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예명이 자그마치 80개나 되는 이 남자. 전방위로 거침없이 뛰는 이 사람의 행보는 아무도 못 말린다. 아니, 본인 자신도 제어가 잘 안된다.
워낙이 아방가르드 체질로, 어린 시절부터 전위의 선봉에 서길 좋아했던 큐레이터 윤진섭(Yoon Jin Sup)은 예명이 무려 80개다. 그는 왕치(Wangzie:산적두목 이름이다), 한큐(HanQ:당구용어), 천둥 치는 이 밤에, SoSo(쏘쏘), Very Funny G.P.S, Dono, Donsu 등 다종다기한 이름으로 창작활동을 펼쳐왔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자신의 드로잉 앞에 선 작가 윤진섭. [사진=이영란 기자] 2021.5.18 art29@newspim.com |
윤진섭에게 "도대체 예명이 왜 이리 많은 거냐"고 물으니 "추사 김정희 선생은 경기도 과천서 돌아가실 때까지 명호가 334개나 되셨다. 과거 동양에선 열아홉 살까지는 호를 못 쓰고, 스무 살부터는 호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했다. 이름 대신 호로 상대를 불렀다. 이렇듯 호를 여러 개 만들어 쓰는 것은 서양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이런 동양의 고유한 전통이 대단히 열려있는 문화이자, '또다른 전위'라 생각한다. 그래서 신나게 만들다 보니 80개가 됐다"고 답한다.
예명만 많은 게 아니다. 윤진섭은 직업도 많다.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작가, 저술가, 교육자로 활동한다. 요즘 대중문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부캐'를 그는 40~50년 전부터 여럿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 '부캐'를 그는 관념적으로 보유만 한 게 아니라, 그 때 그 때 활발하게 진격하며 암약(?)했다. 특히 행위예술 분야에서는 미술사에 남을만한 여러 활동을 구가했다. 그런가 하면 국제상상대학(사이버대학이다), 스톱테러리즘 등의 그룹활동도 펼쳤거나 펼치고 있다.
이번에는 그가 드로잉 전시회를 꾸렸다. 최근 2년간 그린 드로잉 50점을 모아 윤진섭은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아트 오브 도플갱어:윤진섭'전을 오는 6월 16일까지 개최한다.
지난 해부터 건강을 위해 집 근처 남산을 올랐던 그는 산책길에 그렸던 스케치들을 발전시켜 6000점의 드로잉을 완성했다. 윤진섭은 "그냥 산책만 하려니 좀 허전해 스케치북을 끼고 남산에 올랐다. 맘에 드는 곳에 앉아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 좋아 몰입하게 됐다. 그동안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강의, 모임이 취소돼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팬데믹 덕분이다"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윤진섭 Nolja 작 '무제(토끼)'. 2021. 종이에 연필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21.5.18 art29@newspim.com |
이번 전시에는 오일스틱 크레파스 목탄 색연필 잉크 등 온갖 재료를 활용해 풍경 동물 누드 두상 등을 그린 작품이 두루 출품됐다. 붓이나 나무젓가락, 면봉으로 그린 드로잉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북어포 가닥에 먹물을 묻혀 그린 드로잉도 있다. 뻣뻣한 북어포로도 그려보고, 물에 불려 촉촉해진 북어포로도 그렸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가의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검은 종이에 흰색 펜으로 속도감있게 그린 그림도 있고, 크레파스로 격렬하게 휘두른 추상화도 있다. 자화상을 그린 그림들은 매순간 달라지는 작가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변화무쌍하게 담고 있어 흥미롭다. 또 나무, 꽃, 전봇대, 용, 염소, 인체를 묘사한 그림에선 뛰어난 표현력과 분출하는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반면에 연필로 그린 토끼그림은 정교한 세부묘사가 압권이다. 화가의 길을 고집했어도 될 법한 역량이 엿보인다.
윤진섭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100장짜리 스케치북을 어떤 날은 하루에 다 쓰곤 했다. 너무 열중하다 보니 끼니도 까맣게 잊곤 했다. 밥 먹는 것보다 더 신명나고 행복했다. 드로잉 작업에 도끼자루 썪는 줄도 몰랐다고나 할까? 내겐 드로잉이 최고의 놀이였다. 작품활동만 하는 작가들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이다"라고 했다.
이번 개인전에 윤진섭은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독일어인 도플갱어는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데 요즘은 '똑같이 생긴 사람'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원래는 독일 미신에서 '악운의 전조'로 쓰였지만 19세기초 판사, 작가, 작곡가, 화가, 평론가로 활동했던 에른스트 호프만이 판타지소설 '호두까기 인형과 쥐의 왕'(1816)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호프만과 윤진섭은 여러 장르를 무수히 넘나들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 윤진섭 SoSo 작 '무제(누드)'. 2021. 종이에 크레용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21.5.18 art29@newspim.com |
홍익대 회화과와 대학원(미학 석사) 출신의 윤진섭의 첫 직업은 화가였다. 그러나 골방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 자신의 예술혼을 퍼포먼스로 구현하는 게 좋아 행위미술로 방향을 선회했다. 관념에 사로잡혀 허공에 대고 푸념만 하기보다, 맨 땅에 헤딩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기에 무모한 실험도 서슴지 않았다. 1970년대 한국전위미술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S.T'에 참여했던 그는 이후 한국 행위미술의 개념과 이론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호주로 유학을 떠나 웨스턴시드니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미술사. 미술비평) 과정을 마쳤다. 199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이 당선되며 비평가로 나섰고, 호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큐레이터로서는 광주비엔날레(1995),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2004), 창원조각비엔날레(2016)같은 대형미술행사에 기획자로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초빙큐레이터로 '한국의 단색화'전(2012) 등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의 중요한 미술운동의 하나인 '단색화'의 용어 정착과 확산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며 단색화를 국내외 무대에 널리 각인시켰다.
이번 전시는 50년간 연구 비평활동과 자유분방한 창작활동을 병행해온 윤진섭의 '비평과 창작' 양 날개를 잘 보여준다. 그간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는 60여종의 다양한 아카이브(도서 잡지 자료)가 드로잉 작품과 함께 나란히 전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전시에 출품된 윤진섭의 드로잉 50점은 구입이 가능하다. 작가는 드로잉 판매금 전액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후원회장직을 맡고 있는 윤진섭은 "잊혀져가는 한국의 미술인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사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기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정부나 공공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을 개인이 뮤지엄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우리 문화예술계의 기초를 다지고, 미술사를 써내려가는데도 더없이 귀중한 박물관이니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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