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차례 민원에도 시정조치 안돼…나주시 "예산 없어"
[나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민원을 보고 싶어도 시청에 갈 수가 없습니다."
4일 전남 나주시청 앞에서 만난 뇌병변 장애인 서경구 씨는 청사 앞 가파른 경사로에서 휠체어를 힘껏 밀어봐도 올라갈 수 없다며 한탄했다.
서 씨는 안전바를 잡고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올라가보려 했지만 폭염경보가 내린 34도의 무더운 날씨에 뜨겁게 달궈진 안전바를 잡을 수 조차 없었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뇌병변 장애인 서경구 씨가 4일 오전 전남 나주시청사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로 탓에 끝내 오르지 못했다. 2021.08.04 kh10890@newspim.com |
경사로 유효 폭이 좁은 것도 문제였다. 본관 경사로의 유효 폭은 1.2m로 휠체어 회전 반경 등을 고려하면 터무니 없이 좁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경사로를 오를 수 없었다.
시청 관계자는 시청사를 건축할 당시에는 장애인 등에 대한 편의시설 설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당시 실정에 맞는 법으로 건축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나주시청사는 지난 1985년에 지어졌다. 이때 청사 입구에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가 함께 만들어졌다.
문제는 청사가 건축된 지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장애인에 대한 나주시의 인식은 1980년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4일 오전 박상준 나주변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청소도구함으로 전락한 장애인 화장실을 바라보고 있다. 그마저도 내부는 비좁은 탓에 휠체어를 탑승한 채 화장실 이용은 불가능했다. 2021.08.04 kh10890@newspim.com |
장애인 화장실은 청소도구함으로 전락한지 오래됐고 내부 폭이 너무 좁아 휠체어 장애인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또 내부가 보일까 마음 졸여야 하는 불투명 유리의 화장실인데다 화장실 버튼이 고장난 탓에 그마저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청사 본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휠체어 장애인은 1층 외에는 다른 층의 민원 업무를 볼 수 없고, 외부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4일 오전 뇌병변 장애인 서경구 씨가 민원 업무를 보기 위해 전남 나주시청을 방문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계단 앞에 멈춰있다. 2021.08.04 kh10890@newspim.com |
지역주민들은 이같은 논란에 대해 나주시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눈'인 점자블록은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점자블록의 색깔을 황색으로 규정하고, 주변 도로의 색과 비슷해 구별하기 어려울 때만 제한적으로 다른 색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질 또한 미끄럽지 않은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청사 내·외부에는 미끄러운 재질을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닥의 색깔과 비슷한 은색깔의 블록을 사용하고 있다. 또 곳곳에 점자블록이 파손돼 있었지만 나주시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4일 오전 전남 나주시청사 본관 입구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 안내봉에 막혀있다. 또한 청사 곳곳에는 보도블록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2021.08.04 kh10890@newspim.com |
안내촉지도 또한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안내하는 지점이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져 있었고, 청사 내부에는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나주시청사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수 차례 민원도 넣어봤다. 박상준 나주변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 미끄러운 재질로 사용되면 시각장애인도 불편하지만 휠체어도 미끄러져 위험하다"며 "장애인들에게 혜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해달라는 것 뿐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 차례 시청에 민원을 넣어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늘 '예산이 없어서'라는 말 뿐이었다"며 "장애인이 불쌍하니까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청 업무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 그것이 어려운 것인지 암담하다"고 말했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4일 오전 나주시청사 점자블록 앞에 있어야 할 안내촉지도가 떨어져 있다. 2021.08.04 kh10890@newspim.com |
이에 나주시는 5년마다 청사 내 장애인 이용과 관련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시정 조치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만 전수조사를 마지막으로 실시한 지난 2018년 이후 무엇이 시정 조치 됐는지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담당자가 바뀌고 하다보니 전수조사 내용에 대해선 제대로 파악이 어려운 점도 있다"며 "청소도구함처럼 사용되고 있는 장애인 화장실 같은 부분에 대해선 바로 시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이 지어진지 오래되다 보니까 계속해서 바뀌는 장애인 법령들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며 "예산이 없으니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교체와 관련해선 내년에는 교체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해놓은 상태이다"고 밝혔다.
한편 나주시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위한 '나주시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설치사항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를 2013년 6월 재정해 시행하고 있다.
kh108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