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무역분쟁 거치며 '고객 경영' 화두로
'고객' 중심으로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개편 단행
'애자일' 경영방식 안착 수평적인 조직문화 과제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2022년 새해 재계 화두는 '회사'가 아닌 '고객'이다. 회사가 원하는 일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사내 조직과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선 이전의 낡은 경영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경영인들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과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뿌리 내리는 것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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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준선 인턴기자 = 새해 첫 월요일인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강추위에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2.01.03 hwang@newspim.com |
◆사업의 목표는 매출이 아닌 '고객 가치'
2022년 재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패권다툼, 공급망 리스크를 겪으며 새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기업들은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사업보국'이던 시절이 있었다. 매출과 시장점유율 등 외형적인 성장에 몰두해 온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예측과 대응이 어려운 대재난을 거치며 생존 위기에 몰렸다. 반대로 민첩하게 고객 성향을 파악하고 이들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 IT·바이오기업들은 근래 보기 드문 성장세를 보였다.
더 이상 '고객 중심 경영'은 특정 업종에 국한된 경영 방침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SK, LG그룹이 새해 나란히 '고객 경험'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사장단 회의에서 밝힌 일성은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고객 중심 경영'의 방향을 잘 설명해준다.
구광모 회장은 "첫 시작인 사업의 목적과 지향점부터 고객 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사업 목표에는 고객 가치 측면의 의미와 목적성이 같이 담겨야 하며 목표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가 기업의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매출과 시장점유율 등의 외형적 성과들은 이러한 노력 뒤에 후행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라고 덧붙였다.
고객 중심 경영은 조직개편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고객경험'에 초점을 맞춰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CE(가전)와 IM(IT·모바일) 부문을 통합해 'DX(Device eXperience) 부문'으로 통합했고, 무선사업부 명칭도 'MX(Mobile Experience) 사업부로 바꿨다. LG전자는 CS경영센터를 고객가치혁신부문으로 승격, H&A, HE사업본부 산하의 고객경험혁신실과 CSO부문의 AI 빅데이터실을 담당조직을 격상 시켰다.
◆고객 변화에 대응한 민첩한 조직 '애자일' 경영 대세
재계 조직개편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애자일 경영'의 안착이다. 애자일(agile)은 '날렵한', '민첩한' 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비롯한 경영방식이다. 부서간 경계를 허물고 프로젝트 단위로 의사결정권을 부여해 신속하고 유연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삼성전자의 CE·IM부문 통합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TV, 냉장고, 공기청정기 등 연동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사업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기차·자율주행차에 접목될 통신·IT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LS그룹은 애자일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대표적인 그룹이다. 올해부터 LS그룹을 이끌어가는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애자일' 문화 안착으로 그룹의 재도약을 이끌어갈 방침이다. 구자은 회장은 지난달 '애자일 데모데이'를 열어 각 계열사의 프로젝트 사례를 공유했다. LS일렉트릭의 자동화연구소는 애자일 방식의 조직 전환을 시도, 약 150여 명 규모의 연구소 전체에 팀장 직책을 없애고 프로젝트 별로 일을 하는 스쿼드 조직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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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서울 강변북로에서 바라본 여의도 빌딩 전경2021.12.27 leehs@newspim.com |
◆'애자일' 속엔 수평적인 조직문화 자리
애자일 방식의 조직 개편에 이어 따라올 과제는 조직문화의 변화다. 능력과 성과가 중시되는 새 조직에 직급과 나이는 불필요한 요소다. 재계는 사내 호칭을 'OOO님'으로 통일하는 등 수평적인 조직문화 안착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내 직급 표시를 삭제하고 직급별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표준 체류 연한을 폐지했다. 연차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직원은 언제든지 승진시키겠다는 의미다.
애자일은 기존의 상명하복(上命下服)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문화와는 대척점에 있다. 기존 조직문화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직원들의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우려한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은 신년사에서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문화나 경직된 프로세스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며 "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받고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구자은 회장도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들의 수많은 충돌이 존재하겠지만 애자일 혁신을 추진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간에 서로 이해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통해 '공존의 문화'를 형성하며 보다 성숙한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