들고 가리라 다짐했던 그림이었다. 그래서 마담에게도 절대 팔지 말라고 했는데, 마담이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이중섭 그림 '길 떠나는 가족'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그리하여 이중섭은 자신의 그림을 들고 간 청년 박태현을 수소문해서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길 떠나는 가족>을 돌려주면 그 대신 <황소> 그림를 주겠다고, 가족을 위해 그린 그림이니 바꿔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황소〉야말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황소>와 <길 떠나는 가족>이 맞바꿔졌다. 그렇게 박태현 씨가 <황소>를 소장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박태현 씨는 자신이 샀던 <길 떠나는 가족>을 60여년이 지나 다시 소장하게 됐다. 참으로 기막힌 인연이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길 떠나는 가족>이 60년이라는 긴 세월 먼 길을 돌고 돌아 첫 주인에게로 갔고, <황소>는 30년 만에 우직하고 힘찬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안병광 회장에게 달려와주었다. 그림의 진정한 주인은 정말 따로 있다.

그런데 이번 10주년 기념전에 가면 이중섭의 <황소> 이외에 <길 떠나는 가족>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이는 진품이 아니다. <길 떠나는 가족>의 현재 소장자는 알려지지 않은 개인이다.

이중섭이 <황소>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1953년 무렵은 그가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황소>는 그의 외로운 투쟁을 보여주는 듯 정열적으로 내연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생전에 이중섭은 "백정과 소도둑도 나만큼 소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만큼 소를 지켜보는 일을 좋아했다. 한번은 소도둑이라는 오해를 받고 경찰에 붙잡혀가기도 했다. 너무 소를 좋아했던 덕에 소를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경지에 들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소'는 민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주는 모티브이자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상황에 따라 절망, 분노를 대변함과 동시에 희망과 의지,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황소>가  결국 안병광 회장으로 하여금 미술관을 설립하게 만들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주변에서 모두 '한 2년쯤 하다가 그만두겠지'라고 수근거렸지만, 미술관은 이제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아마 <황소>를 위해 만든 미술관인지라 황소의 뚝심이 작용하는 지 모른다. 

국내 미술업계가 성장하고 이중섭에 대한 국민적 애정이 커지면서  <황소>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진다. 안회장은 "누군가 <황소>를 80억 원에 사고 싶다고 제의해왔지만 거절했다. <황소>를 위해 '외양간(서울 미술관)'을 지었는데 소가 없으면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서울미술관은 2012년 8월 문을 열 때 개관전으로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이라는 제목으로 개관전을 열었다. '둥섭'은 '중섭'의 서북쪽 방언이다. 2014년에는 개관 2주년 기념 소장품전인 <황소걸음: 천천히, 강하게 그리고 멀리>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2016년에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중섭은 죽었다>전을 개최했다. 안회장이 평소 "이중섭의 예술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미술관을 만들었다"고 말해왔던 만큼, 서울미술관이 <황소> 연작을 비롯해 <길 떠나는 가족> <아이들과 비둘기> <환희> 등 가장 많은 이중섭 작품을 소장한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안회장은 미술품 소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운전을 하다 보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와 마주칠 때가 있다. 시각과 청각이 곤두서고 안개 너머에 낯선 물체가 다가올 수 있다는 상상에 빠진다. 시간과 공간의 현실감을 뛰어넘는 아주 색다른 경험이다. 이처럼 예술도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기묘한 체험을 통해 상상의 지평을 깊고 넓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내 우주를 한 뼘 더 광할하게 만들어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김환기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1973) 앞에 선 안병광 회장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잘 알려져 있듯 서울미술관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이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터, 4만 2900㎡(1만3천 평)의 드넓은 땅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인왕산 자락의 거대한 바위와 멋들어진 소나무가 그야말로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군자의 거처, 군자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지 할 수 있는 천하제일 절경이다. 서울미술관을 관람하면 이런 절경을 공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터 역시 그에게 쉽게 오지 않았다. 그는 2006년 석파정이 경매에 나온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가 소장하고 있는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전작 30점을 이곳에 전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경매에 응찰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일년 반이 지난 뒤에 돌고 돌아 그에게로 선택권이 넘어왔다. 이 역시 그곳에 미술관을 설립하라는 인연이 작용한 것인데, 항상 그렇듯 그 인연은 간절함의 크기와 닿아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석파정 전경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예수의 생애> 전작 30점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난 2017년 독일 국립 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루터효과'기획전에 보험가 1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대여되기도 했다. 지금은 당연히 그 가치가 훨씬 높아졌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김기창 '예수의 생애' 중 '예수 탄생' 2022.04.18 digibobos@newspim.com

안병광 회장은 지난 2012년 <마침내 미술관>이라는 책을 내고 수집가와 미술관 운영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여기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꿈꾸는 석파정과 서울미술관은 우리나라의 자연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 될 것이다. 결코 부자들의 놀이터, 수준 높은 애호가만 드나드는 살롱으로 머물게 하지는 않을 터이다.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광장으로, 누구나가 거닐 수 있는 대문 없는 마당으로 만들 것이다. 봄에는 꽃을 쫓아, 여름에는 바람을 따라, 가을에는 낙엽 무심히 밟으며, 겨울에는 눈길 동무 삼아 사시사철 당신이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유영국 그림 '산' 시리즈가 걸린 전시실 전경 2022.04.19 digibobos@newspim.com

미술이 어려운가. 그러면 서울미술관을 가보라.

미술을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더더욱 서울미술관을 가라.

실의에 빠져 있어 열망이 생기지 않는가. 그렇다면 서울미술관을 가보라. 이중섭 그림 <황소>가 이렇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자네, 좀 더 힘을 내보지 않을 텐가?"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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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리튬전지공장 화재 사망 22명·8명 부상...연락두절 1명 수색 중 [화성=뉴스핌] 박승봉 기자 =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일차전지 제조 공장 화재로 22명이 숨졌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아직 1명이 연락되지 않아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4일 오전 10시 31분경 경기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일차전지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당국 등은 이날 오후 6시24분 현장 브리핑을 통해 현재 사망자 22명, 중상자 2명, 경상자 6명 등 총 3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회사 관계자가 1명이 연락되지 않아 내부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망자 22명 중 한국인이 2명, 외국인 근로자가 20명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유해화학물질(리튬) 취급 공장에서 화재가 났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다수의 인명피해와 연소 확대를 우려해 이날 오전 10시 51분 선제적으로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진화작업에는 인력 201명과 지휘차 등 장비 71대를 투입했다. 화재가 발생한 해당 공장은 3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11개 동이 있으며, 연면적은 5530㎡이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초 사망자 1명을 포함해 21명의 시신을 수습해 총 2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대부분의 시신은 아리셀 작업동인 3동 2층에서 대부분 발견됐으며, 회사 관계자가 1명이 연락되지 않는다고 말해 건물 내부에 대한 수색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재발생 소식을 접한 후 즉각 현장으로 출발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날 낮 12시 35분경 화재 현장에 도착해 진압 상황을 살폈다. 김 지사는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조속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유해가스 발생을 최소화해 달라"면서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현장에서 활동 중인 소방대원들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이날 경기도에도 사고 수습과 사후 관리를 위한 준비를 지시했다. 1141world@newspim.com 2024-06-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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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무기한 전면 휴진' 에둘러 철회 [서울=뉴스핌] 노연경 조준경 기자 =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는 27일 진행 가능성을 예고한 의료계 무기한 전면 휴진을 사실상 철회했다. 의협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27일부터 연세대학교 의료원 소속 교수님들의 휴진이 시작된다.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면서, "모든 직역의 의사들이 각자의 준비를 마치는 대로 휴진 투쟁에 동참해나갈 것이다. 이후의 투쟁은 29일 올특위 2차 회의의 결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안내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대한의사협회가 집단휴진에 돌입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임현택 의협 회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2024.06.18 mironj19@newspim.com 사실상 27일 의료계 전면 무기한 휴진을 에둘러서 철회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임현택 의협회장이 지난 18일 진행한 의료계 총궐기대회 폐회사에서 무기한 휴진을 처음 언급했다. 임 회장은 당시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다른 의료계 주요 인사들도 전체 무기한 전면 휴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24일 뉴스핌이 시도의사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주요 시도의사회 회장들은 의협의 무기한 휴진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임 회장의 무기한 휴진 언급 직후부터 의료계 내부에선 항의 목소리가 나왔다. 협의되지 않은 내용을 임 회장이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각 지역 개원가를 대표하는 시도의회장들이 "전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개원의의 무기한 휴진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임 회장 발언 다음날인 19일 입장문을 통해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현택 의협회장이 여의도 집회에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임 회장의 회무에서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까지도 각 시도의사회장들의 절차를 따르지 않은 무기한 휴진 반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무기한 휴진은 못하는 게 기정사실"이라며 "만약 사전에 협의가 됐다면 따랐겠지만, 아직까지도 협의된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 차원에서도 무기한 휴진 진행 관련 우려를 전달했다며 "(우려를 전달한 이후) 추가 논의된 게 없으니 진행해선 안 된다. 진행해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은 지난 21일 임 회장을 만나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들의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히며 "무기한 휴진은 철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의료계 내부의 임 회장 비판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 의견을 표출할 수 있듯이 각 시도의사회장들이 자기 의견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협회장의 독단 행보에 대한 불만 의견이 나온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임 회장이 주도한 첫 파업도 이전에 의협이 주도한 휴진보다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다. 18일 당일 병원 문을 닫은 개원의는 14.9%에 그쳤다. 이는 2020년 집단 휴진 첫날 휴진율(32.6%)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김 회장은 "아마 의협 집행부에서 오늘 내일 중으로 27일 전면 무기한 휴진을 에둘러서 철회하는 성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서울대학교병원이 지난 17일부터 돌입했던 무기한 휴진을 중단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6.24 choipix16@newspim.com 한편 당초 지난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개시했던 서울대학교 병원은 이날부로 다시 정상 진료를 시작했다. 서울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는 지난 21일 교수진 투표를 거쳐 '지속 가능한 방식의 저항'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전체 투표 응답자 948명 중 698명(73.6%)이 휴진 중단을 선택했고, 휴진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경 의견은 20.3%(192명)에 불과해 대학병원 봉직의들도 의료계 무기한 휴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여론이 다수이다. 의협은 지속적으로 정부를 향해 ▲의대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쟁점 사안을 수정·보완 ▲전공의, 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 및 처분을 즉각 소급 취소하고 사법처리 위협 중단 3대 요구안을 대화 조건으로 제시 중이다. 그러나 지난 22일 첫 회의를 개최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형식, 의제에 구애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20일 정부 입장을 환영하며, 2025년 정원을 포함한 의정협의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며 "다음주(26일)로 예정된 국회 청문회 등 논의과정과 정부의 태도변화를 지켜보겠다"고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내보였다. calebcao@newspim.com 2024-06-2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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