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하얗게 불태운 정 총리의 공적
끌려다닌 당-정 관계는 아쉬워
[세종=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일인지하 만인지상'.옛부터 관료 중 최고위인 재상(宰相)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구시대적인 용어지만 '재상'이란 말은 참으로 '뽀대'가 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수식어는 그 재상을 더욱 높여주는 용도로 쓰인다.
이동훈 경제부 선임기자 |
다만 재상은 주변의 시각과는 달리 허울 뿐인 자리다. 한국과 중국-덴노가 명예직이었던 일본은 제외하고-의 왕조 시대 재상이 그러했고 미국의 부통령이 그러하듯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무총리란 그저 명예직이다. 전임 대통령 사후 '승계'한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하고 국무총리 출신 중 대권에 도전한 경우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한명 뿐이란 것을 감안하면 총리란 '1인자도 아니고 1인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란 인식이 강하다.
1인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재상 본인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맡는 분야도 없다. 소통과 관리를 책임지지만 관리는 결국 1인자가 하는 것이기에 재상은 그저 '유사시'를 대비하는 직책 이상이 아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위화도 회군 이후 최고 재상인 문하시중에 오른 이성계가 백성들을 위무하는 모습을 본 정몽주는 "임금이 해야할 일을 왜 재상께서 하십니까?"라고 꾸짖는다. 재상이란 총리란 그런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재상이나 국무총리는 공적을 내기 어렵다. 공적을 내는 것은 주변의 의심을 받을 수 있어서다. 5000여년 왕조역사를 가진 중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재상은 전한(前漢)의 소하, 그리고 촉한(蜀漢)의 제갈량이라고 한다. 이 둘은 모두 재상 시절 뚜렷한 공적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소하는 항우와 싸우는 주군 유방을 위해 병력, 군량, 무기 전분야에서 무진장의 보급을 했고 결국 훗날 한고조가 되는 주군 유방이 초한전의 최종 승리를 일궈낼 수 있도록 했다. 제갈량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잘나와있듯 외지 세력인 유비 부자가 촉한의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내치와 외정을 동시에 수반했다.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과 인망을 가졌음에도 감히 어린 황제를 능멸하지 않았다. 지금도 중국에선 '승상(丞相)' 이라고 하면 이 두 사람을 꼽는다고 한다. 다만 소하는 이 공적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웠다.
15개월만에 물러나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점에서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바로 누구보다 일을 많이했고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정 총리는 명예직 국무총리의 새로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취임 직후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정 총리는 15개월 동안 말그대로 '하얗게 불태운' 상황이다. 오랫동안 정 총리를 지켜본 입장에서 이미 70줄에 들어선 그가 다시 정계로 복귀하겠다는데에 대해 그의 건강이 걱정스러울 정도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부족 상황에서 과감히 공공 마스크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했고 한번에 10만원이 들어 서민들로선 주저할 수 밖에 없었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무료로 대폭 확대하면서 코로나 조기 진단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정 총리의 이같은 과감한 코로나 방역조치는 우리와 인구, 경제력이 비슷한 유럽 나라들 그리고 미국, 일본과 비교할 때 획기적으로 코로나 안정을 이룬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일부에서 시장 통제라는 지적은 있지만 코로나 방역에 대해선 100점 만점에 100점을 줘도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하기 어려운 내치를 훌륭히 이뤄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예방제(백신) 도입에서도 정 총리의 공적은 적다고 보기 어렵다. 늦었지만 차근차근 백신이 들어오고 있으며 그가 주장한 9월까지 전국민 면역체계 완성 역시 그저 정치적 수사는 아닐 것이란 판단이 들고 있는 요즘이다.
다만 당정청간 조율에서는 아쉬운 점이 엿보인다. 지난해 4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무후무한 거대여당이 된 여당을 통제하지 못했다. 재난지원금, 코로나 백신 도입과 같은 정부가 주도해야할 정책 수립 과정에서 언제나 여당은 정부에 지시와 훈수를 했고 여당의 '지시'에 대해 문제점이 지적돼도 결국 정 총리는 이를 수용했다. 초기엔 정 총리 본인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당과 반(反)당의 싸움이라 볼 수 있는 추-윤 갈등에서도 정 총리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정 총리 역시 정치인 출신인데다 여권 주류세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로 72세를 맞았고 정계입문은 다소 늦었지만 4선 의원에 헌정사상 유일한 국회의장-국무총리를 모두 맡았던 원로임을 감안할 때 여당에 대한 정 총리의 영향력 부족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대 여당을 통제하는 것은 대통령도 불가능하다. 국무총리가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실무에서도 지나치게 여당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과 엄연한 위계상 아랫 사람인 추 장관과 윤 총장을 통제하지 못한 것은 다소 억울하더라도 비판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무총리란 대통령을 보좌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2인자일 뿐 1인자가 될 수 없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명예로운 경력의 끝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무총리는 여권의 차기 주자라기 보다는 덕망있는 인사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73년 대한민국 헌정사상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사후 승계한 최규하 대통령이 유일하고 국무총리 출신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경우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밖에 없다.
명예직인 국무총리를 맡아 소신껏 행정을 이끌고 성과도 낸 정 총리는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할 듯 싶다. 대권을 노리는 인사로서 총리란 자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코로나19라는 국난을 맞아 이를 극복하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소의 비판점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기에, 총리라는 한계가 분명한 직위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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