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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윤석열 "질문의 절반이 입당 시기...불확실성 종식시키려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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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국민의힘, 정권 교체 플랫폼 돼야"
"이준석, 지방 일정 몰랐다…충분히 교감"

[서울=뉴스핌] 김태훈 이지율 기자 =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일 "국민들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 혼선과 누를 끼쳤던 것 같다"며 국민의힘 입당을 결정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행사를 가면 기자분들이 동행을 하시고, 언론 인터뷰도 많았지만, 언제 입당을 하느냐는 질문이 전체 질문에 반 정도 될 만큼 많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처음부터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주축이 돼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며 "또 초기 경선부터 참여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남을 방문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휴가 중이기 때문에 지도부는 참석하지 못했다.

윤 전 총장은 지도부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입당을 결정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대표의 지방 일정이 있는지 몰랐다"며 "지난 25일 맥주 회동 이후 충분히 교감을 갖고 있다. 입당과 관련된 인사는 다음 주에 하면 된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 당사를 방문,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1.07.30 leehs@newspim.com

다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지금까지 국민의힘 입당 시점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오늘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지방 일정이 있는데 입당 시기를 오늘로 잡은 배경은 무엇인가.

▲ 저는 처음부터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주축이 돼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초기 경선부터 참여하는 것이 공정하고 맞는 것이라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제가 최근에 우리 행사를 가면 기자분들 동행하시고 또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 언제 입당하느냐는 질문이 전체 질문에 반 정도 될 만큼 많았다. 그래서 사실은 좀 더 다양한 국민들 의견을 당적 없이 경청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제가 한 달 동안 많은 분들을 만나 뵈니까 그런 불확실성을 없애고, 나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참여해 국민들께 빨리 알려드리고, 당적을 가진신분으로도 국민의힘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분들의 넓은 성원과 지지를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8월까지 시간을 끄는 것보다 내주부터 휴가도 시작되기 때문에 빨리 결정했다. 저의 입당에 대해서 섭섭하고, 서운한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당적을 가지고 나서도 더욱 노력하겠다.

-이준석 대표는 호남에 내려가 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휴가 중이다. 지도부가 당을 비운 상태인데 입당한 이유나 사정이 있나.

▲ 그런 건 없다. 우리 당 지도부, 이준석 대표와는 지난 일요일 회동 이후부터 교감을 가져왔다. 지방 일정이 있는지 몰랐다. 입당과 관련된 인사 등은 다음 주에 하면 되는 것이다. 충분히 교감을 갖고 진행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에 전격적으로 입당했는데 당내 경선을 위해 경선준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본선에서도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해야한다는 의견 등 국민의힘 경선 룰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 저는 당에서 결정한 룰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아직 경선 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다.

-후보들 중에서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당 룰에 따른더라도 개인적인 소신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가장 공정한 경선 룰이라는 건 본선 경쟁력을 감안해서 하는 것이라고 일반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지 않겠나. 당에서 많은 분들이 그런 원칙에 따라 경선 룰을 정할 것이고, 저는 그 정해진 룰에 따를 생각이다.

-당초 외연 확장 후 국민의힘과 협력한다고 했다. 외연 확장은 어느정도 이뤘다고 보는가.

▲ 궁극적으로 본선에 나가기 위해선 국민의힘 2번을 달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했다. 외연확장은 언제까지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였고, 국민들이 제일 궁금해하시는 부분이 언제 입당을 하느냐였다. 그 부분에 대해 불확실성을 정리하고 명확한 입장에서, 어차리 제가 국민의힘 입당을 늦게 한다고 해서 폭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을 안 할 것이 아니였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궁금해하시는 입당 시기와 여부 등에 대한 논란은 종식시키고 본격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공개 회동 요청이 있었는데, 만날 계획이 있나.

▲그때만 해도 거취를 고민할 때였다. 이제 저도 거취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분이 뵙자고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응할 것이다.

-국민의힘 당내 주자가 됐다. 이 자리에 박진 의원도 있는데 국민의힘 후보 11명 중 어떤 후보를 가장 라이벌로 생각하나.

▲ 국민의힘이 정권교체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또 국민의힘을 아직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는 국민들도 계시는데, 저희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저도 당원이 됐으니 당의 외연을 넓힐 것이고, 종전에 해왔던 것 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변해야 할 부분은 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 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7.30 leehs@newspim.com

-국민의힘 입당을 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로서 검증이 시작될 것이다. 2017년 중앙지검장을 맡고 있을 당시 수사 중 법조인들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야당의 비판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어떠한 사법절차 과정에서는 안타까운 일들 발생하는 거에 대해선 법적인 문제를 다 떠나서 늘 가슴이 아프고, 관계자분들께는 정말 송구한 마음 가지고 살고 있다.

-다양한 지지자들이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입당으로 인해 지지자 이탈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런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정권교체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꼭 입당을 해야한다. 그 분들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들이시지만 결국 방법론과 시기 문제에 대한 차이라고 본다. 그 분들에게도 정권교체라는 큰 과업을 해 나가는 데 손을 잡고 같이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한열 역사 사진을 보고 부마항쟁 언급했다며 민주당의 비판이 있었다.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 저도 어이가 없었다. 당시 제가 27살이였고, 저희 집도 연세대 앞이었다.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저희 나이 또래에 누가 있겟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부마항쟁과 6월 항쟁, 주로 부산과 마산 지역에 항쟁과 관련된 조각과 사진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대화도 나눠싿. 또 그 장소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장제원 의원이 안내를 해주면서 이한열 열사라고 했다. 저는 처음에 부산·마산 지역 항쟁인 줄 알고, 서울대와 연세대 앞만 생각했는데 말씀을 해주시길래 제가 '맞네요'라고 생각하고 부마항쟁과 6월 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저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정치 참여 선언을 하고 한 달이 지난 상황에서 국민의힘 입당 여부와 시기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했다. 오는 11월 단일화 방안부터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고 했는데, 전날까지도 모호했는데, 전격적으로 결정한 계기는 무엇인가.

▲ 입당을 결정하고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어쨋든 야권이 하나가 돼야 하고, 저 자신이 국민의힘 초기 경선부터 참여해야 공정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늘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는데 다른 대안을 생각하긴 어렵다. 다만 제가 당적을 가지고 다양한 국민들을 만날건지, 당적 없이 만날 건지에 대해선 처음 정치를 시작하는 국민의힘 입당 전 당적이 없어야 상대방도 마음이 편할 것이기 때문에 공개는 하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을 비공개로 만났다. 또 이제 더이상 입당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이 오히려 정권교체와 정치활동을 해 나가는데 어렵다고 생각했다. 국민들께도 제가 입당을 분명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혼선과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했다. 결심한지는 얼마 안됐다.

taehun0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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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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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영향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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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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