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띠 해 맞아 현대적으로 의인화한 호랑이 주제 그림 20여점 선보여
15일부터 내년 1월 10 (월)까지 서울 강남 삼성동 청화랑
코로나 시국을 호랑이의 해학과 풍류, 유머로 이기고자 하는 마음 담아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매우 가까이 있었다. 잡귀를 물리치는 부적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호랑이 그림을 벽에 거는 관습이 있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해서 호랑이는 다정스럽고 친숙한 모습으로 일반 가정의 한 벽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레 차지했다. 그 호랑이들은 근엄하고 용맹한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자주 바보 같이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럽게 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 그림에 질리지 않고 친근함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
2022년은 호랑이의 해다. 범띠 해를 맞아 서양화가 안윤모(60)가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호랑이 그림과 조각 개인전을 연다. 12월 15일(수)부터 내년 내년 1월 10 (월)까지 서울 강남 삼성동 청화랑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안윤모 '동백꽃 연인' [사진=청화랑] 2021.12.11 digibobos@newspim.com |
안윤모는 이번 전시에 의인화된 호랑이를 주제로 우화적 방식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그림에선 전반적으로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호랑이들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유채꽃 들판, 혹은 목련이 활짝 피어나 있는 나무, 동백꽃 나무 아래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속삭이거나, 자작나무 숲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다. 심지어는 커피를 마시거나 골프를 치기도 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안윤모 '바이올린과 첼로 키는 호랑이' [사진=청화랑] 2021.12.11 digibobos@newspim.com |
그런 호랑이 옆에는 늘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는 호랑이 머리 위에 앉아 있거나, 곁에 앉아서 호랑이에게 수다를 떨며 잔소리를 한다. 전통 회화에 나오는 민화 속의 까치는 호랑이 그림에 빼놓을 수 없는 새다. 일명 '까치 호랑이' 라고 불리는 이 까치가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이미 민화의 한 형태로 유형화되었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하여 우리와 아주 친숙한 새이고 호랑이는 악귀를 물리치는 동물이므로 자연스런 친숙함으로 함께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안윤모는 "조선시대에 호랑이 그림들이 그 시대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해학적 표현이었다면, 지금 나의 호랑이 그림들은 희락(喜樂)의 해학적 표현으로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나마 여유를 찾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자신의 그림 앞에 선 안윤모 작가. 2021.12.11 digibobos@newspim.com |
안윤모의 그림에는 늘 동물이 등장한다. 아니, 동물이 그림의 주제다. 다만 그 동물들은 사람처럼 일상을 이어가는 그런 존재들이다. 이번에는 주제가 호랑이지만, 2019년의 개인전 '커피와 예술'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의 주체는 부엉이들이었다. 부엉이들은 대나무 숲에서, 튤립 밭에서, 벚꽃 나무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번 호랑이도 그렇지만 부엉이는 안윤모의 단골 소재다. 2014년의 개인전 제목은 아예 '부엉이, 돌아오다'였다. 이 전시회에서 부엉이들 역시 악기를 연주하고, 자동차와 배로 여행도 즐긴다. 그런데 그의 부엉이들은 늘 커피와 함께 한다.
사실 안윤모는 유명한 커피 마니아다. 바리스타도 아니고, 커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커피를 즐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마니아다. 그래서 유명한 강릉커피 테라로사를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안윤모가 인터뷰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번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에서도 테라로사 커피를 마시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안윤모는 1996년 '커피 소사이어티' 전을 시작으로 2000년 '커피와 상상력', 2008년 '커피홀릭', 2011년 '커피 한잔의 은유', 2016년 '커피나무', 2019년의 '커피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커피와 관련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2000년 '커피와 상상력'전을 열면서 '느림에 관한 미학'에 대해 말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커피 한 잔을 편안히 앉아서 마실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전파된 테이크 아웃의 문화는 커피를 카페에서 거리로 내몰았고, 커피의 여유 또한 바쁜 걸음에 밀려나게 되었다. 한 손엔 커피를, 다른 한 손엔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풍경들이 익숙해진 세상.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커피를 통해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좀 더 천천히 사색하는 시간을 갖자고 역설한 전시였다."
그의 이런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른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롯이 그 여유 속에서 사색을 즐기고, 동시에 그 각성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는 작가는 때로는 그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때로 커피를 마시는 양과 닭이 등장했지만, 부엉이가 주된 테마로 등장하는 까닭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상장히듯 부엉이가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는 부엉이일 수도 있지만, 커피 마시는 부엉이는 시대에 대한 각성의 의미일 수도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안윤모 '커피 마시며 책 읽는 호랑이'. 민화에서도 호랑이와 까치는 단짝이다. 2021.12.11 digibobos@newspim.com |
그런데 안윤모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나비가 되다' 프로젝트다. '나비가 되다'는 국내외 자폐 등 발달장애 아동들과 함께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로 벌써 1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항상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왔다. 40대가 되면서 그림 작업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러다 2010년 서울대병원에서 우연히 본 발달장애 아이들의 그림이 일반인들의 그림과 매우 달라서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는 전국 투어를 시작하게 됐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평소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소통이 힘들다. 이에 안윤모는 아이들 어머니들과 그림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왔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가수 윤도현의 노래 <나는 나비>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이후 안윤모의 작품 세계에는 자유롭게 나는 나비들이 가득 들어서게 됐다.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미술로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비를 주제로 다룬 작품을 만들어 왔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고운 날갯짓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며 나비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2010년 '나비가 되자'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2년까지 전국을 순회했다. 이런 그의 활동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아 2013년 인도네시아 애니카 린덴 센터에서 처음 '나비가 되다' 해외 전시를 하는 월드 투어가 시작됐다. 2014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 록펠러 프리저브 퀸즈 뮤지엄, 베레리 굿맨 갤러리 등에서의 전시로 이어졌다. 또한 벨기에 브뤼셀의 유엔 유럽본부와 보자(Bozar)아트센터에서도 개최되었다. 이 전시회에는 자폐성이 있는 국내외 청소년과 어린이는 물론 인도네시아·에티오피아·유럽 등 해외 어린이들이 그린 나비그림 등 모두 3000여점의 작품을 거대한 규모의 설치미술로 소개했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2016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17년 홍콩과 이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 2018년 방콕과 케냐 나이로비 전시로 이어졌다.
"월드 투어는 원래 한 두어번 쯤 하고 그만두려 했는데, 계속 요청이 들어와 지금 13년째 하고 있다. 현재 대만에서도 전시가 시작돼 내년 9월까지 이어질 예정이고, 지금은 멕시코 전시를 협의중이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화랑에서의 이번 '세상 밖 호랑이의 외출'은 무려 그의 84번째 개인전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개인전 횟수 기록의 국내 작가인 듯하다. 그룹전을 포함하면 1350회가 넘는다. 거장 마티스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해 "오십년 동안 나는 잠시도 작업을 중단해본 적이 없다. 나의 첫 일과시간은 9시에서 12시까지다. 그 다음에 점심에 잠깐 낮잠을 자고 2시에 다시 붓을 들어 저녁 때까지 작업을 한다. 나는 당신이 이 말을 곧이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예술가의 작업은 늘 노동이다. 안윤모의 작품 역시 이런 노동, 그러나 즐거운 노동을 통해 탄생한다.
안윤모는 호랑이가 가진 해학과 풍류, 유머를 통해 코로나19의 거칠고 힘든 풍랑을 헤쳐나가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정말 유쾌하고 발랄한 호랑이들이 못된 바이러스들을 싹 거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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