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지난달 발생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주 사망은 택배노조와 업계 사이에 형성된 전선에 변화를 주는 사건이었다. 택배산업 내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투쟁한다고 여겨졌던 노조가 다른 한편에서 보여준 가해자의 단면이었다. 노조 역시 "무법 천지의 현장을 개선하기 위한 과정에서 정도를 넘어선 행동이 분명히 있었다"며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입장을 냈다.
택배노조가 택배원청부터 대리점까지 업계 이해관계자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이유는 명확하다.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다. 대기업 택배사부터 시작해 터미널 용역업체, 대리점, 택배기사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에서 제대로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산업 생태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 년 간 법외노조로 싸워오던 택배노조는 이번 정부 들어 합법 노조로 인정받은 데 이어 최근 분류작업에서 택배기사를 제외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성과로 자평한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과오에는 관대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조가 대리점주 사망과 관련돼 내놓은 첫 보고서에서는 "조합원 일부가 고인에게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확인했지만 폭언이나 욕설 등의 내용은 없었고 소장에 대한 항의의 글과 비아냥, 조롱 등이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노조는 사실관계 확인을 이유로 원청 등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정작 고인이 지목한 노조의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노조는 일부 폭력행위에 대한 지적을 정당한 쟁의행위를 비난하는 '노조 죽이기'로 규정한다. 이는 노조가 내부의 비합리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보다는 여전히 외부와의 싸움에만 집중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태도가 반복되면 노조가 매번 언급하는 '국민들의 지지'가 더 이상 노조를 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부에서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극단으로 치닫는 택배노조와 대리점의 갈등을 이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택배산업 성장 속도는 가팔라졌지만 대형 유통사와의 최저가 입찰로 이익 규모가 늘어나기 힘든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택배사의 계약 단가는 영업상 기밀이지만 개인 쇼핑몰 등 자영업자 수준의 온라인 쇼핑몰 등과 비교하면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 업계는 규모의 경제의 원칙에 의거해 대규모 물량을 취급하는 유통사에 낮은 단가를 책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입장이다.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이들로부터 얻지 못한 이익을 자영업자 규모의 화주사에게 챙기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올 초부터 택배업계가 인상하기 시작한 기업고객 택배비 역시 본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대형 유통사 단가와는 별개다. 이들의 택배비는 거의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택배비 인상 부담을 대형 유통사에 지우지 않는 대신 영세 화주사들이 이를 떠안는 것이다.
결국 노조와 대리점이 적은 수수료를 놓고 벌이는 갈등은 불공정 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대형 유통사와 택배사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것이다. 대리점과 택배기사에게 할당되는 수수료 역시 적정 수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안전운임제'다. 화물차 업계에서 단가 이하의 운임 수준을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된 안전운임제를 택배업계에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갈등을 놓고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진흙탕 싸움에 일부러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극단 대립을 보고만 있는 게 정부의 역할인지도 의문이다. 업계를 관할하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원하청 거래구조 문제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설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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